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산초당 가는 길
뿌리가 계단 구실을 한다. 그래서 어떤 이는 뿌리의 길이란 이름을 붙였단다.
유배지에서의 정약용은 책도 많이 저술하였다고 한다.
유배라고 하지만 지역이 한정되어 있을 뿐....내가 생각했던 자유없음은 아니었다.
그 당시 중앙 정치에 관여하지 말고 멀리 떨어진 곳에서 조용히 있으라는 유배였을 것으로 여겨진다.
정약용이나 신영복 같은 분들은 정치적인 이유로 인해 유배와 감금을 당했지만 후대에 남을 저술을 남긴 걸 보면
제약이 오히려 주옥같은 글을 쓰게 만드는 계기가 된 듯 하단 생각도 들었다.
그분들이 그런 유배나 감금 생활이 없었어도 그랬을지 모르겠지만.....
유홍준의 나의 문화 답사기에도 소개되어서 낯설지 않은 정약용이 새겼다는 정석이란 글씨.
더올라가려도 더 올라갈 수가 없게 되었다. 등산화 바닥이 떨어져 나간 것이다.
비가 오지 않아 등산을 갔더라면 큰 일날뻔했다.
청자골 종가집이란 한정식집.....음식도 음식이지만 고택의 운치가 살아있는 곳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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