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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종

평생 그리워하여 붙여진 이름 어린 나이에 왕이 억울하게 죽었다. 그러자 변절자인 신하가 후임 왕에게 왕비였던 여인을 자기의 노비로 쓰겠다고 했다가 거절당한다. 그런 인물이 바로 변절자의 대명사여서 잘 쉬는 나물이름을 숙주나물이라 불리우게 된 신숙주다. 신숙주가 노비로 쓰겠다고 한 여인은 비운의 왕인 단종의 왕비 정순왕후 송씨다. 그가 묻혀있는 사릉을 찾았다. 정순왕후는 단종 2년에 왕비로 책봉되었고, 이듬해 단종이 상왕으로 물러나자 의덕왕대비가 되었다. 그러나 세조3년 단종복위운동 실패후 단종은 노산군으로 강등되어 영월에 유배되었고, 정순왕후는 군부인으로 강등되어 정업원(현재의 청룡사)에서 생활하였다. 단종이 17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나자 정순왕후는 매일 정업원 뒤 산봉우리(동망봉)에 올라 영월을 바라보며 슬퍼했다고 한다. 정순왕후.. 더보기
영월 - 단종 유배지 장릉(莊陵)은 조선 단종의 무덤. 이전에는 노산군묘로 불렸다가 숙종 때 능 지위로 승격되었다. 별칭은 노릉(魯陵) 대부분 서울특별시나 경기도에 분포되어있는 다른 조선왕릉과는 다르게 유일하게 강원도에 있는 왕릉. 더보기
강원도 - 영월 영월 객사와 관풍헌 및 자규루는 조선 제 6대 임금인 단종이 이곳에 유배되어, 노산군으로 강봉된 채 17년간의 짧은 생을 마감한 곳으로 전해진다. 세조 3년(1457) 청령포에 유배되어 지내다가 홍수가 나게 되자 당시 영월부 객사의 동익헌이었던 관풍헌으로 처소를 옮겨 침전으로 사용하였고, 자규루(당시 매죽루)에 자주 올라 임금의 자리에서 쫓겨난 어린 임금의 비통함과 애처로움이 배어 있는 시를 지었던 곳으로 전해진다.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