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횡설수설

수해

비상대책위윈장이라는 사람이 마치 초등학생들에게 하듯 말했다.

"사진 찍지 말고, 웃지 말고...." 등등 저렇게까지 이야기 해야 하나? 하는 생각을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다음 나온 망언은, '사진 잘 나오게 비 좀 왔으면 좋겠다.' 였다. 

비대위원장이 당부의 말을 안했다면 더 한 망언도 나왔을지 모르겠다.

공감을 하지 못하니 수해를 입은 상처에 소금을 뿌리는 저런 말이 튀어나오는 거 아닐까?

 

생색내기용 수해복구 봉사활동은 그만하고 차라리 자신들의 세비의 일부나마

이재민들이나 유가족을 위해 쓰게 기부한다고 하는게 더 어떨까?

개념있는 일부 연예인들은 기부를 하는데 정치인이 기부했다는 기사는 못 본 것 같다.

 

지금은 거의 사라졌지만 나는 비가 많이 오면

과거의 일로 인한 트라우마 때문인지 뭔지 모를 불안감이 생겨나곤 했었다.

이번에 물난리에 큰 변을 당한 이들은 지대가 낮은 반지하에서 살던 사람들이지만,

나는 그 반대로 높은 축대 위에 살아서 생긴 일이었다.

 

내가 아주 어릴적,

몇 살 때였는지 기억이 나지 않는, 비가 몹시 내리던 어느 날.

천둥 번개 치는 소리와 아버지의 고함 소리에 나가 보니

우리 집 마당 1/3가량이 감쪽같이 무너져 사라져 버린 것이다.

화단과 장독대 있던 곳이 담장과 함께 10여미터 아래로 산사태 나듯 쓸려내려갔다.

사라져 휑해진 화단과 장독대가 있던 곳으로는 길바닥이 내려다 보였다.

우산을 쓰고 지나가던 사람들이 올려다보면서 '저걸 어째' 하는 표정으로 서 있었다. 

 

사람이 지나 다니는 행길에는 담근 지 며칠 되지 않은 간장 독이 산산이 부숴져

폭탄의 파편처럼 조각조각 나서 사방으로 흩어져 있었다.

장독의 깨진 조각들 사이사이로는 메주덩이들이 뭉개진 채 여기저기 널려 있었다. 

비는 아랑곳하지 않고 더욱 억수같이 쏟아져 내려, 한낮이었는데도 밤같은 느낌이 들었던 날이었다.

 

 당시 다른 식구들의 모습과 그 이후의 수습한 일들은 전혀 기억에 남아있지 않고,

오로지 길바닥에 떨어져 깨진 장독과 메주덩이들, 그리고 비를 맞은 아버지가 절망 어린 얼굴 모습으로

쓸려내려가지 않은 잿빛 독 하나를 끌어올리려 애쓰는 모습만이 내 머릿속에 각인되어 있다.

 

 집이 몽땅 무너져 버릴 것 같은 두려움과 천둥과 번개가 치고 비가 쏟아지는 지옥같은 상황에서

 아버지 바지춤을 붙잡고 목놓아 울었던 기억이 난다.

 

 세월이 한참 흐른 후 중학교 미술 시간에  

뭉크의 '절규'라는 그림을 처음 보았을 때, 어린 시절 공포에 젖어있던 내 모습이 떠올랐다.

 

그후에도 오랫동안 비만오면 또 다시 집이 무너져 내리지 않을까 하는 불안감에 

다른 집같이 튼튼한 축대가 부러웠고,우리는 언제나 저 아래 평편한 평지에서 무너질 걱정없이 살게 될까?

하는 생각을 성인이 되어 그 동네를 떠날 때까지 했었다. 

 

어쩌면

내 마음 속 불안의 상당 부분은 그때 기인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기도 한다.

 

나도 공감을 잘 하는 편도 아니고, 이해하는 것과 마음이 움직이는 것이 다르다는 생각이다.

무엇보다 인간에 대한 예의로 남의 상처를 헤집는 짓은 하지 말아야 한다는 다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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