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에 화장실을 드나들다 잠을 설쳤다.
하필이면 지사제도 챙기지 않았는데 말이다.
여행을 계획하면서 나에게 다짐하듯,
"이번엔 현지 음식 먹을거지?"
" 다른 사람들과 같이가니까 밥 해먹기는 힘들거야" 라고 했었다.
단둘이만 여행을 하다가 처음으로 다른 부부들과 함께 하는 여행이지만,
기간이 그리 길지 않았기때문에 "그러지 뭐~"하고 선심쓰듯 대답했었다.
단 둘이 여행을 할땐 당연히 쌀을 사고, 김치를 담가 먹었는데 말이다.
그랬는데 생각과는 달리
입에서 그럭저럭 먹을만 한 음식들이 몸에서는 아니었나보다.
약간의 기름진 음식이 몸에서 거부 반응을 보인 것이다.
새벽 내내 속에서 전쟁이 벌어지고 있었던 것이다.
아침에 누룽지를 끓여서 간단히 속을 좀 풀었다.
지사제 있으신 분을 찾는 카톡에 고맙게도 두 집에서 있다고 해서 구해다가 먹었다.
그바람에 다 들 내 속이 좋지않음을 알리게 된 것이다.
아침 식사 자리에서 만난 일행 분들이 내 안색을 살피면서 괜찮느냐고 물었다.
여행자로서의 결격사유인 나의 몸을 말로서가 아닌 직접 보인 것이다.
새로운 음식을 경험하는 것이 여행의 즐거움중에 하나라고
머리로는 수긍을 하고 이해를 하면서도 몸까지 이해시킬 수는 없는 것이었다.
그렇다고 시원치않은 위장을 떼어놓고 여행을 갈수도 없는 일이니 말이다.
오늘 일정은 이러하다.
08시30분 호텔 픽업 : Sibirskoe Podvorie Hotel
주요 코스 :
1, 블라디보스톡 출발 - 우수리스크로 이동
2, 고려인 강제이주역 - (라즈돌리노예 역)
3, 이상설유허비 , 최재형 생가
4. 발해유적지탐방
13:00 점심식사
5, 우수리스크 시장
6, 고려인문화센터 탐방
7, 블라디보스톡 -루스키 섬으로 이동
8, 루스키섬 트래킹
두 명의 기사가 와서 우리를 태우고 우수리스크로 이동하였다.
남자들은 여자 기사가 여자들은 남자기사 차에 타기로 정했다.
다들 원한 일이었다.
훤칠한 남자 기사는 톰행크스 닮았다고 여자들은 좋아했다.
하지만, 좋아했던 것도 잠시, 한국말을 비교적 잘 하고, 아이들을 가르치고 있다는 여자 기사와는 달리
남자 기사는 한국말을 전혀 못했고, 네비도 없어 길을 헤매기 일쑤였다.
첫번째 만나기로 한 장소에도 길을 잘못 든 덕에, 한참 후에 나타났다. 처음에 환호작약했던 여자들 표정이 뾰루퉁해있었다.
그렇다고 차를 바꾸자고 하기도 그런 상황이었다. 할 수없지 뭐~~빛좋은 톰 크루즈인 것이다.
우리 운전기사는 푸틴의 재집권에 대한 의견을 물으니
러시아도 엄연한 민주주의 국가고 푸팀도 선거에 의해 선출되었다고 강한 표현으로 말하였다.
더 이상 꼬치꼬치 물을 상황도 아니었고, 우리말이 아주 능숙한 것도 아니었다.
최재형 생가를 찾아갔다.
이준, 이상설, 안중근, 강우규등은 익히 역사책에서 이름을 들었지만 최재형은 이름이 그리 알려지지않은 인물이다.
1800년대 말과 1900년대 초 애국계몽운동과 항일운동에 헌신하며 '고려인들의 페치카(러시아어로 난로라는 뜻)'.
'연해주 독립운동의 대부'로 꼽히던 그가 왜 이처럼 뒤늦게 알려지고 최근에야 그를 기리는 움직임이 본격화된 것일까.
남북 분단과 이념 대결 탓도 있고, 러시아로 귀화한 이유도 있지 않을까?
또한 최근 문재인 대통령이 언급한 김원봉과 같은 이유가 아니었을까?
러시아 연해주 블라디보스토크에서 북쪽으로 100여㎞ 떨어진 우수리스크의 보로다로소코 38번지.
독립운동가 최재형이 말년에 살았던 흰색의 1층
러시아인의 손에 넘어가 오랫동안 방치되고 있던 것을 2014년 재외동포재단 지원으로 고려인민족문화자치회가 사들였으나
자금 문제 등으로 리모델링을 못하고 있다가 최근 들어서 공사를 시작해 완공되었다.
1860년 함경북도 경원에서 노비의 아들로 태어난 최재형은
11살 때부터 포시에트 항구에서 허드렛일을 하다가 선장 부부의 귀여움을 받아 6년 동안 상선을 타고 전 세계를 누볐다.
선장 부부의 권유로 표트르 세메노비치란 러시아식 이름도 얻었고 정교회 세례도 받았다.
이때 익힌 러시아어와 얻은 견문은 그의 큰 자산이 됐다.
1877년 무역회사에 들어가 실무를 배운 뒤 러시아군의 통역으로 활동하다 군납회사를 차려 큰돈을 벌었다.
고려인들의 농장에 목축을 장려해 러시아군에 채소와 함께 돼지와 달걀 등을 공급했고,
정부가 발주하는 도로나 철도 공사에도 고려인 인부들을 데리고 참여했다.
1884년 6월 조러통상조약이 체결되자 러시아로 귀화했다.
최재형은 러시아 정부의 신임을 얻어 1893년 연추의 도헌(군수)으로 임명됐다.
1896년에는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열린 니콜라이 2세의 황제 대관식에도 참석하고 러시아 정부의 훈장도 받았다.
그래도 고려인과 모국에 대한 그의 사랑은 변함이 없었다.
30여 곳의 학교를 세우고 목축을 장려하는 등 고려인 계몽과 가난 퇴치에 팔을 걷어붙였다.
그가 독립운동에 본격적으로 뛰어든 계기는 1905년 을사늑약 체결이었다.
개화파 박영효의 초청으로 일본에서 6개월간 머물던 중 이 소식을 접하고 그동안 번 돈과 남은 생을 국권회복 운동에 바치기로 결심했다.
그 무렵 국내의 우국지사들도 이런저런 이유로 두만강을 건너, 만주의 국경을 넘어 연해주로 몰려오고 있었다.
최재형은 연해주가 독립운동의 요람으로 자리 잡는 데 중추적 역할을 했다.
1907년 고종의 밀명을 받고 헤이그 특사로 가던 이상설과 이준이 연추에 있던 그의 집에 머물렀고,
안중근도 1909년 거사를 앞두고 이곳에서 최재형이 구해준 권총으로 사격 훈련을 했다.
3·1운동 이후 연해주를 근거지로 삼은 독립운동 세력의 활발한 항일투쟁은 일제의 무자비한 보복을 불렀다.
일본군은 1920년 4월 4일과 5일 블라디보스토크의 신한촌과 우수리스크의 고려인 밀집 지역을 습격해
독립운동가들을 사살하고 가옥에 불을 지르는 등 만행을 저질렀다.
'4월 참변'이라고 부르는 이 사건 때 우수리스크에 살던 최재형도 일본군에 붙잡혀 순국했다.
최재형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있자니,
역사를 바르게 안다는 것이 참 힘들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 사람을 온전하게 평가한다는 것도 힘들고, 누구의 손에 의해 역사가 기술되는지가 후세에게 엄청난 영향을 미치고, 왜곡될 수도 있다는 사실.
우리가 알고 있는 역사적 지식들이 과연 얼마나 진실과 부합되는가. 하는 생각을 하면
지금 벌어지고 있는 일들에 대한 올바른 기록이 참 중요하다는 건 말해 무엇하리.
그래서 팩트체크가 중요하다. 자기 정파의 이익을 위해 만들어지는 무수한 가짜 뉴스로 인한 피해는 지금뿐 아니라,
먼 후손들에게까지 영향이 미친다는 생각을 하면 눈을 부릅뜨고 깨어있어야 한다는 가르침을 주는 듯 했다.
최재형 생가를 나와 들른 발해 유적지에는 생뚱맞은 불상하나와 방치되다 시피한 몇몇 유물들만 놓여 있어 아쉬웠다.
루스키섬으로 이동해서 푸른 망망대해에서 불어오는 바닷바람을 맞으며 짧은 트레킹을 하였다.
트레킹 코스는 풀숲 사이에 길이 좁게 나 있었는데 바로 옆이 깎아지른 절벽 밑으로는 파도가 넘실거리고 있었다.
무섭다고 내 손을 잡고 차마 바다쪽으로는 얼굴을 돌리지도 못하는 모습을 보자.
옆에 있던 자매님이 "센척하더니 아니었네~~"하면서 놀린다.
길을 걷다보니 몇 년 전 영국 세븐시스터즈를 찾아가던 길과 흡사했다.
이런 곳은 안전을 위한 시설 이외에는 가능한 지금 이대로의 모습으로 놓아두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쉽게 보기 힘든 광활한 벌판과 멀리 푸른 바다가 그야말로 날 것 그대로의 자연속에서
다들 표정들이 더없이 좋아보였다.
언제 그랬느냐 싶게 내 몸의 각종 장기들도 가라앉아 평안함을 유지하고 있었다.
이어서 차를 타고 극동 연해주 주립대학을 찾아갔다.
대학 건물이 차지하고 있는 면적보다 기숙사가 더 넓은 면적을 차지하고 있었다.
인구가 많지않은 이런 극동의 끝에 이렇게 큰 대학이니 당연했을 것이다.
블라디보스톡의 레닌 동상앞에서 차를 내려 달라고 해서 내리고 우리를 안내하고 운전을 해준 러시아인들과도 헤어졌다.
호텔로 돌아오는 도중에 본 블라디보스톡시청사 건물이 세워져 있었는데 평범한 건물이었다.
우리 나라의 구청, 시청 건물과 비교되었다.
한편으론 우리의 국력이 좋아져 개성적인 공공 건물이 많아져서 뿌듯하기도 했고,
또 다른 한편으론 쓸데없이 외관만 신경써서 낭비를 한 건물로도 생각되었다.
공원을 걷다가 잎이 거의 배추 잎사귀만한 질경이들을 볼 수 있었다.
차들과 발에 밟힌 도시의 잎들과는 차원이 다른 질경이들이었다.
김정은과 푸틴이 정상 회담을 해서 유명해진 루스키섬 트레킹 중에......걸어가는 좁은 길 옆으로는 깎아지른 절벽이다.
저멀리 우리가 타고 온 차량이 보인다.
바람이 심하다면 바다로 날아 떨어질 것만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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