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밑줄긋기

길귀신의 노래

- 나는 삶이란 그것을 가꿔갈 정직하고 따뜻한 능력이 있는 이에게만 주어지는 어떤 꽃다발 같은 것이라는 생각을 한다.

 

- 기실 자신이 아끼고 아낀 책을 헌 책방에 팔아보지 않은 사람은 인생이 무엇인지 잘 알 수 없을 것이다.

 

- 서점은 인간의 영혼을 파는 가게이다.

인간의 삶과 사랑과 예술에 대한 체취들이 깊게 고인 그 공간들이 지금은 하나 둘 사라져간다.

집을 나서면 제일 먼저 마주치는 가게가 서점이었으면 싶고, 낯선 여행지의 가장 고요하고 아름다운 장소에 자리한 가게가 서점이었으면 싶다.

 

-조금 거칠게 말하고 행동한다고 해서, 두 사람의 영혼을 한없이 폄하한 낮의 시간들이 많이 부끄러웠습니다.

단순히 눈으로 보고 평가할 수 없는, 한없이 깊고 따뜻한 시간들이 지상 위에 있습니다.

 

-'사평역에서' 가 발표된 지 서른 해가 넘었다. 처음 십년 정도는 누군가 내게 '사평역에서'를 이야기하면 기분이 좋았다. 무엇보다 내가 그 시를 썼던 시절의 용맹정진이 생각나기 때문이다. 그러나 언제부턴가 누군가 내게 '사평역에서'를 이야기하면 기분이 나빠진다. 1981년 이래 나는 아무것도 한 일이 없는 작가가 된다. 생각해보니 그 말이 맞기도 하다. '사평역에서'가 나의 감옥이 된 것이다 어떻게 이 감옥을 부수고 나갈까? 나갈 수 있기는 한 것인가. 세월이 흐른다. 사평역은 이 세상 어디에도 없지만 따뜻한 세상을 꿈꾸는 가난한 마음의 어느 한구석에는 여전히 서 있을 것이다.

 

- 언제 이꽃들은 날아와 이곳 순천만에서 자라게 되었을까.

인간은 언제 어디서 날아와 이 지구에 둥지를 틀고 살게 되었을까.

우리는 언제 어떻게 이 지구를 떠나게 될 것인가.

문득, 바람에 흔들리는 저 외로운 미국미역취 꽃들이 그답을 알고 있을 것 같은 생각이 든다.

 

-눈 속으로 날아가는 고니들의 순백의 비상을 보며 나는 이 만 안에 생명을 부린 모든 존재들의 삶의 시간들 또한 저렇게 유장하고 허허롭기를 바라는 것이다

(허허롭다. : 텅 비어 있는 듯하다.)

 

-나는 예전에 내가 보리피리를 만들어 불었던 방식과 똑같은 방식으로 아이와 함께 보리피리를 만들어 불었다.

몇 십 년이 지나도 변하지 않는 것들이 삶 주위에 있음은 진실로 축복이다.

문득 그것들을 삶의 길 위에서 만나게 되었을 때 우리는 현실이 펼친 난감하고 고통스런 시간들의 그물로부터

조금씩 자유로워질 수 있는 것이다.

 

-牛鳴우명은 화포 바로 곁의 마을이다. 소울음소리. 마을 이름이 느슨하고 여유롭다.

나는 이 마을을 우명이 아닌 음메 마을로 부른다.

 

-아이들은 싱그러운 이 교실에서 세상을 살아갈 지혜를 하나씩 배우겠지요.

지혜, 이 말이 얼마나 아름다운 말인지 세상의 모든 거칠고 쓸쓸한 일들은 지혜의 결핍에서 비롯되지요.

 

곽재구산문집/열림원

 

'밑줄긋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장자 - 덕충부  (0) 2020.08.21
딸에게 보내는 심리학 편지  (0) 2020.08.07
지지 않는다는 말  (0) 2020.07.26
당신과 나사이  (0) 2020.07.07
마음 미술관  (0) 2020.06.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