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흐의 타살설이 제기되고 있다는 기사에
얼마전에 보았던 본 '반 고흐, 영혼의 편지'에서 몇몇 구절들이 생각났다.
이 책을 읽으면서 고흐가 그저 그림만 잘 그린 사람이 아니라, 글도 무척 잘 썼던 사람이라 여겨졌다.
라스콩이나 루앙에 가려면 기차를 타야하는 것처럼 별까지 가기위해서는 죽음을 맞이해야 한다.
죽으면 기차를 탈 수 없듯, 살아 있는 동안에는 별에 갈 수 없다.
증기선이나 마차, 철도 등이 지상의 운동 수단이라면 콜레라, 결석 결핵 암등은 천상의 운동 수단인지도 모른다.
늙어서 평화롭게 죽는다는 건 별까지 걸어간다는 것이지
라고 쓴 대목에서는 죽음을 미화하는 듯도 하고, 평화롭게 늙어 죽고 싶었던것 같기도 하고.
너(고흐의 동생)도 알고 있겠지만, 과거에 이런 행운을 누려본 적이 없다.
이 곳의 자연은 정말 아름답다. 모든 것이, 모든 곳이 그렇다.
하늘은 믿을 수 없을 만큼 파랗고 태양은 창백한 유황빛으로 반짝인다.
천상에서나 볼 수 있을 듯한 푸른색과 노란색의 조합은 얼마나 부드럽고 매혹적인지,
도저히 그렇게 아름답게 그릴 수 있을 것 같지는 않지만
그 광경에 어찌나 열중했던지 규칙 따위는 조금도 생각하지 않은 채 그림을 그리게 되었다.
이렇게 그림에 열중하는 대목과 자살하기 전 많은 물감을 주문했다는 것도 자살에 의심을 받을 만한 점이기도 하다.
네 편지가 너무 걱정하는 내용이어서 침묵을 깨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지금 온전한 정신으로 이 편지를 쓰고 있다.
미치광이가 아니라 네가 알고 있는 형으로서, 있었던 일 그대로를 쓰는 것이다.
이곳 사람들이(80명이 넘는 사람들이 서명을 했더라)
내가 자유롭게 거리를 활보하도록 내버려두어서는 안 된다는 진정서를 시장에게 냈단다.
그래서 경찰 국장인지 서장인지가 다시 나를 감금하라는 명령을 내렸다.
이 대목에선 어쩌면 당시 고흐가 어디에서 살았던 간에 이웃들과 좋은 관계는 아니었을테고
함께 사는 이웃들은 고흐가 자신들의 삶에서 없어져 주었으면 하고 바랐던 것은 아니었을까?
그런 분위기에 누군가가 사주했을런지도 모르는 일이구.
고흐가 자기 가슴에 총을 쏘았다고 알려진 곳.
<고흐의 마지막 작품.>
아래는 기사 내용의 일부분.
범죄과학자 디 마이우 박사는
자살하는 사람이 자신의 왼쪽은 권총으로 쏘기 힘들다는 점과
고흐의 손에 화약 흔적이 없다는 점을 들었다.
의 이론이 옳다면, 남은 수수께끼는 누가 고흐를 죽였느냐는 것이다.
이 내용은 2011년에 출판된 '반 고흐: 삶'(Van Gogh: The Life)의 내용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유명 소설가인 스티븐 네이페와 작가 그레고리 화이트 스미스는
수많은 고흐의 편지를 분석함과 동시에 많은 고흐 연구자들과 인터뷰를 진행하고 쓴 그 책 속에서
고흐가 프랑스 근교 농촌 오베르 쉬르 우아즈에서 소년 2명에 의해 살해됐다는 가설을 전개하고 있다.
당시 고흐는 마을에 살던 두 소년(형제)과 친분이 있었는데
사건 당일 보리밭에서 그림을 그리고 있었고 불량 총을 가지고 놀던 두 소년이 우발적으로 쏜 총에 맞았다는 것이다.
총상을 입은 고흐는 고통으로 느끼면서도 이 소년들의 미래를 생각해
스스로 자살을 가장하기로 하고 예기치 않은 죽음을 받아들인 것이라고 추론하고 있다.
사건 전날 고흐는 평소보다 많은 물감을 주문했다는 기록도 남아있으며, 사실이라면 적어도 전날까지 자살할 의지는 없었다는 것이 된다.
이번 범죄과학 전문가로부터 옹호를 얻어 점점 '타살설'이 신빙성을 띠고 있다고 말할 수 있지만, 네이페와 스미스는 또 다른 우려도 갖고 있다.
두 사람은 "가장 큰 문제는 고흐의 자살은 천재 예술가의 극적인 '그랜드 피날레'(장엄한 종말)로
사람들의 뇌리에 각인돼 흔들리지 않는 것이 돼 버리고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즉 천재 예술가 반 고흐의 '전설'은 이미 완결돼 있는 것이지, 그의 팬일수록 '수정'된 내용을 받아들이기 어려울지도 모른다는 것이다.
하지만 소년들의 미래를 생각하고 죽음을 감수한 고흐 역시 결코 그 모습의 나쁜 죽음이 아니었으리라고 전문가들은 입을 모으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