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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여행

엄마가 너무 싫어서

아마 이 모녀의 이야기를 오은영 박사가 전해 들었다면 뭐라고 조언 하려나.

어린 시절에 엄마가 너무나 달달 볶아서 나중에 실권자가 되자 어머니의 거처를 먼 외딴 곳으로 정할 정도였다.

그게 가능했던 것은 빅토리아가 18세 성인이 되어 즉위했기 때문에 섭정을 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해가 지지않는 나라 대영제국 최전성기를 상징하는 여왕이자 하노버 왕조의 마지막 군주이며,

가장 오래 재위한 군주. 그래서 빅토리아 여왕의 동상과 그의 이름을 딴 건물이나 공원등을

영연방국가 여기저기서 많이 볼 수 있다.

 

멜버른에 있는 퀸 빅토리아 정원도 그 중에 하나.

 

 

 

 

 

퀸 빅토리아 가든스

 

 

 

근엄한 빅토리아 여왕도 정원 한 가운데를 차지하고 있고

 

1837년 큰아버지 윌리엄 4세가 재위 7년 만에 71세를 일기로 사망하자 빅토리아는 여왕으로 즉위했다.

 어머니와 내연관계에 있다는 추문까지 나돌 정도로 가까웠던 콘로이는 연금을 주고 퇴직이라는 명분으로 내쫓아버렸고,  어머니는 거처를 외딴 곳으로 정해 버킹엄 궁전에서 정치에 관여하지 못하도록 했다.

 

한편 미혼인 상태에서 즉위한 여왕의 남편 자리를 놓고 여러 나라의 왕족들이 나섰다.

원래 여왕은 독일 출신인 어머니에 대한 반감 때문에 독일인과 결혼할 생각이 없었지만 영국에   

외사촌 작센코부르크고타의 공자인 앨버트에게 반해서  결국 1840년 2월 10일, 앨버트와 결혼했다.

 

지식과 교양이 풍부했던 엘버트 공은여왕의 남편이라는 위치 때문에 공직도 작위도 받지 못 하고

아내를 보필하는 조력자 역할에만 충실해야 해서 결혼 초기에는 자신의 처지를 한탄한 적도 있었다.

그러나 빅토리아 여왕의 임신 이후 거동의 제약이 생기고 점차 남편에게 깊이 의지하면서 앨버트 공의 역할이 커졌고,

그는 고집세고 외골수였던 아내의 곁에 머무르며 여왕의 부군으로서 여러 가지 업무를 훌륭하게 처리했다.

 

이런 앨버트 공이 있었기에 여왕은

양당제 의회에서 정치적 균형감각을 유지하며 입헌군주제를 공고하게 다질 수 있었다.

 

 

다육이 사이사이 제라늄이
뒷다리를 들고 있는 건가? 아니네 꼬리 잖아~~ㅎㅎ

 

 

 

 

 

멜버른 야라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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