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누이 동생은 성탄절에 태어났다.
우린 카톡으로 모두들 축하의 말을 전했다.
그러다 태어났을 때의 기억들을 서로서로 이야기 하게 되었다.
큰 누이가 기억하는 여동생이 태어난 날.
아무도 들어오지 못하게 앞문은 잠그고 뒷문에는 드럼통으로 막아놓았는데
마침 성탄절이라고 이웃에서 뭔가를 들고서는
막아놓은 드럼통을 비집고 들어와서 할머니가 막 화를 내셨다고.
그리고
내가 태어났을 땐 아이 우는 소리가 나서 깨어보니
아버지가 대문에 매달아 걸려고 새끼줄에 뭔가를 끼어 넣고 계셨단다.
나는 막내 동생이 태어났을 때
할머니가 더운 물을 양은 대야에 담아 안방으로 들어가시면서
"아들이다 ~아들~!!" 했던 기억이 난다.
나보다 5살 위인 큰 누이는 내가 태어날 무렵 이야기를 했고,
나는 나보다 5살 아래인 막내의 태어났을 때의 이야기를 했다.
어쩌면 각자 기억하는 가장 오랜 기억들 중 하나일 것이다.
그러다 일찍 돌아가신 엄마를 대신해서 우리를 돌보신 할머니를 떠 올렸다.
1899년 우리와 세기를 달리해서 태어나셔서 우리 나라의 어렵고 힘든 세월을 거쳐오신 분.
귀가 어두우셔서 할머니하고이야기 할때면 항상 소리소리 질러가며 이야기를 해서
이야기하는 당사자 아닌 다른 사람이 들으면 싸우는 소리로 듣기 십상.
처음 TV를 보시곤 놀래시던 그 표정
"저 사람들은 끼니때가 되었는데 밥들도 안먹고 저렇게 떠드는 거냐?" 하셨던 기억.
나 어릴적...
할머니 손을 만지작만지작 거리다가....
그...자글자글한 손등에...
주름을 몇 줄 짙게 세워놓고 여기는 태백산맥....
여기는 무슨 산맥 이러면서....장난을 하면
할머니는 말없이 웃으셨다.
아낌없이 주는 나무처럼
언제든 어디서든...
무한정 베풀기만 하셨다.
할머니는 주는 사람이고
난 받는 사람이라고....
그것이... 당연한 것이라고....
허나
받는 것에 익숙해진다는 것은.....
쓸쓸하게...시나브로... 불효자가 되는 일이기도 하다.
할아버지가 10년 동안 집을 나갔다 돌아오신 적도 있다하니
얼마나 힘든 삶이었을까?
자신의 며느리인, 우리 엄마가 돌아가셨을 때
내가 먼저 가야하는데...하시면서
통곡을 하셨던...기억이...
일제시대와 6.25....
그런 격동의 세월 속을 헤쳐오시면서
그저 목숨을 부지하는 것만으로도 다행으로 여기며
자신의 욕심과 생각을 자연스럽게 닫으신 듯
그렇게... 살다... 가셨다.
나는 할머니와 떨어져 지내 본 적이 거의 없다.
유일하게 고모님댁에 잠깐 가 계셨던 기간만이 기억에 남아 있다.
멀미를 하셔서 어디 멀리 가신 적이 거의 없으신 것도 있지만
진심이신지, 어디 가고 싶단 말을 한 적도 없으시다.
이따금 할머니와 떨어져서 지내는 기회가 가끔씩 있었더라면
할머니에 대해 조금은 더 애틋한 마음으로 대했을까.
떨어져 있는 그 시간 사이에 정이란 것이 함뿍 더 자랐을까......
희생만 하신 할머니에게 대한 내 태도에 대해 뭔가 변명거리를 찾고 싶었다.
그러다가 세간에서 이야기 되는
함께 살면서 티격태격하며 고생하나 좋은 소리 듣지 못하는 자식과
떨어져 살며 이따금씩 선물을 안겨 고생 안하면서 좋은 소리 듣는 자식 이야기가
할머니에 대한 생각과 함께 뒤섞이기도 했다.
추위에 계곡물도 꽁꽁 얼어 소리도 움직임도 없으나 생각은 풀어져 과거를 마냥 돌아다닌 날이다.
부모님과 할머니가 지금 곁에 계신다면 창넓은 차를 사서 아주 천천히 유람하듯 전국을 돌아다니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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