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밑줄긋기

지지 않는다는 말

-나는 빵집 아들로 태어났다. 이건 선택할 수 있는 게 아니다.

나는 태어나자마자 달력의 빨간 날이란 그간 못 벌었던 돈을 일시에 벌어들이는 날이라는 걸 깨달아야만 했다.

 

-가끔 나는 명절이면 온 가족이 들러붙어 일하던 그 시절을 떠올리곤 한다.

온 가족의 일, 온 가족이 둘러앉아 봉투를 붙이거나 케이크를 나르거나 빵을 팔던 일. 떠들썩하게 얘기하고 싸우고 꾸지람을 들으면서도 마음을 달래 힘을 합쳐야만 했던 일, 지금도 지방의 어느 제과점에서는 그렇게 일할지도 모르겠지만, 이제 그런 일들이 내게는 멀어졌다. 그리고 이제 돌아보면 그게 우리집의 명절이었음을 알 것 같다.

왜 항상 돌아보면 삶은 그제야 그 의미를 가르쳐 주는 것일까?

기회의 뒤통수에는 머리카락이 없어 지나가고 나면 잡을 수 없다는 말이 있다.

 

-4장 그렇지만 삶은 고급예술이다.

다시 돌아간다면 나는 더 많은 일들을 경험하고 더 많은 사람들을 만날 것이다.

다시 한 번 더 살 수 있다면 우린 정말 잘 살 것이다.

 

-열심히 뭔가에 빠진다. 그 다음에는 갑자기 다 부질없어 보인다.

20대에는 제대로 산다는 느낌이 잘 들지 않고, 모든게 갑자기 부질없어 보이는 것일까?

그건 어쩌면 20대에는 결과는 없고 원인만 존재하기 때문이다.

사람은 예측한 대로 결과가 나오면 자신의 삶을 통제 한다고 생각하고, 그때 제대로 산다고 본다.

우리가 자꾸만 어떤 결과를 원하는 건 그 때문이다.

 

-20대 후반이 되면 우리는 모두 샐리처럼 울 수밖에 없다.

그건 아마도 20대란 씨 뿌리는 시기이지 거두는 시기가 아니기 때문이리라.

 

-구원은 굴하지 않는 강철 같은 인간의 마음이 하는 게 아니다.

인간들이 모두 변하고 난 뒤에도 찌꺼기처럼 변하지 않고 남아 있는 얼룩 같은 게 우리를 구원한다.

그걸 일러 영혼이라 할지도 모른다.

 

-소개한 책 은근한 매력’-로리헬고 지음

 

-일본에서 신사에 들렀을 때, 일본인 친구의 권유로 재미삼아 소원을 빌었다.

주택가 옆 작은 신사를 빠져나오는데 일본인 친구가 무슨 소원을 빌었느냐고 내게 물었다.

나는 더 많은 일들이 내게 일어나기를, 그리고 그 일들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일 수 있게 되기를 원했다고 대답했다.

예컨대 어떤 일이냐고 그 친구가 내게 물었다. 말하자면 예측할 수 없이 변하는 날씨처럼,

늘 살아서 뛰어다니는 짐승들처럼, 잠시도 쉬지않고 바람에 흔들리는 갈대처럼.

 

-내 절망과 좌절은 과거에 있거나 두려움과 공포는 미래에 있다는 걸,

지금 이 순간에는 오직 지금 이순간의 감각적 세계뿐이라는 걸...

 

-최선을 다했다면 그게 바로 챔피언이란 말은 전국 고속도로 휴게소 화장실마다 있는 상투적인 말이지만, 그 문장을 볼 때 마다 나는 끄덕인다. 그 상투적인 문장을 이해하려면 대단히 비상투적인 과정을 거쳐야만 한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바다는 비에 젖지 않는다.

 

-어떻게 겨우내 헐벗은 흐린 빛으로 서 있던 나무들 몸에서 어떻게 화려한 꽃들이 터져 나올까?

 

-상상이란 이처럼 몸이 생각을 다한 곳에서 일어나는 뭔가라고 생각한다.

뭔가를 상상한다는 것은 자기가 몸으로 알 수 있는 것 이상의 것을 본다는 얘기다.

 

-살다보니 장의차를 탈 일도 곧잘 생겼지만 회수차량안의 분위기 만큼 침울하지는 않았다.

입을 여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출발선에서 서로 용기를 북돋우며 격려하던 분위기와는 완전히 달랐다.

40킬로미터 지점에 이르렀을 그때, 예의 그 방송사 취재팀이 버스에 올랐탔다.

카메라 치워!” 입을 다물고 있던 사람들이 일제히 성난 목소리로 외치기 시작했다.

 

-신은 내게 삶이라는 선물을 주셨다. 신에게 보답하기 위해 나는 그 삶을 살아간다.

 

-내 삶에 가장 큰 영향을 끼친 건, 지지 않는다는 말이 반드시 이긴다는 걸 뜻하는 것만은 아니라는 깨달음이었다.

지지 않는다는 건 결승점까지 가면 내게 환호를 보낼 수많은 사람들이 있다는 걸 안다는 뜻이다.

아무에게도 이기지 않았건만, 나는 누구에게도 지지 않았다. 그 깨달음이 내 인생을 바꿨다.

 

<김연수/마음의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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