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 먹고 산책을 하였다.
오늘도 어김없이 두오모 광장으로
가는 도중에 개와 함께 늦잠에 빠져있는 젊은이는 어제 저녁에도 자고 있더니만 아직도 자고 있다.
현실로 돌아가기에는 저 생활에 익숙해졌을 것이다.
멀쩡한 젊은이고 개도 품위있는 허스키 종으로 보였다.
조직과 다른 사람들과의 부대낌을 견디지 못해서 저런 생활을 택했을까?
갤러리아 중앙 광장 바닥에 황소의 거시기는 오늘도 이른 아침부터 사람들의 발 뒷굼치에 수난을 당하고 있었다.
한 여학생이 남 볼세라 부끄러워 얼른 뒷굼치를 대고 돌며 셀카를 찍자
기다리던 옆에 있던 중년 여인네는 중년 답게 환하게 웃으면 남편의 카메라 세례를 받고 있다.
나이가 들면 점점 철판을 얼굴에 깔게 마련이다.
나는 더더욱 두꺼운 철판을 깐 나이가 되었고,
한 흑인이 색실을 들고와서는 '웰컴'하고 내민다.
우리에게 다가오는 걸 진작에 알았다면 눈길도 주지 않았을텐데 두오모를 쳐다보다가 눈치채지 못하고 눈이 마주쳤다.
내 팔에 색실을 걸치면서 "웰컴" 하다 본의아니게 그만 내 팔을 건드렸다.
그럼에도 내가 반응을 보이지 않자"쏘리" 라고 하더니 다른 사람을 찾아갔다.
웰컴? 난 오늘 떠나는데?
다른 일도 많을텐데.....왜 이런 방법으로 돈벌이를 하고 있을까?
그래도 돈벌이가 되니 하겠지?
이것도 관광지에서나 볼 수 있는 한 문화려니.....
우리 피렌체 가면 팔에다 색실 하나씩 걸치고 나올까? 이미 샀다면서 보여주게.
숙소로 돌아오니 청소를 하던 분이 어색한 발음으로 안녕~ 하고 인사를 한다.
나도 '챠오~' 나 '본죠르노'라고 하지않고, 오늘은 '안녕하세요~'하고 인사를 건넸다.
4층 우리의 숙소로 올라와 휴식을 취한다.
경기 출전을 앞둔 라커룸의 축구 선수처럼 우린 최상의 경기력을 유지하기 위해 몸을 만들어야 한다.
그래야 다음 목적지까지 배낭을 메고 캐리어를 끌며 동시에 혹시 모를 우리 짐을 탐하는 녀석들을 경계해야 하는 것이다.
그걸 견디려면 미리 휴식을 취하고 근육을 신축성있고 팽팽하게 만들어야 하는 것이다.
몸 안의 '치사한 찌꺼기'를 빼내고 새로운 수분을 섭취한다.
아~ 여기서 '치사한 찌꺼기'에 대해 한 마디 하지 않을 수 없ㄹ다.
그 말은 내가 처음 사용한 것이 아니라 40년 가까이 지난 초임시절에 우리 학교에 지압 신발을 팔러온 여자가 있었다.
직원들을 상대로 선전을 하는데 이 신발로 말할 것 같으면 류의 사설을 늘어놓던 중
신발의 효능은 몸 안의 치사한 찌거기를 제거해 준다는 말을 했던 것이다.
그 치사한 이란 말에 우린 킥킼웃었고 가끔씩 치사한 찌거기라는 말을 우스게 소리로 사용하기 도 했었다.
그 슬리퍼를 산 나는 과대 포장된 것임을 며칠 지나지 않아 알게 되었지만 후회는 속은 자의 몫이었다.
이제 떠날 준비가 되었다. 이런 만반의 준비를 했음에도 항상 헛점은 생기기 마련이다.
그 헛점을 누군가는 노리려고 할 것이다.
그건 소매치기 일수도 발 끝을 건드리는 돌 뿌리일수도 있을 것이다.
1시 20분 밀라노 출발....2시 59분 피렌체 도착 예정이다.
캐리어를 끌고 지하철역에서 에스컬레이트를 타고 내려가려니 하필 공사중이었다.
길고 긴 30여 미터 가량을 계단을 캐리어를 끌고 내려가야 하는 것이다.
마침 한 건장한 젊은이가 마가렛의 캐리어를 한 손으로 번쩍 들더니 성킁성큼 계단을 내려갔다.
아~~ 순간 내 캐리어 안에 무거운 것을 넣을 것을 후회하는 얌생이 같은 생각이 들었지만
젊은이에게
내색하지 않았음은 물론 맘 속에서 재빨리 지워버렸다.
내 캐리어도 들어달라고 하기에는 내가 체력적으로 약하다고 하더라도 남자의 자존심이 있는 것이다.
그래서 나도 힘들게 양손으로 낑낑거리며 들고 내려갔다. 겉으론 태연한 척하면서~~
젊은이는 친절하게도 우리가 가야 할 방향이 어딘지를 묻고는 안내까지 하고는 사라졌다.
밀라노역에 도착했다
기차역의 풍경은 여행의 시작과 마무리를 의미한다
기차역을 눈에 담는다는 것은 여행자의 권리요 의무요 즐거움이다.
밀라노역은 그런 점에서 충분한 조건을 갖추고 있었다.
역 안에는 별자리들에 해당하는 그림들이 부조로 조각되어 있었고 역 밖의 모습도 멋지게 꾸며놓았다.
강한 볕이 내리쬐는 광장엔 멋진 조형물이 밀라노가 패션의 도시임을 말하고 있었다.
역에 당도한 사람들의 표정도 또한 다양하다.
설레임과 두려움과 기쁨과 기다림.....역에서 먹은 커피 한 잔은 이중에서 두려움을 한결 가볍게 해주었다.
아직 우리가 타려는 나폴리행 열차 번호는 아직 전광판에 뜨지 않았다.
전광판을 바라보고있는 사람들은 합격자 발표를 기다리는 사람처럼 주시하고 있다가
자신의 기차역의 터미널 번호와 게이트를 안내하는 번호가 뜨면 총총히 사라져갔다.
마침내 우리를 데려다 줄 열차 승강장 번호가 나타났고 우리도 캐리어를 끌고 숫자가 안내하는 대로 따라 갔다.
모든 걸 숫자가 정해주는 시대에 우린 살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 인생이란? 여행이란? 숫자 놀음인 것이다.
베네치아를 떠날 때와 마찬가지로 이번엔 밀라노가 저만치 사라지고 있었다.
떠나는 날이 되어서야 밀라노역 주변을 자세히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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