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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여행

이탈리아 - 시에나 이야기 5

여전히 캄포 광장엔 사람들이 많았다.

캄포 광장의 모습은 마치 초등학교 운동회 전 날 만국기가 걸린 운동장의 모습을 보는 듯 하였다.

팔리오 경기 자체는 2분 정도 소요되는 경기이지만 이는 축제의 하나 일뿐 준비 과정 자체가 즐거운 것이다.

깃발을 들고 행진을 하고, 묘기를 보이듯 깃발을 주고 받고, 거리 행진이나 캄포광장에서 퍼레이드를 하는 것

이 모두가 축제인 것이다.


그래....모든 사람들의 인생이 축제였으면....

 

오늘 결혼을 하는 우리 옆 반 여선생님의 앞 날도 매일이 축제 같기를 빌어본다.

나와는 3년 동안이나 같은 학년을 한 선생님인 데다가 공교롭게도 3년 내내 바로 옆 반이었다.

뽑기로 반을 결정한 것이니 어쩔 수 없는 일이긴 하지만,

아버지뻘의 나이든 남자 선생님이었으니 많이 불편했을 것이다.

그럼에도 참석하지 못해 미안한 마음이 크다. 

지금은 결혼식도 끝나고 신혼 여행지인 괌으로 출발했을 시간이다.


띠리릭~~

문자 메세지가 왔는데 책을 빌린 우리 동네 도서관이다.

정호승 시인의 책.....내일이 반납이라고....연장 신청을 했지만 연체를 면 할 수는 없다.

 

안 가던 길로 갔다가 다시 캄포 광장으로 갔다.
모든 길은 캄포 광장으로 통한다더니 길을 가다보면 광장이 나온다.

초저녁 해가 저문 광장에는 많은 사람들이 삼삼오오 모여 담소를 나누거나 

아이들은 야광 물질이 묻은 바람개비 날개처럼 생긴 것을 하늘 높이 날리며 뛰고 있었다.
우리더러도 하나 사라고 다가와 흔들어 보여준다.


우린 가지고 온 덧옷을 꺼내 벗은 신발을 덮어 배개를 대신하고 누웠다.
바람은 가을 바람처럼 서늘했고 여름 볕에 더워졌을 광장의 바닥도 

바람이 열기를 거두어 갔는지 그리덥지 않고 오히려 차게 느껴졌다.
잠시 누워 있더니 민망하다고 일어나 앉았지만 난 그대로 누워서 별을 보다가 슬며시 잠이 들려고 하였다.
자는거야?~~하는 바람에 깨어 일어났다.

얼마나 더 이렇게 여행 다닐 수 있을까? 걷기가 예전 같지않네.....
나중에 우리가 여행 다닌 추억을 되새기면서 흐믓해 할까?
아니면, 아~옛날엔 하루종일도 걸었는데 지금은 이게 뭐야~하면서 한탄하고 있을까?

아마도 둘 다 겠지?


그러다가 우리의 대화는 갑자기 근심, 걱정 거리로 코너를 돌고 말았다.
그러면서 걷잡을 수없이 가속도가 붙어 빗물 받이에 모든 빗물이 흘러 모이듯
앞 날에 대한 걱정 거리와 올지 안 올지도 모를 고민 거리를 모아오기 시작했다.

엄청난 속도로 모여든 걱정거리는 그 양을 가늠하기 조차 버겁게 머리 속에 한 가득 들어 찬 것이다.

 

아이들에대한 시시콜콜 걱정거리.....

여행에서 돌아가서 처리해야 할 일들...

만날 사람들과 부딪치며 일어나는 감정 상함에 대해.....

일 주일 뒤의 일들, 한 달 뒤의 일들, 내년 일들.....


그러자 몸에서 한기가 느껴져서 난 겉 옷을 입었다.
우린 갑자기 찾아온 우울감에 말없이 풀이 죽고 말았다.


일제시대와 전쟁을 겪으면서
행복해 하면 죄스럽고, 기뻐하면 죄를 짓는 것처럼 여겨진 우리 앞선 세대들.

그들은 기쁨이 무엇인지, 행복이 무엇인지 조차 모르고 산 세월이 너무 많았을 것이다.

그 기쁨이 오래 안갔던 부모 세대의 DNA의 일부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우리도 숙명처럼 걱정거리를 달고 살아야 하는지도 모른다.


"그냥~~ 아직 오지 않은 걱정을 미리 앞당겨 하지는 말자."

이렇게 충고하는 나조차 불안과 걱정에 휩싸여 있기는 마찬가지였다.

에이~ 여기 이렇게 앉아 있으면 안되겠다. 우리 일어나자~~

광장에서 우린 자릴 털고 일어섰다. 터덜터덜 어둠이 내린 골목을 걸어 올라오는데

그 어둠이 우리 어깨를 짓누르는 듯하였다. 빨리 잠을 청하는 게 상수라고 생각했다.

내일의 태양이 뜨면 생각이 달라질 것이라고....생 각 하 면 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