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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여행

이탈리아 9일 - 포지타노와 아말피,시타버스 요금

오늘도 가랑비가 나린다.

소렌토에서 포지타노는 버스로 1시간 정도의 거리이고 아말피는 1시간 30분거리이다.

우린 돌아올 걸 감안해서 아말피를 갔다가 돌아오며 포지타노를 들러 오기로 했다.

 

포지타노와 아말피 코스는 바닷가 절벽에 만들어진 급커브 길이라

드라이빙 게임을 해 본 아이들은 포지타노와 아말피라는 지명을 이미 알고 있었다.

그만큼 운전하기 위험한 난코스로 악명이 높단다.

이런 위험한 코스에서 운전을 뽐낼 필요는 없으리 게임에서나 한다면 모르지만.

 24시간동안 사용이 가능한 sita버스는 8유로의 요금을 받았고 나와 딸은 멀미약을 먹었다.

 

지형이 바다로 향한 산악지대이다보니 도로를 뱀처럼 구불구불하게 만들 수 밖에 없었을 것이다.

그것도 도로 폭이 겨우 왕복으로 차가 다닐 수 있는 정도이고 어떤 곳에서는 더 좁아 서로 기다렸다 가곤했다.

 

아말피에 도착후 안내소에서 받은 지도를 따라 올라갔다 내려오면서 보아둔 음식점에서 점심을 먹었다.

멀미를 해서 헤롱거렸던 딸도 다 먹고 나더니 조금 기운이 나는 듯 했다.

 

갈 때 버스 운전사는 아무 소리 없이 갔지만

올 때 버스 운전사는 코너를 돌 때마다 경적을 울렸다.

부우웅~~빵 !  부우웅~~빵 !  을 반복하며 달렸다.

마주오는 차를 향한 경고의 소리인 일종의 방어운전인 셈이다.

누가 올바른 운전자일까?

 

포지타노에서 내리면서 버스에 우산을 두고 내렸다.

우산을 가지러 갈까?  말까? 망설이는데 운전사가 눈치를 채고 손짓을 하면서 부른다.

승객들에겐 미안하지만 운전사에겐 고마웠다.

그래서 나는 경적을 울린 이 운전사를 올바른 운전자라고 생각하기로 했다.

 

포지타노는 내셔널지오그래픽 선정....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마을이라고 어떤 책에서 소개하고 있었다.

신빙성없는 관광 호객 행위처럼 여겨졌지만 소렌토에서 1시간이 채 안되는 거리이니 아니 갈 수 없었다.

 

가파른 길을 내려가서 해안가까지 내려갔다.

파도는 심하게 치고 있었고 여전히 가는 비는 내리다 말다를 반복하고 있었다.

잠시 바다를 보다가 뒤돌아서서 바다색과 달리 환한색으로 단장한 마을쪽을 바라보다가하며 쉬었다.

다시 버스를 타려고 보니 올라갈 길이 까마득하다.

 

우린 소렌토쪽으로 가는방향으로 올라가면 다른 길을 구경할 수 있을 것 같고

조금이라도 더 가서 버스를 탈 수 있으려니 생각을 했는데 오산이었다.

 

결국 우리가 내린 곳으로 되돌아 가야했다.

그리 많은 비가 아니어서 나는 우산 없이 혼자 앞서서 부지런히 걸으며 우리가 버스 내린 곳을 찾아갔다.

내가 앞서서 가니 화가 난 줄 알았나 보다.

화는 나지 않았지만 짜증은 났다. 세상에서 가장 예쁜다는 마을에서 말이다.

 

행복은 사람과 사람 사이에 존재하는 것이지, 사람과 예쁜 마을 사이에 존재하는 것은 아니다.

 

동피랑 마을도 그렇고 우리나라 동해안이나 남해안도

충분히 포지타노와 경쟁을 해도 충분할 만큼 만들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도 들었다.

 

 

 

해안가에 자리 잡고 있는 마을들.....포지타노, 아말피

 

 

소렌토에서 포지타노와 아말피 마을을 가는 길은 내내 저런 길이었다.

 

 

아말피

 

 

 

해안에서 바라 본 아말피 마을 모습.

 

 

 

 

 

아말피에서 포지타노로 가는 길......좁고 한쪽은 낭떨어지이고 급커브인 아주 난코스의 길이다.

 

 

 

포지타노 마을에 도착했다. 까마득히 아래 바닷가가 보인다. 한참을 내려간 만큼 한참 올라와야 헸다.

 

 

포지타노 풍경

 

 

 

날이 좋았으면 더 멋지게 보였을까? 오르락 내리락....그들의 일상에서는 감수해야 할 일일 것이다.

 

 

저 절벽에 허리띠를 두른 듯 아슬아슬하게 버스가 지나다니는 길이 보인다.

 

 

 

비는 아주 가늘게 내렸지만 파도는 거칠게 몰아쳤다.

 

 

 

내려 온 저 위로 다시 버스를 타러 올라가야 했다. 

 

 

오래전에 실내에서 키웠던 오채각이란 식물이...... 여기서는 실외에서 마치 나무처럼 자라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