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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여행

터키 - 이스탄불 11일째 이야기 (크주 쿨레시)

 아침 8도로 출발하고 비 소식도 없으며 날도 청명하다.

9시가 조금 넘은 시각인데 갑자기 위층에서 공사를 하는지 쿵쾅거리는 소리가 난다.

우리보고 빨리 나가라는 소리처럼 들렸다.

그렇지 않았다면 우린 더 늘어져서 뒹굴거리고 있었을텐데...

 

어디로 갈까? 갑작스레 생각없이 나오니 우리 안 가 본 길로 가자고 길을 갔다.

내가 고집을 부려 바다보러 가자고 비탈 길을 걸어내려와서 바닷가로 내려왔는데

내려온 길을 뒤돌아보더니 다시 걸어올라 가려면 힘든데 왜 이렇게 내 생각도 안하고 내려오냐고 투덜거린다.

뾰루퉁했던 얼굴이 큰 아이가 여행 잘 마무리하고 돌아오라는 카톡을 보더니 환해졌다.

 

주변에 그냥 널부러진 유물들이 흙속에 묻혀 방치되어 있는 것을 여기서도 볼 수 있었다.

우리나라나 다른 선진국에 있다면 아마도 박물관에 소중하게 모셔져 있을 것이다.

 

힘들다고 버스타자고 해서 버스를 타고 칼라타 다리 옆 선착장 부근에서 내렸다.

아시아 지구 쪽으로 가는 배를 탔다. 가는 도중에 작은 섬에 탑이 하나 들어서 있다.

 

 

<처녀의 탑이 있는 작은 섬>

 

크즈 쿨레시(처녀의 탑) 지금은 유명 레스토랑인 '레안드로스'가 있는 곳이다. 이 탑에 얽힌 전설은

이곳을 다스리던 왕에게 딸이 하나 있었는데 예언자가 이르기를 16세가 되기 전에 뱀에게 물려 죽는다고 말 하였단다.

그러자 왕은 딸을 구하려고 풀이 하나도 없는 이 작은 섬으로 딸을 보냈다.

딸이 16세가 되던 생일날, 왕이 생일 축하 선물로 과일 바구니를 선물로 보냈는데

이 과일 상자에 숨어 있던 뱀에게 물려 결국 사망하게 되었다는 슬픈 전설이 전해진다.

 

배의 꼭데기에서 갈매기들을 보다가 풍경을 보다가 내려오니 노랫소리가 들린다.

배에서 오디오로 틀어준 노래인가 싶었는데 생음악이었다.

남자의 기타 반주에 맞춰서 여자가 노래를 하는데 우리나라 서글픈 민요같기도 하다.

꽤 잘 부르는 노래라고 여겨졌다.

 

아시아지역에 내리니 널브러진 개들이 먼저 반긴다.

아곳 지명이 위스크다라여서 그런지 지나가는데 스피커에서 그 노래가 들려왔다.

위스크다라 머나먼 길 찾아왔더니~~

6.25 전쟁 중에 우리나라에 꽤 많은 수의 군인을 파견한 적이 있었는데, 당시 터키 군인들이 고국을 그리워하며

많이 듣고 불렀던 노래라고 한다. 우리나라 가수가 번안해서 부르기도 했었고, 그래서 내가 기억하고 있었던가 보다.

 

걸어서 아시아 지역 끝자락에 위치한 철도 역을 찾아갔더니

지금은 가림막이 쳐져 있고 들어가지 못하게 하고 있었다.

입구에서 한 남자가 어디서 왔느냐고 묻더니 한국이라고 하니까 번역기로 한글로 번역해서 알려주었다.

토요일과 일요일은 무료이니 그때 들어올 수 있으니 그때 오라고....

 

돌아오는 길에 함씨를 먹었다. 빵과 함께 먹었다.

돌아가면 함씨가 먹고 싶을 것 같다. 시장 구경을 하고 배를 타고 돌아왔다.

아직 공사가 끝나지 않아 시끄러울지 모르니 우린 좀 더 바깥에서 지체하고자 블로모스크 근처에서 차를 마셨다.

차를 마시면서 밖을 내다보니

 

짜이를 쟁반애 담아 배달하는 남자.

접시에 담긴 음식을 배달하는 남자.

바구니에 빵을 담아 배달하는 남자

모두 다 남자들이다....

 

돌아와서는 어제 마트애서 살까 말까 망설이다 산 셀럽을 따서

전자 렌지에 덥혀 먹어보니 그동안 사서 먹어본 셀럽 맛과는 조금 달랐다.

그동안 카페애서 먹던 맛은 고소했는데 지금 먹은 것은 약간 시큼한 맛이다.실망...

 

엄마 돌아가셨을때 어땠어?

만 4년동안 누워계셨기 때문에 별다른 느낌이 없었어.

쓰러지셨을 때가 더 충격이었지.

 

지금 당신의 손주, 손주 사위, 손주 며느리가 있다는 사실에 참 흐믓해 하셨을텐데.....

그 중에 6명이나 의사라 그때의 병은 지금 생각하면 병도 아니었을 텐데 말이다.

그건 둘째치고 당신의 아들이 학교 선생이 된 것 조차 모르고 돌아가셨다.

동네 사람들 모두 쟤는 죽지 않으면 바보가 될 거라고 한 아들이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