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행기가 이륙준비를 하자
옆에 앉은 아줌마와 아가씨의 중간쯤 되어 보이는 승객은 승무원에게 신경안정제를 먹어야겠다면서 물을 청했다.
약을 먹고 나서도 긴장을 풀지 못하고 한 손에는 묵주를 꼭 쥐고 있었다.
비행기가 이륙하여 어느 정도 궤도에 이르자 묵주를 넣고는, 이런 저런 이야기를 들려 주었다.
자기는 패키지여행을 가는 중이며, 9박10일인데 혼자 방을 써서 그런지 500만원이 넘는다고 하였다.
그 돈이면 우리 둘이 여행하고도 남는 금액이라고 하니 1인당 1000만원이 넘는 것도 있다고 하였다.
이륙하기 직전 공항에서도 패키지여행을 간다는 지인의 전화를 받았다.
일정 중에 이태리 카푸리 섬을 선택하는 것이 있는데 선택 하는 게 좋은지 물어서 아주 좋았다며 선택하라고 이야기를 했다.
그랬더니 패키지 여행이라 4시간 밖에 시간을 주지 않고 정상에 올라가는 리프트도 타지를 않는데 15만원이나 더 내야 한단다.
그렇다면 난 선택 안하는 게 좋겠다고 말했지만 집사람은 가는 걸 추천했다. 어떻게 결정을 했는지는 모르겠다.
집사람은 이어폰을 끼고 영화를 보려고 선택을 하고 있었고, 난 가방 안에서 동생이 재미있게 보았다는 책을 꺼냈다.
천명관의 <나의 삼촌 부르스리>. 1,2권이라 한 권은 갈 때 한 권은 올 때 보려고 했는데 한 권을 다 끝내고 2권을 집어 들지 않을 수 없었다.
흥미 진진한 내용 전개를 앞두고 있지만 맛있는 과자 아껴먹으려고 두었던 어린 시절처럼 조금 남겨두었다.
이소룡이야기는 남자들이라면 누구나 입에 침을 튀겨가며 무궁무진한 이야기를 풀 수 있으리라.
비행기는 자동차보다 10배 빠른 속력으로 10시간 이상을 날아 마침내 파리에 우릴 내려주었다.
2년 전에 왔던 파리. 호텔도 그때 묵었던 호텔과 골목하나 사이에 있다.
내가 카메라가 든 가방을 통째로 잃어버린 그 길을 지나게 되었다.
여전히 나는 어리버리 했지만 호텔에 도착할 때까지 그런 일은 다시 일어나지 않았다.
내 가방을 가져간 녀석이 내가 다시 온다는 걸 알았다면 좋은 먹잇감이 다시 왔다고 노렸을런지도 모르겠다.
짐을 풀고 우린, 가벼운 차림으로 가까운 루브르 광장에 갔다.
변한 건 없었다. 광장도, 세느 강변에서 보는 모습도, 노트르담 성당도, 심지어 에펠탑을 파는 흑인들도, .....
변한 것이 없어서 지난 기억을 쉽게 떠 올릴 수 있었다.
어쩌면 변화무쌍한 것보다는 변화가 없는 도시가 추억을 되새길 수 있어 다시 찾아오게 만드는 건 아닐까?
초저녁 노트르담 성당 앞을 걷다가 지난번에 사람이 많아 포기했던 포인트 제로를 꼭 찾아야겠다며 두리번 거린다.
다른 관광객이 밟고 빙글빙글 춤을 추듯 한사람씩 돌아가면서 같은 동작을 반복하는 것이 눈에 들어왔다.
책에서 포인트 제로를 밟고 지나가면 파리를 다시 찾게 된다는 이야기를 읽은 기억이 났다.
이야기가 조금씩 변형되어 각 나라마다 조금씩 다른 재미있는 동작을 하고 있다 생각하니 그것도 흥미있을 것 같았다.
집사람은 이렇게 밟고 지나가서 여섯번째 파리에 오게 되었노라며 날더러도 해보라고 하였지만 나는 마지못해 한번 지나갔을 뿐이다.
이상하게 여행 첫날인데 마음이 묵지근한 것이 생기가 솟지 않고 무거웠다.
크레페를 사먹으려고 기다리다가 재채기가 나서 재채개를 했더니 옆 집 종업원 녀석이 재채기 소리에 깜짝놀라는 시늉을 한다.
내가 크레페를 집어들자 재채기 소리에 놀란 복수를 하려는 듯 내 크레페를 먹자고 입을 크게 벌리고 달려드는 시늉을 하였다.
옆에 있던 동료들이 깔깔거리고 웃었다. 잠시 나도 웃었지만 이내 사그러 들었다.
밤이 내려앉고 있었다. 내일부터는 활기 있는 나날이었으면 좋겠다.
여기 파리뿐 아니라 런던에서까지.....
루브르 광장
노트르담 성당 앞 광장의 포인트 제로. 파리 측량의 시발점이 되는 곳.
세느강의 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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