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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여행

터키 - 이스탄불에서 1일차

 일어나보니 검은 새벽 하늘을 배경으로

하얀 갈매기들이 점점이 날아오르며 모였다 흩어졌다고 하고 있었다.

평창 올림픽 때 하늘을 수놓던 드론을  띄워놓은 장면을 보는듯 했다.

창 밖으로 보이는 바다는 마르마라해이고

흑해에서 이곳을 지나 더 남쪽으로 가면 에게해, 또 다시 남으로 지중해로 이어지는 바다이다. 

 

아침을 먹고 나서 앉아 있었더니 이슬람 사원에서 스피커를 통해 아잔 소리가 크게 들렸다.

우리나라 산에 가면 가끔 들을 수 있는 불경 소리처럼 느껴졌다.

이른 아침의 아잔소리인데도 그리 부담스럽지는 않았다.

갈매기들의 날개짓은 우리를 환영하는 몸짓이고, 아잔 소리도 손님을 맞아 부르는 노래라고 생각하였다.

터키와 한국은 곧잘 형제의 나라라고 하니 말이다.


샤워를 하고 기분도 좋아졌다.

여전히 창 밖에선 바람이 심하게 부는지 나무들이 휘청거리고 있었다.

아침을 먹고 커피까지 마시고 나니 피로도 풀리고 생각도 긍정적으로 바뀌었다.

 

밖으로 나오니 기온은 그리 낮지 않았지만 바닷 바람이 불어 차게 느껴졌다.

롱패딩을 입고 갈까 말까하다가 입고 왔는데 그러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가다가 빵 집앞에 제라늄 화분이 싱싱하게 꽃까지 피워내며 살아있어

겨울이 그리 춥지 않음을 알려주고 있었다.

내가 제라늄 화분에 관심을 보일 때 옆에선 빵 집의 고소한 빵 냄새에 관심을 보였다.

같은 장소에서 자신의 관심 사항 속에 있는 것들이 더 눈에 들어오게 마련이다.

모름지기 눈에 들어오는 것이 다 머릿 속까지 전달되는 것은 아니다.


우린 아침을 먹었음에도 빵 집에 들어갔다.

그리고 터키 사람들이 정말 많이 마시는 차도 함께 시켰는데 차이라고 부르는 홍차다.

오래간만에 먹는 홍차에서 아주 어린 시절 집에서 먹던 홍차 맛이 생각났다.

어린 시절 어떤 경로로 들어왔는지 모르지만, 서양 것이라면 다 좋다고 여겼던 시절이었다.

 

우리가 다 먹고나니 아주머니가 찻 잔을 가져 가면서 터키 말로 뭐라고 하길래

나는 잘 마셨느냐고 하는 듯해서 '땡큐~'했더니 '더 줄까요?'라는 뜻이었던 것 같았다.

이미 계산을 마친 우리에게 또 다시 두 잔의 홍차를 내왔다. 그 홍차가 서비스인줄 알았지만 아니었다.

그래서 마저 두 잔의 값을 치렀지만 가격도 싸고 덕분에 식은 몸을 충분히 덥혀 주었다.

 

히포드롬 광장에는 콘스탄틴오벨리스크와 테오도시우스 오벨리스크 두 개의 오벨리스크가 있었다.

그리고 두 오벨리스크 사이에는 청동으로 꼬여져있는 꽈배기 모양의 부러진 기둥이 아무 설명없이 서 있었다.

끝부분은 잘려나가서 원래의 모양이 궁금했는데 나중에 박물관에 그려있는 그림을 보고

그 윗부분이 세 갈래로 갈라진 뱀 세마리라는 걸 알게 되었다.

그리고 유리 상자 안에는 뱀의 머리 하나 만이 달랑 보전되고 있었다.

 

블루모스크에서 안을 보려고 기웃거리고 있으려니

한 할아버지가 '노 프러블럼' 하면서 들어가도 된다고 하였다.

입장료는 없었다.

 

기온이 떨어져서인지 입구의 대리석 바닥이 살짝 얼어서 미끄러웠다.

실내 바닥에는 카페트가 깔려 있었지만, 신발을 벗고 걸어다니려니 발이 시렸다.

다음엔 덧양말을 가져와야겠다. 

블루모스크를 나와 아야소피아 성당 앞까지 걸어갔다.

 

그랜드바자르, 지붕이 있는 시장이라는 뜻인 곳을 찾아갔다....들어서니 사방으로 길이 미로처럼 얽혀 있었다.

입구에는 보안 검색대까지 설치되어 있고 경찰도 서 있었다.

상가가 다닥다닥 밀집되어 있고 사람도 붐비는 지붕이 있는 시장이라 테러범들의 좋은 표적이기도 할 것이다.

그랜드 바자르를 둘러보다 보니 그라나다에서 본 아랍 상인들의 거리와 느낌이 비슷했다.

그랜드 바자르 밖으로 나오니  밖에도 시장이 계속되고 있었는데 진열된 물건들을 보고 있으려니

우리나라 7~80년대의 동대문이나 남대문 시장을 보는 듯한 느낌이 들었고 팔고 있는 아이들 장난감도

추억 속에 물건처럼 여겨졌다.


지나가는 사람들 대부분이 남자이고 상가에서 물건을 파는 사람들도 100% 남자였다.

심지어는 차를 배달하는 사람들조차 남자였다.  그것도 쟁반에 차를 올려들고 가는 사람이 말이다.

우리나라 같으면 상상이 안가는 장면들이었다.

종종 여권신장에 대해 이야기 할 때 이슬람국가는 예외로 하는데 그만큼 이슬람 국가에선

아직도 남여 차별이 심하다는 걸 알 수 있다.

그에 비해 우리나라는 여권이 꽤 신장된 편이라 여겨지지만 여자들 입장에서는 아직 멀었단다.

 

여행 떠나기 전날 딸아이는 과격한 시위를 해서라도 바꿔야지.....

그냥 얌전하게 시위를 하다보니 낙태죄 같은, 말도 안되는 일들이 고쳐지지 않고 있다며 흥분을 한다.

그러면서 전에는 과격한 시위를 하는 사람들이 이해가 되지 않았는데

여권을 침해하는 일들에 대해서는 답답하리만치 진행이 안된다면서 목소리를 높였다.

 

칼라타 다리를 건너려니 다리 아래 식당에서는 생선 굽는 냄새가 나고

다리 위에서는 낚시하는 사람들이 다리 양 편으로 길게 늘어서서 낚시를 하고 있었다.

갈매기들도 덩달아 먹이를 찾아 끼룩거리며 주변을 배회하고 있었다.

사람들이 잡은 물고기들을 보니 멸치 같은 작은 생선부터 2, 30센티 정도의 생선등 다양하였다.

내가 낚시에 취미가 있다면 낚싯대를 빌려 낚시를 할 수도 있었을 것이지만 난 낚시엔 관심이 없다.

다리를 건너  신시가지의 뒷골목 구경을 하려고 들어가니 우리나라 청계천 거리처럼 공구 상가가 밀집되어 있었다.

 

너무 걸어 다리가 아프다면서 걸어가기 힘들다고 트램을 타자고 해서 트램을 타고 돌아왔다.

수도꼭지에서 나오는 물로 커피 물을 끓이려고 끓였더니 뿌옇더라면서 식수는 사야겠다고 해서

5리터짜리 물을 2통 큰 것을 샀다. 10리터면 한 열흘 가량은 충분히 사용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감자, 양파, 사과, 식초, 우유, 소금,식용유,달걀,배추 등도 샀다.

그야말로 식품들로 생필품이다.

총 가격이 우리 돈 한화로 환산해보니 8300원에 불과했다.

너무 싸서 여기서 한 달 살면 여행 경비 빠지겠다면서  좋아한다.

물을 일컫는 말이 물 수자와 같은 발음인 '수'이고 차를 뜻하는 말도 '차이'라고 해서 비슷했다

들어와 쉬고 있으려니 기도 시간인지 아잔 소리가 또 들려왔다.

이번 아잔 소리는 우리나라 민요에서 매기고 시키고 하는 듯 주고 받는 타령을 듣는 듯하다.


이슬람 국가를 배경으로 하는 영화나 드라마에 자주 등장 할 때 듣기도 했던 소리 같았다.

우리나라 트로트 음악의 꺾는 소리같이 들리기도 하였다.

세탁기를 돌리고 빨래를 건조기에 넣어 건조하고 나더니 건조기가 너무 좋다며 사고 싶어 했다.

 

 

 

겨울임에도 분수가 물을 뿜고 있고 분수를 가운데 두고 회교 사원인 블루 모스크와 성당이었던 아야 소피아가 마주 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