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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여행

포루투칼 - 신트라에서 리스본으로

오늘 하늘은 파랗다.

이동하는 날이니 새 옷으로 갈아 입고 아침 산책을 하며 커피를 마시자고 나갔다.

이른 시각이라 사람들도 거의 없어 호젓한 길이 되었다.

플라타너스는 우리나라에선 가로수로 흔히 볼 수 있고 이맘 때면 환경 미화원분들을 수고롭게 하는 나무인데

이곳에선 우리나라 플라타너스보다 잎이 작고 다른 나무들 사이에 노랗거나 주황색으로 물들어 있어 포인트 구실을 해주고 있었다.

상점에선 플라타너스 잎 모양의 그릇들도 있는 걸 보면 우리나라에서보다 대접 받는 나무임에 틀림이 없었다.

 

신트라에서의 마지막 날 무지개까지 하늘에 떠 있어서 기분 좋은 아침 산책길이 될 것이라 여겼다.

그런데 잠시후 느닷없이 나타난 검은 구름 조각이 우리 머리 위를 지나가면서 비를 뿌리기 시작했다.

배낭에서 우산을 꺼내 썼다. 하지만 새로 입은 바짓단이 젖었다.

우린 가던 길을 돌아 집으로 돌아왔다. 비오는 신트라를 일찍 떠나기로 했다.

신트라가 좋은 여행지는 맞지만 하루도 빠짐없이 비가 왔으니, 에덴 동산까지는 아니었다.

 

기차를 타러 캐리어를 끌고 기차역으로 향하는데 비는 멎었다.

하지만 기차를 타고 떠나려니 또다시 비를 뿌리고 있었다. 40여 분을 달려 리스본에 도착했다.

리스본은 파란 하늘을 보이고 있었다. 체크인 시간이 멀어서 우린 짐만 맡기고 나왔다.

이 숙소도 포루투 숙소처럼 현관과 우리방 비밀 번호로 열게 되어 있어서 열쇠를 들고 다닐 필요가 없어 좋았다.

 

18일 전 리스본을 떠난 것이 아주 오래전 일 같았다.

하지만 사람들로 항상 북적이는 아우구스타 거리의 모습은 여전해서 흰 분칠을 하고 동상처럼 앉아 있는 사람도 똑같고,

피에로 분장을 하고 풍선을 파는 아이들도 여전했다.

다만 사람들의 옷차림이 두툼해지고 불어오는 강바람이 차게 느껴졌다.


커피와 에그타르트는 코임부라와 신트라에서 먹던 맛보다 역시 더 좋았다.

다시 도시의 왁자함이 그리웠었는지 리스본이 좋게 느껴졌다.

단걸 먹으면 짠게 먹고 싶고 짠걸 먹으면 단게 땅기듯.. 단짠단짠이라더니,

언제는 호젓하고 사람이 적은 산골이 좋다가 이제와서는 왁자한 사람들의 도시가 그리운 걸보면 매양 한 장소만 좋을 수는 없는 것 같다.

 

모래사장에서 동물을 만들고 있는 사람과 돌탑을 쌓고 있던 할아버지도 여전히 같은 곳에서 돌탑을 쌓고 있었다.

바람은 새침했지만 양지 바른 강가로 나오자 마치 봄볕을 쬐듯 사람들이 많이 나와 앉아 있었다.

수산 시장이 나타나자 새우를 사자고 한다.

그걸 귀찮게 들고 다니자고? 들고 다니지 말고 이따가 체크인 시간되었을때 사자.

여기 12시면 문닫아. 그래? 그럼 사지뭐. 생새우 1킬로를 사고 감도 4개를 샀다.


그런데 잠시 걷다보니 감하나가 터졌다.

우린 하는수 없이 터진 감을 입에 묻히면서 먹고 쉬었다.

쉬다가 일어나 걷는데 한 남자 분이 날 툭 치더니 베낭의 지퍼가 열렸다며 알려주었다.

 깜짝 놀라 살펴보니 다행히 없어진건 없었다.


쉬다가 전망대도 올라갔다. 전망대 위에선 한남자가 사운드 오브 싸일런스를 기타를 치며 부르고 있었다.

 명곡은 만국 공통의 언어이다.


벤치에 앉아 있는 동안 혼자 화장실을 다녀오며 생각해보니

우리가 가장 긴 시간 헤어져있던 시간은 각자 남녀화장실을 갈 때뿐이었다.

그럼에도 이번 여행에선 다툼도 별로 없었던 것 같다.

나이가 들면서 요령이 생겼기 때문이기도 하고 그저 무덤덤하기 때문이기도 할 것이다.

 

전망대에서 내려와 숙소로 향하는데 영화 촬영 을 하고 있었는데

우리가 수퍼에 들어갔다 나올 때까지도 똑같은 장면을 계속 찍고 있었다.


해질무렵 일몰을 보기 위해 나왔다.

많은 사람들이 서쪽 하늘을 바라보고 있었지만 서편 하늘을 두꺼운 구름이 가리고 있어 붉게 물든 저녁 노을을 볼 수가 없었다.

아쉬움을 달래주려는 듯 한남자가 플룻으로 예스터데이를 연주하고 있었다. 돌아오는 길에 패딩 점퍼 하나를 샀다.

우리가 내민 지폐를 마카를 문질러 위폐여부를 검사 해보고는 영수증을 내 주었다.

식당앞 야외 테이블에는 보온을 위해 켜둔 난로가 불을 뿜고 있었다.

달라진게 하나 더 있었던 것이다.


"안녕하세요? 배 고파요?" 능숙한 한국말을 쓰는 레스토랑 종업원 소리에 놀랐다. ㅎ

 

집에 와서 새우를 삶아 먹더니만 혀가 부었단다.

갑각류 알러지가 있지만 새우를 좋아해서 먹었는데 그러더니 알러지 약을 먹는다. 

그러면서 날 더러 추위탄다고 뭐라뭐라 그런다. 자기는 별 이상한 알러지도 다 갖고 있으면서 말이다.

 

창 밖을 보니 강가 쪽으로 길게 난 길의 야경이 멋지게 들어왔다.

리스본 에 다시 돌아왔다.

낯선 장소는 기대감과 신비감에 두근거리게 하지만 낯익은 장소는 추억을 불러내 아련하게 만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