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법재판소가 탄핵소추안을 기각할 때까지,
나는 63일동안 청와대 관저에 칩거했다. 그날 밤부터 잠을 잤다.
식사 시간에 나타나지 않으면 직원들이 계속 기다리기 때문에 세 끼 밥은 제때 먹어야 했다.
그 시간 빼고는 계속 잤다. 자도 자도 잠이 끝없이 밀려왔다. 일주일을 자고 나니 정신이 들고 기운이 났다.
책을 읽었다.
그것 말고는 할 일이 없었다.
내가 거실에서 책을 읽으면 아내는 안방에서 읽었고,
내가 탁자에서 읽으면 아내는 소파에서 읽었다.
자리를 바꾸어가며 낮에는 책만 읽었다.
오후 6시가 되어 부속실 직원들이 퇴근하면 그제서야 관저 마당으로 나갔다.
관저 인수문 밖으로 나간 일은 거의 없었다.
오찬 모임을 가끔했던 상춘재에 갈 때도 앞뜰에는 나가지 않고 사잇문을 통해 뒤뜰에만 갔다.
툇마루에 앉아 뒤뜰을 보면서 시간을 보냈다.
아내와 들이 거기 앉아 옛날 이야기도 하고 책 이야기도 나누었다.
아주 가끔 몇사람의 참모들과 뒷산에 올라간 것 말고는 63일동안 관저를 한 번도 벗어나지 않았다.
몇 년씩 불법가택연금을 당했던 김대중 대통령에 비하면,
63일의 칩거는 그저 잠깐 소풍을 나온 것처럼 가벼운 일이었다.
탄행소추안이 가결된 그날부터 서울시청 앞에서 촛불집회가 열렸다.
관저 앞마당에 어스름이 깔리기 시작하면 멀리서 소리가 들렸다.
관저 마당왼쪽 계단을 밟고 뒷산으로 올라가면 등산로 진입로에 조그만 탁자를 놓은 작은 쉼터가 있다.
우리는 이것을 데크라고 불렀다. 이 쉼터에 올라가면 광화문 세종문화회관 부근까지 불빛이 보인다.
그 너머는 보이지 않는다.
사람이 얼마나 많은지, 무어라고 소리치는지는 알 수없다.
멀리서 사람들이 외치는 함성이 아련히 들릴뿐이다. 관저 안에서는 유리가 두꺼워 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용암처럼 일렁거리던 촛불 바다는 텔레비전 뉴스로만 보았다.
쉼터에서 그 소리를 들으면,아내는 우리 편이 저렇게 많이 왔다고 좋아했지만 나는 겁이 났다.
저 사람들이 저렇게 밤마다 촛불을 들고 와서 나를 탄핵에서 구해 줄 것이다.
그리고 그 다음에는 내게 무엇을 요구할까?
저 사람들이 원하는 것을 내가 과연 해낼 수 있을까?
그런 두려움이 촛불 시민들의 함성에 실려왔다.
<노무현자서전 운명이다.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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