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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여행

이탈리아 - 밀라노에서 피렌체로

이제 다시 길 위에 서게 되었다.

기차에서 승무원은 우리의 승차권을 검사하였다.

 

어제 본 뉴스의 지도는 온통 붉은 빛으로 물 들어서 지구가 몹시 뜨거움을 시각적으로 보여주고 있었다.

북 유럽조차 붉게 나타난 것을 보면 이번 더위가 이례적인 것만은 분명해 보였다.

그럼에도 차창 밖으로 열기가 만들어낸 구름은 낭만적이었다.

 

부랴부랴 바꾼 피렌체 숙소 관리인을 제대로 만날 수 있을까?

어제 우린 피렌체 숙소에 에어컨이 없는 것을 알고는 부랴부랴 위약금을 물고는

새로운 숙소 예약을 한 것이다.

 

우린 애플주스와 오렌지 주스를 각각 주문하고는 난 창 밖을 보고 마가렛은 뜨개질을 한다.

도데체 쉼을 모르는 사람이다.

항상 뭔가를 하지 않으면 걱정거리라도 끌어오곤 한다.

그건 세상을 살아 온 그 만의 법칙인지도 모른다.

그 법칙은 둘째 딸이 세상을 살아오면서 체득한 삶의 법칙일 것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증명할 바 없지만 난 그게 맞을 거라고 생각한다.

 

그 법칙이 가끔씩은 게으르고 나태하고 멍청하고 어리석고 느린 나와 종종 충돌을 하기도 한다.

나는 나만의 세상살이 법칙이 있고, 그는 그 만의 법칙이 있음에도....

논리적으로 따지면 내가 질 수밖에 없는 법칙이다.

하지만 삶에 있어선 논리가 미치지 못하는 영역이 있게 마련이다.

 

그는 부지런함이란 무기를 가졌다.

부지런한 자의 눈엔 나는 허당기 가득한 한량에 불과하다고 나도 인정하는 바이다.

하지만 세상은 부지런한 자만의 몫은 아니다.

 

우린 종종 다투었지만 곰곰 생각하고 따지고 보면 내가 잘못했다고 하지 않을 수가 없는 경우가 많았다.

그건 많은 남자들이 겪는 일이라 여겨진다.

 

시속 250킬로의 속도로 달리는 기차가 얼마나 터널이 긴지 한없이 어둠 속을 달린다.

이탈리아 북부 산악 지대를 달리고 있는 것이다.

터널 밖의 모습이 이따금씩 드러나는 곳은 강원도 산골 같아 보였다.

 

피렌체 역에 내리니 더운 8월초의, 그것도 가장 더운 3시다.

달궈질대로 달궈진 뜨거운 돌 덩어리 위를 캐리어를 끌고가는 고행 속에

과연 숙소를 변경해서 제대로 나타샤를 만날 수나 있으려나하는 걱정이 더해져서

피렌체 두오모를 코 앞에서 보고도 별 다른 감흥이 일지 않았다.

 

걱정은 기우에 불과한 것이 만나기로 한 나타샤는 제 시각에 온 것이다.

검은 썬그라스에 헐렁한 바지를 엉덩이에 걸치고 나타샤는 나타났다.

많은 사람 속에서 용케도 우리 내외를 찾아내더니 인사를 한다.

나타샤? 우린 나타샤가 안내하는대로 숙소를 따라 갔다.

 

열쇠로 문을 열고 들어가서 엘리베이터가 2층에서 부터 있음으로 캐리어를 끌고 올라가야 했다.

역시나 나는 내 것을, 집사람 것은 나타샤가 들어주었다.

엘리베이터도 열쇠로 열어야 문을 열 수가 있었고 이중으로 된 문이다.

 

어쨌거나 에어컨이 있는 숙소에 도착한 것이다.

숙소는 여느 숙소와 다를 바 없지만 그리 청결해 보이지는 않았다.

매번 새로운 숙소의 문을 열 때의 낯설고 이색적인 모습도 여행의 즐거움 중 하나인데

피렌체의 숙소는 구조는 재미있게 생겼지만 청결 면에선 지금까지 우리가 사용했던 숙소보다는 평균 아래였다.

 

나타샤의 간단한 설명을 듣고 우린 잠시 쉬었다가 장을 보러나왔다.

5시가 넘은 시각 임에도 날은 더웠고 두오모 앞 광장에는 사람들이 여전히 많았다.

매번 비슷한 장을 오늘도 보았다.

쇠고기, 쌀, 납작 복숭아, 우유 그리고 야채, 물.....

 

밥을 해 먹고 나가기로 했다.

밀라노에서처럼 두오모에 친밀해져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밀라노 두오모 앞의 너른 광장에 비해 피렌체 두오모 앞 광장은 작았고

성당 전면의 색깔도 밀라노 성당에 비해 품위가 적고 경박한 느낌을 주었다.

아마 날씨가 더웠고 캐리어를 끌고 나타샤를 만나기 전까지는 맘이 편치 않아서 더 그랬을 것이다.

그래서인지 모르지만 끝까지 피렌체 두오모는 나를 외면하게 된다.

<냉정과 열정 사이>의 두오모가 아니었다.

 

잠시 쉬었지만 기차에서 춥게 느껴졌다가

내려서 걷는 도중 너무 뜨거웠다가 다시 에어컨 바람에 오슬오슬했다가

장을 보러 나왔을 때 더웠다가 다시 들어와 또 추웠다가.....

이렇게 반복하다 보니 몸이 제대로 적응이 안 되어서인지 주체할 수 없어서 인지 몸살 기운이 올랐다.

 

강제로 밖에 나가서 돌아다니면 잠을 푹 자려나 싶어 기분 전환 겸 나가자고 했다.

나는 해가 넘어가는 해질무렵의 강을 보고 싶었다.

시각은 8시가 넘고 있었다.

 

강에 다다르자 많은 사람들이 강바람을 쐬며 해질무렵의 노을을 바라보고 있었다.

파리 세느강에서 보던 해질무렵의 모습과 프라하 블타바 강에서 보던 모습이 그동안 본

가장 멋진 해질무렵이었었는데 여기도 추가해야 겠다.

눈으로 들어오는 저녁 노을이 시각을 통과해서 다른 감각들을 일깨우며 힘을 불어 넣어 주었다.

기분도 한 순간에 업되었다.

 

베키오 다리에 올라서서 그 기분은 절정에 이르렀다.

다음 다리까지 걷다가 젤라또로 유명한 집이라면서 하나 사가지고 올테니 해질무렵 구경을 하라고 하였는데

잠시 후 내 입맛에도 맞을 것이라며 흑임자로 만든 젤라또를 사 가지고 와서 입에 넣어준다.

눈과 함께 입도 호강이다.

 

베네치아에서는 거의 매일 새벽 배를 타러 나갔고, 밀라노에서는 매일 밀라노 두오모를 보러 나갔다면

이곳에서는 매일 해질무렵 베키오 다리를 보러 나올 것이다.

지치고 힘든 몸과 마음은 베키오 다리에서 본 노을로 인해 단숨에 변해 있었다.

모를 일이다. 모를 일이야. 정말~~

돌아오며 피렌체 두오모를 한 바퀴 돌고 들어왔다.

친해지자 우리~~

 

 

 

피렌체 베키오 다리에서 본 해질무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