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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지 4 (조조와 원소)

삼국지 4 - 칼 한 자루 말 한 필로 천리를 닫다.

 

당시의 병사들은 자기네 우두머리가 적군에게 죽어 전투에서 지면 하루아침에 적군의 병사가 되는 경우도 허다한 것이다. 만화에서 보는 장면이 단순히 허풍이 아닌 것 같았다. 소위 말하는 각 진지의 짱들이 맞짱을 떠서 지면 일거에 승패가 결정되는 장면들 말이다.....

 

- 명공께서 능력과 위세를 사방에 떨치시고 천하를 호령하실 수 있게 된 것은 모두가 한실을 떠받들고 계신 덕택입니다.

이제 아직 천하가 평정되지 않은 터에 천자를 내치고 세우시는 일을 하시는 것은 합당치 못합니다.

반드시 사방에서 근왕의 군사가 일어 곤경을 당하시게 될 것이니 부디 깊이 헤아려 주십시오.

정욱이 일어나 그렇게 조조를 말렸다. 조조가 비록 분노로 혼란되어 있다 하나 옳고 그림을 분간 못할 정도는 아니었다.

정욱의 말을 듣자 아직도 자신이 지나치게 격해 있음을 깨닫고 곧 천자 폐립하는 의논을 그쳤다.

대신 동승을 비롯한 다섯 사람과 그 가속들에게는 일찍이 없었던 참혹한 벌을 내렸다.

각기 문마다 나누어 끌어낸 뒤 목을 베어 죽였는데 그때 죽은 사람이 남녀노소 합쳐 7백이 넘었다.

성안의 백성들 중에 그 처참한 광경을 본 사람치고 눈물짓지 않는 사람이 없을 정도였다.

 

흔히 조조를 간웅으로만 몰아가는 논의에서도 그때 죽인 7백여 명의 피는 한 중요한 근거가 되곤 한다.

하지만 조금만 시대 상황에 비추어 생각하면 그 사건이 반드시 조조에게만 있는 악성의 발로라고는 단정짓기 어렵다.

우선 살펴볼 것은 처벌의 범위이다. 남녀노소를 합쳐 그 가족 7백여명을 모두 죽인 것은 얼핏 보아서는 부당하게 처벌의 범위를 넓힌 듯 하지만 실제로 역사는 그보다 더 심한 예를 얼마든지 보여주고 있다.

당시보다 천년 뒤의 사회에서도 9족을 멸한 법이 지속 되기 때문이다.

 

- 폐하께서는 벌써 손가락을 깨물어 피로 쓴 조서를 그에게 내리신 것을 잊으셨습니까?

조조가 두 눈까지 부릅뜨며 소매에서 흰 비단에 쓴 밀조를 꺼내 보였다. 그 움직일 수 없는 증거를 보자 헌제도 더는 잡아떼지 못했다.

 

- 동귀비는 지금 잉태한 지 다섯 달이나 되었소. 바라건대 승상께서는 그 뱃속에 든 것을 보아서라도 동귀비를 불쌍하게 여겨 주시오. 누구보다 아끼는 동귀비라 헌제는 천자의 위엄도 잊고 조조에게 간곡하게 당부했다. 그러나 조조는 들은 체도 않았다.

 

- 아무리 비정한 복수심에 휘몰리고 있는 그라고 하지만 차마 헌제가 보는 앞에서 동귀비를 죽일수는 없었던 모양이다.

동귀비는 끝내 궁문 밖으로 끌려나가 목매어 죽었다.

 

- 원소와 조조의 대비

조조는 장수에게 쫓길 때 아들의 말을 뺏어 타고 달아나 목숨을 건지고 뒷날을 기약했다.

그런데 원소는 어린 아들의 병으로 마음이 흔들려 실로 걷기 힘든 기회를 놓쳐 버리고 있는 것이다.

조조가 던져졌던 상황이 원소보다 더 극한적인 것이었고, 또 감상적인 이들에겐 원소의 그같은 다감함이 훨씬 인간적으로 보일는지도 모르지만, 적어도 천하를 다투는 싸움터에 발을 들여 놓은 한 무리의 우두머리라는 입장에서 볼 때 원소의 그같은 다감함은 치명적인 약점으로 작용할 뿐이었다.

 

- (조조, 너는 결국 이 사람을 잡아두지 못했지만 보아라, 나는 반드시 이 사람을 수족으로 부리게 될 것이다.)

조조가 유비에게 들인 공이 어떠한 것이었는지도 모르면서 원소는 자신에게 그렇게 중얼거렸다. 그리고 누구보다 유비를 두텁게 대하면서 기주에 함께 머무르게 하였다. 조조는 물론이고 수십 년에 걸쳐 도우고 보살펴 준 공손찬이나 이따금식 파격적인 대우로 유비를 붙잡아 두려 했던 여포가 못한 일을 자신은 할 수 있다고 믿은 것이었다.

 

- 조조는 은근히 유비와 관우의 사이가 틀어지기를 기대하며 두 부인과 관우를 한 곳에 거처하게 했다. 유비는 생사를 알 수 없는데다 두 부인은 젊고 아리따웠으며 관우 또한 풍채가 남달랐기 때문에 생긴 기대였다. 하지만 춘추의 의로 길러진 관우의 정신은 애초부터 욕망에만 충실해 온 조조의 헤아림 밖이었다.

 

- 관공(관우)은 승상께서 내린 금은과 재물들을 고스란히 창고에 봉해두고 미녀 열사람도 내실에 남겨두었습니다. 한수정후의 임도 당상에 걸어두고 그 밖에 승상(조조)께서 보내신 사람들은 아무도 데려가지 않은 채 원래 데려왔던 자들만 보따리를 싸 따르게 했을 뿐입니다.

 

-유비는 싫든 좋든 원소에게로 되돌아가는 수밖에 없다고 생각했다. 원소의 변덕이 두려운 것은 사실이었으나 그보다는 이미 깊은 앙심을 품은 조조의 공격이 더 급한 발등의 불이었다.

 

- 우길을 시샘해서 죽이는 손책

 

- 원래 발석거가 쏘아보내는 돌은 무겁고 속도가 느려 눈으로 보고도 피할 수 있기 때문에 움직이는 표적에는 합당치 못했다. 그러나 토산 위에 있는 구름 사다리나 다락은 움직일 수 있는 물건이 아니었다. 그것을 향해 돌벼락이 쏟아지니 거기 올라가 있는 원소의 궁노수들이 성할 수가 없었다. 잠깐 사이에 머리가 터지고 배가 갈라져 죽는 군사가 헤아릴 수 없는 지경이 되었다. 그때 원소의 군사들이 얼마나 혼이 났던지 그 뒤로는 모두 바럭거를 벽력거라 부르며 두려워했다.

 

- 일생에 가장 많은 싸움을 한 조조인 만큼 크고 작은 패배 또한 가장많이 맛본 조조였으나 싸움에 졌다는 이유만으로 장수를 목 베려 든 것은 거의 예를 찾아볼 수 없다. 그런데 원소는 걸핏하면 장수들을 목을 베어 움츠러들게 했다.

 

- 조조는 원소가 버리고 간 금은보화며 비단으로 군사들에게 골고루 상을 주었다. 그리고 다시 서책과 문서를 뒤질 때였다. 편지 한 묶음이 나왔는데 모두가 허도에 있는 대신들이나 자신의 부하 장수들이 원소화 몰래 주고 받은 것이었다. 좌우에 있던 사람들이 말했다. "모조리 이름을 밝혀내 주여야 합니다. 이런 자들을 어떻게 용서할 수 있겠습니까?" 그러자 조조는 잠깐 생각에 잠겼다가 빙긋이 웃으며 대답했다.

"원소의 세력이 강할 때는 나조차도 마음이 흔들렸다. 내가 그랬을진대 하물며 딴 사람들이겠느냐?" 그리고는 명을 내려 묶음도 풀지 않은 채 모두 태워버리게 한 뒤 좌우를 둘러보며 말했다. "앞으로 이 일은 두번 다시 입밖에 내지 않도록 하라." 실로 우리는 조조의 일생 전체를 통해, 아니 이 삼국지 전체를 통해 가장 광채 있는 부분 중의 하나를 보고 있다.

 

- 원소는 여러 가지 면에서 천하를 차지할 인물로는 결함이 많은 사람이었으나 한편으로는 뛰어난 점도 많았다. 지난날 한낱 청년장수로서 나는 새도 떨어뜨릴 만한 권세를 쥐고 있던 동탁에게 분연히 <천하는 동공만을 위한 것이 아니다!>라고 소리치며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던 순간의 개결한 용기나 북방의 효웅 공손찬과의 힘겨운 싸움에서 절박한 처지에 떨어질 때마다 보여준 과단성 같은 것들은 참으로 볼 만했다. 하지만 역사는 언제나 이긴 자의 편이다. 그는 끝내 진 자가 되었기에 결함을 더 크게 그려지고 장점은 빛없이 묻혀 버렸을 것이다.

 

- 조조, 그 환관의 자식놈에게 사세오공의 후예인 내가 이 무슨 꼴이냐....원소는 자신도 모르게 탄식했다.

 

- 유비의 허락을 받은 손건은 밤새 말을 달려 형주로 향했다.

유표가 있는 곳에 이르러 보기를 청하니 유표가 허락했다. "그대를 현덕을 따르는 사람인데 무슨일로 이곳에 오게 되었소?" 손건을 불러들여 그렇게 묻는 유표는 이미 예순에 가까운 늙은이였다. 강하필준의 한사람으로 범 같은 손견을 죽일만큼 위세를 떨쳤으나 그도 나이는 어쩔 수 없는 모양이었다. 하지만 유비에 대한 감정만은 그리 나쁘지 않았다. 어제의 친구가 오늘의 적이 되는 난세라고는 해도 아직 유비와는 창칼을 맞댄 적이 없었던 것이다. 오히려 다같이 한실의 종친이라는 것에서 온 막연한 친근감이 있을 뿐이었다.

 

- 간혹 유비를 좋지 않게 보는 사람들 중에는 그가 끊임없이 친구와 적을 바꾸는 걸 들어 그 교활함이나 변화무쌍함을 나무란다. 실제로도 그것이 주종관계인지는 알 수 없으나 유비는 일생을 통해 적어도 대여섯번은 의지했던 사람을 배반에 가까운 형식으로 버리고 있다. 그러나 또 하나 확인할 수 있는 것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누구에게나 반갑게 받아들여지고 있는 점이다. 여포가 겨우 주인을 두 번 바꾸고 표리부동한 사람으로 가는 곳마다 배척되는 것으로 미루어보면 유비의 오고감이 그와는 달랐으리라는 짐작은 가능하다. 다시 말해 조조나 원소, 여포 등과 맺었던 관계는 떠나도 배신을 따질 수 없을 만큼의 어떤 동맹관계거나, 아니면 유비가 떠나도 비난받을 쪽은 언제나 상대방이었다는 뜻이 아닐는지. 그리하여 새로 맞는 쪽으로 보면 그의 과거에 대한 꺼림칙한 감정보다는 오히려 그가 이끄는 집단의 유별난 결속력이 반가웠던 것이나 아니었는지.

 

- 여남에서 허도로 가는 도중에는 조조의 고향인 초현이 있었다. 부귀하여 고향에 돌아가지 않는 것은 비단옷 입고 밤길 걷는 것과 같다고 했던가. 비록 군사들과 함께 허도로 가는 길이기는 해도 조조이 마음은 적지않이 설레었다. 그러나 종일토록 고향 근처를 지나도 아는 얼굴은 하나도 만날 수 없었다. 싸움에 끌려가 죽고 난리로 흩어진 까닭이었다. 그것도 싸움에서 죽은 사람의 대부분은 조조 자신을 위해 죽었던 것이다.

 

- 원소가 죽자 심배가 도맡아 장례를 치렀다. 그런데 그 상중에 유부인은 참으로 끔찍한 일을 저질렀다. 원소가 생전에 사랑하던 첩 다섯을 모조리 끌어내어 죽여버린 것이다. 그것도 죽어서나마 원소와 다시 만나는 게 싫어 머리카락을 자르고 얼굴을 도리며 시체까지 알아볼 수 없을 정도였다.

거기다가 아들 원상은 한술 더 떴다. 그렇게 죽은 총첩들의 가솔이 어머니나 자신에게 해를 끼칠까 두려워 또한 모조리 잡아 죽여 버린 것이었다. 그어미에 그 아들.

 

- 원소가 맏아들을 버리고 셋째를 세워 형제 사이에 권력을 다투게 만들었습니다. 각기 이끄는 무리가 있으니 우리가 급하게 치면 서로 구해주겠지만 늦춰 주면 서로 싸우게 될 것입니다.

 

- 진림이 태연하게 말했다. "화살은 시위에 올려진 이상 날아가지 않을 수 없는 법입니다." 말하자면 자신이나 자신의 글은 원소의 활시위에 얹혀진 화살과 같은 것으로 원소가 조조를 향해 쏘면 날아갈 수밖에 없었다는 뜻이었다.

 

- 조조의 아들 조비는 나이 열여덟에 아비를 따라 출정했다가 함께 기주성으로 들어갔다. 조비는 자를 자환이라 썼는데 태어날 때부터 여러 가지 상서로운 조짐이 많았다. 태어나던 날도 푸르고 자주색을 띤 구름이 둥그런 수레덮개 모양으로 산실을 떠돌며 하루종일 흩어지지 않았다고 한다. 그 구름을 본 자가 있어 조조에게 가만히 일러주었다.

"이것은 천자의 기운입니다. 아드님의 귀히 됨은 말로 다할 수 없을 것입니다."

조조는 아들들을 어릴 때부터 전장에 데리고 다녔는데 특히 맏아들 양이 장수와의 싸움에서 죽은 뒤로는 둘째 비를 항상 곁에 두었다.

 

- 조비는 원소의 아들 원희의 아내를 사랑했으며 뒷날에는 황후로까지 올려세우고 또 그녀의 아들로 태자를 삼았다. 모두가 그녀의 아름다움고 을 보지않고도 짐작할 수 있게 하는 일들이다.

 

- 원소는 중원의 목줄기를 껴누르듯 하북에 버티고 앉아 10여년이나 두렵고 고통스런 싸움을 걸어왔던 것이다. 한 적과 오래 싸우다 보면 쌓이는 미움못지 않게 정도 자란다. 거기다가 그들은 젊은 날부터의 친구였고 때로는 좋은 동맹군이었다. 조조가 원술이나 여포같은 강적과 싸우고 있을 때 원소가 북방에서 공손찬을 견제해 주지 않았던 들 어찌 조조에게 그같은 뒷날이 있었겠는가. 따라서 조조가 원소를 위해 흘린 눈물은 어떤 면에서든 진실할 수 있는 것이었다.

 

- 지난날 순임금의 어머니는 꿈에 옥으로 된 참새가 품안으로 날아드는 걸 보고 순임금을 낳았다고 합니다. 이제 승상(조조)께서는 비록 구리로 된 참새를 얻으셨으나 길조인것만은 틀림없습니다.

 

- 조조에게는 아들 다섯이 있었는데 그 중에서도 조식이 밝고 지혜로운데다 글을 잘 지어 조조는 그를 가장 아꼈다.

 

<삼국지 / 나관중 지음 / 이문열 평역 /민음사>

 

봉선사 연꽃 축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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