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밑줄긋기

익숙한 절망 불편한 희망

- 이 책을 집필할 때 나는 박근혜 정부가 얼마나 망가질 수 있는지를 과소평가했다.

 

-아무리 봐도 국민 다섯 명중 네명이 대학에 가는 것은 이상하다.

대학에 가지말라는 것이 아니다. 예를 들어 사회학에 열정이 있는 학생이라면 물론 대학에 가야한다.

학업에 재능이 있다면 자기가 선택한 분야에서 박사 과정까지 밟을 수 있어야 한다.

하지만 한국에서는 사실상 거의 모든 학생이 대학에 가며 보통은 관심도 없는 분야를 전공한다.

심지어 많은 학생이 대학에 속았다고 느끼기도 한다.

수백만 명의 학생이 전공을 살리지 못하고 사회생활에 필요한 장식으로 대학졸업장을 딴다.

 

 

- 많은 유럽인들이 일당 체제를 기반으로 일사분란하게 움직이는 중국을 부러워한다.

중국은 기록적인 속도로 고속철도를 깔고 연금 혜택 수혜자를 단 2년만에 24000만 명으로 확대했다.

이제 민주주의는 어려운 의사결정을 내리고 신속하게 일을 추진하는 데 방해가 되는 제도로 인식될 위험에 처해 있다.

유케핑 베이징대 교수는 민주주의는 간단한 문제를 지나치게 복잡하고 성가시게 만들며

감언이설을 일삼는 정치인들이 국민을 오도하는 제도라고 꼬집었다.

 

-대기업 홍보팀은 약점을 가진 한국 기자들을 함부로 다루는 데 너무 익숙한 나머지 외신기자들에게도 무례를 저지르곤 한.

-필자는 개인적으로 스스로를 기득권으로 인식하는 기자들도 문제로 지적하고 싶다. 실제로 유명 언론인의 정계 입문이 일상화되지 않았는가?

 

-한국에서는 하버드 박사면 똑똑할 뿐 아니라

오류가 없고 도덕적으로도 우월하다는 인식이 자연스럽게 따라온다.

문제의 사건으로 자폭하기 전까지 승승장구를 이어온 고승덕이 그 증거다.

삼시를 다 보고 학위를 여러 개나 딸 필요가 뭐가 있지? 라는 질문을 하는 사람은 없고,

다들 자신들의 자녀가 고승덕처럼 공부를 잘하기 만을 바라는 것 같았다.

백 번 양보해도 고승덕의 학력 과잉은 희한하다. 냉정하게 이야기하자면 정신적으로 문제가 있는게 아닌가 싶다.

 

-미국산 쇠고기가 안전한지 아닌지는 모르지만 담배, 음주 운전, 운전중 통화가 더 위험하지 않을까?

미국산 쇠고기를 거부했던 수 백 만명의 사람들이 별 거부감없이 담배도 피우고, 술도 마시고 운전중에 전화 통화도 한다.

미국산 쇠고기의 안전성을 따진다면 광우병보다 호르몬 주입문제가 더 심각하지 않을까? 여러분의 생각은 어떤가?

더 중요한 질문은, 2008년 여름 쇠고기 파동 이후 생각이 바뀌었냐는 것이다.

바뀌지 않았다면 왜 그때는 무서워해놓고 지금은 주저 없이 미국산 수입 쇠고기를 먹는가?

한가지 이슈에 열을 올리다가 금세 새로운 주제로 옮겨가는 한국 여론의 냄비 현상이 그저 놀라울 뿐이다.

 

-2007년 대선에서 이명박은 2위와 큰 격차를 벌이며 압승을 거두었다.

직선제 도입 이후 결과가 뻔히 예상되는 유일한 대선이었을 것이다.

노무현에게 지쳐 있던 유권자들은 변화를 원했다.

실리적이고 기민하게 여기저기 법망을 피한 전력이 있는 친기업형 후보 이명박의 허물을 모르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하지만 경제 부흥에 도움이 되리라는 믿음에 사람들은 쉽게 눈감아 주었다.

 

-정치 견해부터 최신 유행 음식이나 요즘 뜨는 연예인까지

모든 것이 급변하는 경향 덕분에 한국 사회는 역동적이다.

하지만 이러한 냄비 현상이 정치 문화에는 분명 악영향을 끼친다.

지독한 부패를 저지르고 의원직까지 박탈,당해놓고도 사람들의 관심이 다른 데로 옮겨가 악행이 잊힐 때쯤이면,

언제 그랬냐는 듯이 뻔뻔하게 다시 얼굴을 내미는 한국 정치인들이 어디 한둘인가.

 

-음모론에 넘아가는 사람들만 탓하기는 어렵다.

21세기 한국은 음모론이 만들어지고 유포되기에 최적의 환경을 갖춘 것 같다.

외신 기자 제프라 케인도 음모론에 대한 기사에서 한국 여성을 인터뷰에 인용했다.

인터뷰에 따르면 이렇게 신뢰가 무너진 사회에서 합리적인 사고를 할 수 있는 정신 상태를 유지한다는 것 자체가 말이 안된다.

정신이 멀쩡한 사람이라면 작금의 상황을 보고 미치지 않고는 다른 방도가 없다고 한다.

 

-김어준을 비판하려는 목적은 아니지만, 2012년 대선 전 김어준은 새누리당을 싫어하는 모든 젊은이들의 기수였다.

김어준이 낸 책은 물론 불티나게 팔렸다. 김어준이 필자의 전작<기적을 이룬 나라 기쁨을 잃은 나라> 판매부수가

얼마나 되느냐고 묻더니 자신의 책 <닥치고 정치> 하루 판매 부수가 필자의 책 전체 판매부수와 맞먹는다고 농담처럼 말한 적이 있다.

김어준을 만나려고 그가 운영하는 혜화동의 카페 벙커1에 몇 번 간 적이 있다.

그와 어울리는 것은 재미있었지만 김어준을 총수라고 부르고 김어준의 한마디 한마디에 매달리는 사람들의 모습에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필자 또한 정치인과 정치계급 비판에 많은 시간을 쏟는다.

그럴만한 이유가 있다. 한국 정치는 썩을 때로 썩었고 유치하며 이기심으로 가득하다.

하지만 이는 나쁜정치인의 문제라기보다는 정치제도의 문제다.

 

-이명박이나 박근혜가 마치 악마의 화신인 것처럼 이야기하면서

김정일이나 김정은 체제에는 관대한 태도를 보이는 것은 편협한 관점을 적나라하게 드러낸 것이다.

   

-한미 FTA를 반대하던 그 많던 진보주의자들이 다른 FTA에 대해서는 조용한 것을 보면 정말 놀랍다.

미국과 연관된 것은 나쁘고(일본을 제외하고는) 다른 나라가 엮이면 신경 쓸 것 없다는 것이 한국 진보의 사고방식이다.

 

 

익숙한 절망 불편한 희망

 

<익숙한 절망 불편한 희망> - 서양 좌파가 말하는 한국 정치 / 다니엘 튜더 지음 / 문학동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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