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이 얼굴은 물론 바짓가랑이 사이로 매섭게 들어와 피부를 할퀴는 날, 북서울 미술관에 갔다.
2022 타이틀 매치 : 임흥순 VS. 오메르 파스트 <<컷!>>
영상설치 미술가이자 영화감독인 임흥순과 오메르 파스트를 초청하여 보여주는 영상 매체의 작품들이다.
전 작품을 모두 관람하려면 7시간이 걸린다. 하여 앞으로도 며칠은 더 와야 할 것 같다.
오늘은 도슨트 해설을 하는 날이라 함께 설명을 들으면서 관람을 했다.
1층에서 해설이 끝나고 2층으로 올라와 여수 반란사건, 제주 4.3 사건 등을 다룬 '파도'를 설명하는 도중
도슨트가 갑자기 울컥하면서 이내 눈물을 보이다 말을 잇지 못하는 것이었다.
미안해 하는 그에게 우린 괜찮다며 진정되기를 기다렸다.
그리고 왜 그랬느냐고 묻지도 않았다.
사람마다 울음과 웃음은 그 코드가 달라서 다른 사람들은 아무렇지도 않은데 나 혼자 킥킥 웃거나
또는 울컥해서 민망했던 적도 있다. 그걸 한가지 잣대로 재단할 수는 없는 일이다.
오늘은 여러 작품 중 <형제봉 가는 길>을 집중적으로 보았다.
분단의 현실을 상징적으로 보여준 사건인 개성공단 폐쇄를 배경으로
평화에 대한 염원을 담은 두 개의 퍼포먼스를 기록한 작품이다. 한쪽 화면은
작가가 관을 메고 북한산 형제봉에 오르는 과정과 봉우리 정상에 도착한 장면으로 구성된다.
햇살이 내리 비치는 산길을 묵묵히 오르는 사람의 뒷모습이 흑백의 화면 속에 꿈처럼 진행된다.
이 퍼포먼스는 2016년 개성공단이 폐쇄되고 9개월이 지난후, 개성공단 입주 기업인들을 주축으로
여의도 국회의사당 앞에서 '개성공단 기업 정상화와 남북경협복원을 염원'하며 진행되었던 장례 퍼포먼스에서 착안되었다.
다른 쪽 화면은 폐쇄된 개성공단의 정상화를 기다리는 텅 빈 사무실, 철 지난 옷과 마네킹이 쌓여 있는
어두운 창고 장면들을 통해 수많은 이들의 생계가 무너져 내린 현장을 담는다.
관을 메고 산을 오르던 흑백의 화면은 정상에 도달하자 컬러도 변하고, 어두운 공간을 비추던 다른 쪽 화면에서 퍼포먼스가 시작된다. 옛 서울역 건물에서 벌어지는 이 퍼포먼스는 북한 출신의 아코디언 연주자 이향, 게이 코러스 합창단 지보이스가 함께 했다. 80년대를 대표하는 민중가요<그날이 오면>과 평화와 통일의 염원을 담은 북한 노래 <다시 만납시다>는 한문장 처럼 연결된다.
개성 공단 폐쇄는
무엇보다 거대한 자본주의의 물결 속에서도 한반도의 특수한 정치 환경에 따라
통일과 번영에 대한 기대가 반복해서 좌절되는 현실을 반영한 사건이다.
두 개의 화면이 서로 등지고 있어 작품을 한번에 볼 수 없는 구조는 남과 북의 현실을 은유한 설치 형태.
텅빈 개성공단 사무실의 움직임 없는 마네킹 갑작스런 개성공단 폐쇄는
일하던 모든 사람들을 마네킹으로 만들어 버린 게 아닐까? 도망치듯 빠져나온 사람들은 뭘 어찌 해볼도리가 없다.
죽은 자식 뭐 만지듯.....