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호텔 화장실에서였다.
안에서 일을 보다가 밖에서 들리는 목소리에 푹,하고 웃음을 터뜨렸다.
들어올 때 세면대에 나란히 서서 손을 씻던 여자들의 뒷모습을 본 것 같은데 그들은 아마도 모녀간이었나 보다.
나이 든 목소리가 말했다.
“글세, 그 개애 같은 X이 오래간만에 즈이 집에 간 시어미한테 햇반인지 뭔지 슈퍼에서 파는 상자 밥을 내높지 뭐냐.”
젊은 목소리가 맞장구를 쳤다.
“그러게 내가 뭐랬어? 엄마 다신 그 집에 가지 마라니까.”
저런 철없는 것이 있나.
말리는 시누이도 얄밉다지만 말리는 척도 안하고
부추기기부터 하는 시누이가 좀 지나치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엄마는 충분히 위로받았나보다.
두 사람의 대화가 알아들을 수 없을 만큼 낮고 오순도순해졌다.
내가 웃음을 참지 못했던 것은 ‘개애 같은 X’이라는 독특한 발음 때문이었다.
개도 아니고 ‘개애’였다.
그 발음을 어찌나 걸쭉하고 길게 하는지 그 엄마의 분노와 섭섭함, 모멸감이 생생하게 느껴졌다.
박완서 '못 가본 길이 더 아름답다.'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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