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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일지

전기수 이야기

 

 

-.생활 정보지의 글자들이 내보낸 내분비물 때문에 신경들이 상당히 흐물흐물해져 있었을 시간이었지.

-.자신만의 내부의 골방에 고립되어 살고 있는 사람의 숫자가 조선시대의 문맹의 숫자보다 많으면 많았지 적지 않을걸.

-.자꾸만 굴러 떨어지는 바위를 되풀이해서 밀어올려야 하는 그 형벌이 무서운 것은 육체적으로 힘들기 때문이 아니라.

그 반복이 굴욕과 권태를 선물하기 때문이지.

-.나는 내가 대단하다고 생각하지 않았어 그 사람이 끔찍하다는 건 인정할수 있지만 내가 대단하다는 건 인정할 수 없어.

 더구나 그 대단함이 나를 그 끔찍함 속으로 밀어넣는 손길에 다름 아닐 수 있다는 혐의를 완전히 털어버릴 것도 아니었고,

-.그가 자기 이야기를 다 끝냈을때 이런 생각이 들더군 그가 기다린 것은  타인의 목소리가 아니라 자기 목소리가 아니었을까.

그는 더 이상 기다리지않아도 되는 상황이 오기를 기다린 것이 아닐까, 그가 기다린 것은 기다리지 않기 위해서가 아니었을까.

 순간도 이어폰을 귀에서 떼지않고 라디오를 들은 것이 그때문이 아니었을까

물론 그 사람이 이런 말까지 한건 아니야. 어디까지나 내 추측일뿐이지. 그가 말하지 않은 이상 누가 알겠나.

누군가에 의해 말해지지 않으면 도무지 알 길이 없는 길고 어둡고 놀랍고 뜨거운 이야기들이 우리의 삶의 지표면 아래로 흐르고 있다는 사실을 잊으면 안돼.

그 양반, 나에게 이야기를 해주고 얼마있지 않아서 숨을 거뒀으니까 그게 일종의 고해성사였을거야.

물론 그 사람에게서 었던 그 길고 어둡고 뜨거운 이야기를 해줄 수 있어 시간이 제법 많이 흘렀지만 거의 그대로 기억하니까.

하지만 오늘은 그만 하지  너무 피곤하군. 나도 오늘은 이야기를 너무 많이 했어, 좀 쉬어야 할 것 같아.

<이승우 2007년도 현대문학상 수상작 '전기수 이야기'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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