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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일지

가끔 쓸쓸한 아버지께

 

 

- 해서는 안될 사랑을 했어요. 하지만, 아버지를 떠 올리고는 그만 두었어요.<29세 여성>

- 한 잔 걸치고 돌아오시는 시간은 언제나 열시 사십 분.  덕분에 드라마의 마지막을 놓친답니다.<17세 딸>

- 엄마한테 늘 야단맞는 아버지,하지만 난 아버지 편이야.<12세 아들>

- 아버지가  유리 컵에 남긴 맥주.  아버지의 남은 인생 같아서 서글펐다.<29세 남>

- 나를 무자비하게 때리던 당신, 손주에게 머리채를 끄들리며 히힝 말이 되어주는 당신,  정말로 같은 사람 맞나요?<26세 여성>

- 그 해 크리스마스의 밤. 산타 할아버지와 눈이 마주치고 난 뒤부터 '선물없음'은 서운해요.<16세 여>

- 알고 있어 뺨 만지러 오는 것, 자는 척 하기도 어렵단 말이야.<12세 여>

- 왜 그다지도 나를 때렸을까. 자식을 낳고보니 더더욱 알 수 없어졌습니다.<29세 여성>

- 아빠 공주님이 자고 있어도 회사 갔다 올게 말하고 가.<5세 여>

- 아빠 이젠 더 이상 목욕 같이 못해. 하지만 병들어 못 일어나면 내가 씻겨 드릴게.<여 14세>

- 아버지와 싸운 밤 울었습니다. 이겼기 때문에 울었습니다.<남 22세>

-"아버지가 젊으시네"란 말 듣기 싫었다. 두 번째 아버지라는 걸 들킬 것만 같았다.<32세 여>

- 당신의 일터를 처음 보았을 때 어머니는 말했다. 월급, 함부로 써선 안 되겠네.<15세 여>

- 팔씨름을 해서 처음으로 이겼다. 하지만 아버지의 얼굴을 보고선 지는 편이 좋았을 걸, 생각했다.<15세 남>

- 열 살의 겨울, 어머니가 갑자기 집을 나간 날부터 당신은 나의 적이자 유일한 전우였습니다.<42세 여>

- "아버지의 직업은?" 어른들이 곧잘 하는, 제일 듣기 싫은 질문이었습니다. 하늘나라에서 뭐하고 있어요? <58세 여>

- 새로운 것에 쉬 이끌리는 기질이야. 어쩔 수 없다지만 낡은 것도 좀 소중히 대해요. 특히 엄마라든가.<31세 여>

- 아버지와 늘 다투어 왔다. 그것이 자신과의 싸움인 걸 요즘에야 겨우 깨달았다. <23세 남>

 

 짧은 편지 하나마다 편지 쓴 사람의 일상이 머리속에 연상되고 긴 여운이 남는다.

그 중 몇 편을 골라 옮겨 보았다. 나는 아이들에게 어떤 아버지로 그려질까?

또 나의 아버지에게 편지를 쓴다면 나는 어떤 편지를 쓸까?

일본에서 아버지에게 쓴 짧은 편지에 응모 된 편지글을 묶은 책이다. 우리 나라도 이와 비슷하지 않을까? 싶다.

역자의 말대로 누가 쓴 편지일까? 나이나 남녀를 가리고 알아 맞춰보는 것도 재미가 있다.

그리고 누구든 편지 한편 '저 이야긴 나도 아버지에게 하고 싶은 말이었는데....'하는 글이 있을 것 같다.

오늘 수능시험 보는 딸 아이에게 나는 어떤 아버지일까?

 

 우리나라로 치자면 읍 정도쯤 되는 마루오카 마을이 일본 전역에 이름을 떨치게 된 것은 1993년

편지글 쓰기 대회를 열면서부터 마루오카 성 안에는 약 400년 전 도쿠가와 이에야스의 공신이었던 혼다가

진중에서 아내에게 보낸 짧디 짧은 편지글에서 마루오카 마을의 편지글 대회가 시작되었다.

 어머니 아버지 가족등 매년 주제를 달리하며 우정성의 후원 아래 열리는 이 대회는

전국에서 매번 수 만에서 십 수만 통의 편지가 쏟아져 들어오는 호응을 얻고 있다.

25자에서 35자 사이의 '일본에서 가장 짧은 편지'대회에 참여한 평범한 일본 사람들은 하이쿠와 단가로 유명한 민족의 후예답게

짧은 편지글 속에 다채로운 사람 살이의 모습들을 함축적으로 담아냈고 그 여운은 읽는 이들 마음 깊숙한 곳을 울려 준다.

<가끔 쓸쓸한 아버지께/마루오카 마을엮음/노미영 옮김/마고북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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