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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지 6 - 적벽대전, 주유와 제갈양

 통일을 목표로 세력을 계속 팽창하던 조조에, 손권과 유비가 연합해 대항하여 양자강에서 벌어진 적벽대전이 다뤄지고, 주유와 제갈공명의 지략대결이 펼쳐진다.

어찌하여 하늘은 제갈공명과 같은 시대에 주유를 내리셨는지, 그 둘의 대비가 제갈공명을 더 돋보이게 한다.

지략이 뛰어난 주유였지만 제갈양에겐 한 수 아래임이 증명된다.

제갈양과의 대결에서 번번히 패하면서 결국 주유는 삶을 마감하기에 이른다.

 

- 조조가 주유의 계략에 넘어가 자신의 아끼는 채모와 장윤을 죽이는 어이없는 짓을 하곤 속이 뒤집힌다. 하지만 정사에는 기록되어 있지 않다. 연의를 지은 이가 편화나 민담에서 빼내 쓴 것 같은데 재미있는 것은 이 이야기를 통해 노리는 것이다. 얼핏 보아 주유를 높이는 것 같지만, 실은 그 주유를 앞으로 몇 번이고 농락하게 될 공명을 위한 포석인 까닭이다.

 

- 손견 때부터 손씨를 섬겨 온 노장 황개, 어렸을 적 손책과 더불어 그에게서 칼 쓰기를 배운 적도 있는 주유였다. 손견을 위해 목숨을 돌보지 않고 싸움터를 누볐고, 손견이 죽은 뒤에는 그 아들 손책을 도와 강동에 터를 잡게 했으며 다시 손책이 죽자 이번에는 그 아우 손권을 위해 일하는 그의 충성을 높이 여기기는 하나 그 무렵 주유는 황개를 어쩔 수없이 몸은 늙고 머리는 굳어가는 장수로 보고 있었다.

그저 공 있는 원로로서 공경하며 대할 뿐 장수로서는 이미 한창 때를 넘긴 이로 알았는데 그 밤에 다시 보니 그게 아니었다. 눈빛은 무언가 알지 못할 결의로 번뜩였으며 시들어 가는 줄만 알았던 근육도 어떤 투지 같은 것으로 팽팽하여 부풀어 있었다.

 

- 이런 황개를 조조에게 사향계로 사용하려고 하고, 황개도 자신의 희생을 당연한 것으로 여긴다. 매 타작을 당하면서도..

 

- 방사원은 양의 방통으로 수경선생 사마휘가 봉추라고 부르던 바로 그 사람이었다. 난리를 피해 강동으로 옮겨 살았는데, 노숙이 일찍부터 주유에게 그를 천거했으나 그는 어찌 된 셈인지 주유를 찾아보려 하지 않았다.

 

- 자신의 계책를 서서가 깨트려 버릴까 애가 탄 방통에게 서서는 정색을 하며 말했다."염려 말게. 일찍이 나는 유황숙께 두터운 은혜를 입었던 사람이 아닌가? 아직껏 한번도 거기에 보답할 생각을 잊어 본 적이 없네. 거기다가 조조는 내 어머니를 핍박하여 돌아가시게 한 원수가 아닌가?"

 

- "내 나이 이제 쉰넷이나 강남을 얻게 되는데 은근히 기쁜일 이 하나더 있다. 지난날 교공과 내가 매우 가까운 사이였을 때, 나는 그 두 딸이 모두 빼어나게 아름다운 걸 보고 은근히 탐낸 적이 있다. 그런데 뒷날에 이르러 뜻밖에도 그 두 딸은 손책과 주유에게 각기 시집을 가고 말았다. 나는 그걸 늘 애석학 여겼으나 이번에 자수가에 새로 동작대를 세우면서 속으로 다집은 게 있다. 강남을 얻으면 마땅히 교공의 두 딸을 데려와 그 대 위에다 두고 노년을 즐기리란 것인바. 이제 그 소원을 풀게 되었다." 조조가 그렇게 말하고 다시 한번 호탕하게 웃는데 홀연 까마귀 한 마리가 남쪽으로 날아가며 울었다.

 

- 적벽대전은 연의에서 가장 흥미롭고 재미난 부분 가운데 하나인 만큼 역사적인 진실을 알아 두어야 할 필요도 있을 것 같다. 먼저 살펴보고 싶은 것은 양편의 정확한 세력이다. 연의에서 조조의 군사는 흔히 백만으로 불이고 있고, 제갈량에 의해 과장될 때는 150만, 주유에 의해 과소평가될 때도 형주에서 새로 얻은 군사 8만을 빼고 23만이었다. 그러나 사가들은 대략 25만 내외로 보고 있다. 이에 비해 유비, 손권의 군사는 연의와 정사가 대략 일치하여 5만으로 되어 있다. 다시 말해 양쪽의 군사는 흔히 말하듯 20대 1또는 17대 1이 아니라 5대1이었다. 거기다가 조조의 군사는 태반이 원소화 유표에게서 항복해온 군사여서 믿을 수가 없었고, 순수 북방의 군사들은 또 태반이 병에 걸려 실제 전력은 두 배를 크게 넘지 않았을 것으로 보는게 사가들의 통상적인 견해다.

 

- 조조의 수군이 배를 서로 얽은 것은 배멀미를 줄이기 위해  짜낸 방책이었다. 감택이 강을 건너 조조에게도 가서 그럴싸한 말로 황개의 항복을 믿게 하는 것도 꾸며낸 이야기다. 황개와 주유가 꾸민 고육계도 마찬가지, 정사에는 전혀 기록에 남아 있지 않다. 따라서 그토록 현란하게 오간 계략 중에서 유일하게 정사에 들어맞는 것은 황개의 사항계 하나뿐이다.

 

- 여기서 다시 한번 음미해 보고 싶은 것은 작가의 사관과 정통성의 문제이다. 혈통만이 왕조의 정통성을 보장하는 유일한 징표라는 관점에서 촉한정통론을 앞세우다 보니 유비쪽의 승리를 지나치게 과장하게 되고, 또 그렇게 하다보니 조조의 패배는 그토록 치욕스럽고 참담하게 꾸며지게 되었던 것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무도 그런 연이의 저자를 나무랄 수는 없다. 그는 그가 살았던 시대의 보편적인 관점에 따라 정통성을 부여했고, 그 정통성에 따라 얘기를 꾸며 나갔을 뿐이므로.

 

- 관우가 화용도에서 조조를 놓아 준 이 그림 같은 광경은 정사 어디서도 찾아볼 수 없다.

연의를 지은이의 탁월한 소설적 재능일 뿐 그걸 바탕으로 한 역사적 사실의 해석은 비약 이상의 억지가 될 것이다.

 

- 장사 태수 한현은 성질이 급하고 사람 죽이기를 가볍게 여겨 모두에게 미움을 받고 있었다. 그저 늙은 장수 황충 한 사람만 믿고, 그럭저럭 자리를 지켜 가는데 문득 관우가 쳐들어온다는 전갈이 들어왔다. 한현은 급히 황충을 불러 의논했다. "주공께서는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제게 이 한 자루 칼이 있고 이 한 벌 활이 있는 한, 천 명이 온다면 천 명이 다 죽고 만 명이 온다해도 또한 만 명이 다 죽을 뿐입니다." 황충이 그처럼 한현을 안심 시켰다. 그도 그럴만한 것이 황충은 쌀 두 섬을 들어올릴 수 있는 힘이 있는 사람이라야 당길 수 있는 활을 쓰는데 백 번을 쏘면 백 번이 다 과녁을 뚫을 정도였다.

 

- 관우는 황충과의 싸움을 떠올리며 가만히 생각했다. ' 황충은 늙었지만 실로 헛되이 이름이 나는 법은 없구나. 오늘 백 합이 넘도록 싸웠으나 조금도 흐트러진 구석이 없었다. 내일은 타도계로 그를 유인하다가 갑작스레 되돌아서 베어 버려야겠다.

 

- 원래 황충은 달아나다 되돌아 활을 쏠 작정이었으나 그 전날 관우가 지기를 죽이지 않은 은혜를 생각하니 차마 그럴 수 없었다. 칼을 칼집에 꽂고 활을 꺼내 들었지만 살을 얹지 않고 빈시위만 당겼다 놓았다.

 

-유비는 미천한 바닥에서 몸을 일으켜 천하를 바쁘게 뛰어다니느라 아직 부귀를 누려보지 못했을 것입니다. 이제 만약 으리으리한 궁궐과 큰 집을 지어 주고 아름다운 여인과 많은 재물을 내리시어 마음대로 쓰고 누리게 해둔다면 관우, 장비나 공명과는 절로 멀어지게 될 것입니다. 그리하여 서로가 각기 원망하는 마음이 일게 한 뒤라야만 형주를 도모할 수 있습니다.

 

- 아무리 격해 있는 중이라도 옳은 말을 들으면 곧 스스로의 감정을 다스리고 그 말을 따를 줄 안다는 것만으로도 손권은 확실히 제왕의 재목이었다.

 

-"승상께서는 수많은 군사들 틈에서 돌과 화살이 비오듯 할 때도, 그리 놀라하신 적이 없었습니다. 그런데 이제 유비가 형주를 얻었다는 소리를 듣고는 무슨 까닭으로 그리 놀라십니까?" 조조가 술이 확 깬 얼굴로 탄식하듯 대꾸했다.

"유비는 사람 가운데 끼여든 용 같은 인물로 아직껏 그 놀 물을 얻지 못했을 뿐이오, 그런데 이제 형주를 얻었다 하니 이는 고단한 용이 바다로 들어간 것이나 다름없소이다. 내가 어찌 놀라지 않겠소!"

 

- 마초의 모습이 조조의 눈에 들어왔다. 얼굴은 분을 바른 듯 희고 입술은 주사를 칠한 듯 붉었으면 허리는 가늘고 아랫도리는 펑퍼짐한데 목소리가 힘차고 용맹스럽기 그지없었다. 아비의 상복을 대신했는지 흰 갑옷에 은투구에다 긴 창을 잡은 채 양쪽에 마대와 방덕을 벌여세우고 말 위에 덩그렇게 앉아 있는 모습이 그야말로 하늘에서 내려온 신장 같았다. '서량의 구슬 같은 마초라더니, 과연 그대로구나!'

 

<이문열삼국지6/민음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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