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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에서

김선생 제자님들께

유별난 제자님들께

 

김선생과의 만남 35주년 기념으로 책을 만든다는데 

그 옆지기인 나의 글도 실었으면 한다고 해서 차일피일 미루다가 이렇게 적어보내네.

 

얼마 전 내가 혼자 라면을 끓여서 먹으려고 할 때였을 걸세.

전화벨이 울려서 받으니 아파트 관리실이라고 하더군.

관리실에 갔더니 지극히 사무적인 태도를 보이던 관리실 직원이

평상시와는 달리 공손하고 부러움 가득한 눈으로 나와 꽃다발을 번갈아 쳐다보더니

커다란 꽃다발을 전해 주더군.

누가 보낸 꽃다발인지 알고 있기 때문이라는 걸 알 수 있었지.

어깨를 으쓱하고 나왔다네.

 

꽃다발에 꽂혀 있는 카드를 열어보니 35년이란 숫자가 눈에 들어오더구만.

35.

35년 전 교대를 갓 졸업하고 처음 부임한 초등학교의 제자들이 보내온

이 꽃다발을 정작 당사자인 김선생은 해외여행 중이라 보지 못하고 나만 보았다네.

물론 사진을 찍어서 전송을 했지만, 김선생은 그 꽃들이 다 시들고 나서야 돌아왔다네.

 

아무튼 그 꽃다발을 가지러 나가고 확인 전화하느라고

프로야구와 함께 한 내 성스러운 만찬, 라면이 불어 터졌다는 것도 생각해 주길 바라네.

 

그리고 어제는 김선생이 교직을 그만둔 계기가 된 딸아이에게

빨리 안 들어온다고 채근하는 통화 소리에 잠이 깨었다네.

내일 출근해야 하는 내가, 그만 잠을 설쳤지 뭔가.

아마 조금 일찍 결혼한 제자님들 중에는 우리 딸과 비슷한 또래의 딸이 있을 텐데,

만나면 충고 좀 해주시게나. 요즘 딸을 키우는 방법에 대해서 말일세.

전화 통화 소리에 깨었어도 계속 잠자는 척 한 까닭은 내가 깨었다는 걸 알면,

아빠라는 사람이 딸이 이렇게 늦게까지 안 들어왔는데도 잠이 오냐고 핀잔을 들을까봐

그냥 자는 척을 했다네.

 

그리고 운동도 좀 하면서 건강관리를 하라고 이야기 해주면 좋겠네.

이렇게 산 밑으로 이사를 온지 10년이 지났어도 산 정상은커녕,

중턱도 올라 가보지 않았다는 사실 말일세.

그런데 불가사의한 일은 여행을 함께 가보면 하루 10 시간 이상을 걸어도 쌩쌩하다는 거야. 참 이상도 하지.

그러면서 자신은 여행 체질이라 해외여행을 자주 가야한다고 말한다네.

유별난 제자님들 때문에 바쁜 학기말에 이렇게 시간을 내어 글을 쓰는 내 정성도 함께 기억해 주시게나.

가끔 제자님들을 만나고 오는 날이면 하도 사진과 함께 제자님들 자랑을 해서

내가 몇몇 제자님들은 얼굴과 함께 이름을 다 기억하고 있을 정도라네.

 

이제 김선생하고 별로 세대 차이나지 않는(?) 40대 중반을 가고 있는 제자님들~!

인생에서 가장 화려한 시기이기도 하지만 가장 힘겨울 수도 있는 시기라고 여겨지네.

40대 중반을 단단하게 걸어서 이후의 삶이 더욱 풍요로워졌으면 하네.

그 걸음 속에 김선생도 함께 한다면 영광이라 여기겠네.

비록 내가 불어터진 라면을 먹더라도 말일세.

교직 경력이 얼마되지않은 김선생을 이렇게 오랫동안 기억해줘서 고마우이~~모두들.

 

시샘 가득 품고 김선생의 옆지기 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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