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밑줄긋기

전체주의의 발생 과정

- <전체주의의 기원>의 구성에 따라 전체주의의 발생 과정을 간단하게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반유대주의를 통해 전체주의를 위한 서사적 소재가 마련되고, 국민국가의 생성과 제국주의에 의해 대중사회가 성립한다. 그리고 국민국가의 경제적 사회적 존립 기반이 크게 변동하면서 대중이 동요하기 시작할 때, 대중의 불안을 서사적으로 이용하는 세계관 정당과 운동체가 출현한다고 할 수 있다.

 

- '어느 쪽이든 극단으로 나아가면 위태롭다'는 이야기를 꺼내면 "그렇게 되지 않도록 균형 잡힌 시각을 제시하는 것이 지식인의 사명 아니겠어?" 하고 일침을 날리는 사람이 있다. 그런 기대를 품는 것이야 얼마든지 장지만, 사람들에게 방향성(세계관)을 제시하는 것을 지식인의 사명이라고 규정해서는 안된다. 대학교수나 저널리스트, 작가 등 '지식인'도 뿌리 없는 풀이 된 '대중'의 일원이기 때문이다. 대학교수, 교사,법률가, 의사 같은 지식인 중에도 나치스가 정권을 장악하기 전부터 알기 쉬운 세계관에 동조하여 자발적으로 일익을 담당한 자들이 있었다고 한나 아렌트는 지적한다. 실제로 경제학자, 역사학자, 사회학자, 법률가 등 테크노라이트 중에는 자발적으로 나티스에 입당하여 동류럽 지역의 유대인 추방과 학살 계획을 수립하는 데 중심적인 역할을 한 자들이 적지 않았다고 알려져 있다.

 생각해보면 당연한 일이다. 대중사회 안에서 지식인은 책을 쓰거나 강연을 하거나 '일반인'의 상담을 해주면서, 다시 말해 세계적인 서사를 제시하면서 자신의 지위를 확보했기 때문에 일반 대중 이상으로 알기 쉬운 서사에 민감하고, '시류에 편승하고 싶다는 욕구에 말려들기 쉽다. 웬만한 자제심이 없다면 유행을 타기 쉬운 서사를 향해 제일 먼저 뛰어들고 싶어질 것이다. 그러므로 나를 비롯하여 지식인의 경고 따위는 정도껏 가려서 듣는 것이 바람직하다. '** 선생님을 만나 뵙고 나서 세상이 바뀌었어요.'라며 아무렇지도 않게 떳떳이 이야기하며 타인에게 권유하는 것은 위험하다.

 

- 한나 아렌트는 조직적으로 질서를 세우 시체 제조공장 같은 수용소를 운영할 수 있었던 것은 인간을 '인격'을 지닌 존재가 아니라 제조 공정에 던져 넣은 단순한 물건으로 취급하고, 최종적으로는 '물건'이 어떻게 되든 양심의 가책을 느끼지 못하는 정신 구조가 전체주의의 지배를 통해 형성되었기 때문이라고 지적한다. 공장의 커베이어ㅓ벨트에 올려놓은 상품처럼 자기 앞을 지나가는 살아 있는 인간을 대상으로 담담하게 작업할 수 있다는 말은, 물건을 다루는 자신도 기계의 부품처럼 되어버려 스스로의 머리로 생각하거나 판단할 수 없다는 것을 함의한다. 그런 의미에서 수용소는 '인격'의 개별성을 파괴하고 말살하여 사람들을 수미일관한 세계관을 떠받치는 시스템의 일부로 만들어버리는 전체주의의 특징을 응축시켜놓았다고 할 수 있다. 

 

<왜 지금 한나 아렌트를 읽어야 하는가/나카마사 마사키/갈라파고스>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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