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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원하는 것을 나도 모를 때

- 바쁘게 흘러가는 세상의 속도에 걸음을 맞추다 보면,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내면이 소진되고 마음 한구석엔 구멍이 뻥 뚫려버립니다. 온전한 모습을 잃어버린 채 살게 되는 거죠. 그렇게 하루하루 떠밀리듯 살다 보면, 내가 진짜 원하는 게 뭔지 스스로도 알 수 없게 됩니다. 무슨 일을 해도 즐겁지 않고 누구의 위로를 받아도 위로가 되지 않죠. 혼자 있고 싶으면서도 다른 한편으로 외로움이 덮쳐옵니다.

 

저 역시 그랬습니다. 그럴 때마다 누군가는 이렇게 조언해 주었죠.

"괜찮아. 다 잘될 거야." "좀 더 힘내. 너는 충분히 강하니까 해낼 수 있어."

분명히 위로를 건네는 말이지만, 그럼에도 삶은 여전히 버겁기만 했습니다. 특별히 강해지고 싶다거나 어려움을 헤쳐나갈 힘이 더 필요했던 건 아닙니다. 더 많이 노력하고 싶지도 않았고요. 생각해보면 삶의 방향과 모양은 사람마다 다른데, 제가 나아갈 방향을 다른 사람에게 묻고, 비어 있는 부분을 내 것이 아닌 다른 누군가의 것으로 채우려 했던 것이 잘못이었습니다. 이제서야 조금은 알 것 같습니다. 때로는 직접적인 조언보다 묵묵히 곁에 있어주는 위로가 더 크게 와닿는다는 것, 그저 내 마음을 스스로 돌아볼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게 그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것을 말이지요.

 

- 무사태평하게 보이는 사람들도 마음속 깊은 곳을 두드려보면 어딘가 슬픈 소리가 난다.<나쓰메 소세키>

 

나쓰메 소세키의 <나는 고양이로소이다>는 고양이를 주인공으로 한 풍자 소설입니다. 이름 없는 고양이의 시점으로 바라본 인간 사회를 날카로우면서도 유쾌하게 묘사하고 있지요. 저는 특히 이 문장을 좋아하는데, 사실 우리도 겉으로는 아무 일 없다는 듯 밝게 행동하면서 속으로는 깊은 슬픔을 감추고 살아갈 때가 많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꾹꾹 눌러둔 슬픔은 특별한 계기가 없어도 불쑥 찾아옵니다. 출퇴근길에, 밥을 먹다가, 잠들기 전에, 문득 그런 기분이 드는 거죠. 우리의 일상은 원래 희로애락이 수없이 교차하지만, 즐겁고 기쁜 날보다 슬프고 위로가 필요한 날이 더 많다면 누구든 지칠 수밖에 없습니다. 오늘날 평범한 행복 대신 평범한 불행으로 채워진 일상을 살아간다고 느끼는 사람이 점점 더 늘어난다는 건 정말 슬픈 일이지요.

 

- 김동영 작가의 <나만 위로할 것> 천천히 책장을 넘겨보다가 괜히 마음이 뭉클해지는 문장을 만났습니다.

 

나는 내게 조용히, 좋아서 하는 일을 하며 살고 있느냐고 물어보았다. 사실 따지고 보면 내가 좋아하는 일은 겉으로 보기에 좋아보이는 일이었지 내가 좋아했던 일은 아니었던 것 같다. 내가 좋아하는 일을 찾기에는 너무 늦은 나이인지는 모르겠지만 가능하면 만족하고 즐거워할 수 있는 일을 하며 지내고 싶다.

 

- 사람 사이의 관계와 거리를 인류학자 에드워드 홀은 '개체공간'이라는 개념으로 설명했습니다. 모든 개체는 자신의 주변에 일정한 공간을 필요로 하고, 다른 개체가 그 안에 들어오면 긴장과 위협을 느낀다고 합니다. 가족과는 20cm , 친구와는 46cm, 회사 동료와는 1.2m 정도의 거리가 있을 때 안정감을 느낀다는 것이죠. 이는 단지 물리적 거리만 말하는 게 아니라, 정신적 거리도 포함합니다. 아무리 친한 관계라 하더라도 적절한 거리는 필요하죠. 가까운 사이라고 함부로 그 거리를 침범하면 안됩니다.

 

- 살면서 우린 얼마나 많은 처음과 마주할까요.? 괜히 설레기도 하고 두렵기도 한, 조금 특별하게 느껴지는 것이 이 처음이라는 말인데요. 첫 등교, 첫 출근, 첫사랑, 첫 실연, 첫눈, 첫 여행 등 이상하게 아 말만 앞에 붙으면 모든 평범한 단어가 괜히 애틋해집니다.

 

- 사회학 이론중에 '깨진 유리창 이론'이 있습니다. 깨진 유리창을 그대로 방치하는 것만으로도시 전체의 범죄가 늘어날 수 있다는 거예요. 사소한 무질서가 큰 사회적 문제로 이어질 수 있다는 사실을 밝혀낸 이론입니다.

이 이론은 개인의 관계에도 적용할 수 있는데요. 예컨대 연인이나 친구가 크게 다툴 때는 단지 한 두 개의 사건만 문제가 되는 게 아닙니다. 오랫동안 작은 오해와 감정이 쌓이고 또 쌓였다가 터지는 문제죠. 이때 '왜 사소한 일로 화는내냐고' 말하는 것은 어리석은 행동입니다. 사소하지 않은 그 상황은 바로 오랜 시간에 걸쳐 사소함이 켜켜이 쌓였을 때 일어나니까요.

 

- 매년 조금씩 나이를 먹어가고

매일 조금씩 삶은 복잡해져 간다.

 

어른이 되지 않아도 괜찮아요. 다만 당신 자신이 되세요.

그것이 여러분이 이 세상에 태어난 목적이니까요.

 

요시모토 바나나의 에세이 <어른이 된다는 건>

 

- 추억에는 묘한 매력이 있어서 그걸 다른 사람과 나누면 나눌수록 인생은 풍성해지죠. 꼭 좋은 일만 추억이 되는 건 아닙니다. 때로는 괴로움이나 상처를 남긴 나쁜 일도 시간이 흐르면 추억이 되니까요. 그렇게 우리는 하루하루 많은 추억을 만들며 살아갑니다.

 

- 사랑을 시작할 땐 누구나 영원할 것처럼 생각하지만, 많은 사랑에는 안타깝게도 수명이 있습니다. 하지만 중요한 사실은 이렇게 사랑이 끝날 때도 사랑에 소홀했던 사람보다 더 많이 사랑했던 사람이 더 성장하고 많은 것을 배울 수 있다는 겁니다. 처음에는 상처를 받지만, 결국 그 상처가 아물고 나면 더욱 단단해지는 거죠. 그런 사람은 헤어진 연인에게도 "넌 좋은 사람이었어"라고 말할 수 있고, "너를 사랑해서 행복했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최선을 다해 사랑한 사람에게는 어떤 아쉬움도 없고, 후회도 없기 때문입니다.

 

- 우리는 인간에 대한 이해 없이 오랜 시간을 살아왔고, 그 결과 서로 낯설어졌다. 우리는 자식을 이해하지 못하겠다고 한탄하는 부모와 자기를 이해해주지 않는다고 불평하는 자녀들을 자주 본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인간 이해에 대해 무지하면서도 스스로 인간을 잘 안다고 자처하며, 또한 짧은 지식을 가지고 남을 가르치려 든다. <아들러의 인간이해>

 

- 당신 인생의 목적은 무엇인가요? 누군가 묻는다면 저는 이렇게 대답할 것 같습니다. "나로 사는 것입니다."라고요. 이 대답을 조금 의아하게 생각하실 분도 있을 겁니다. '이미 모두 나로 살고 있잖아?' 하고 말이죠. 그런 의문을 품고 있는 분들에게 저는 이런 질문을 드리고 싶습니다. 지금 당신은 정말 '나답게' 살고 있나요?

아마 쉽게 그렇다고 대답할 분은 많지 않을 겁니다. 단지 나로 사는 걸 넘어서, 나답게 산다는 건 좀 더 실존적인 고민이 필요한 문제니까요. 저 질문에는 오히려 아니라고 대답할 사람이 더 많을지도 모르겠네요. 슬픈 현실이지만 세상에는 하고 싶은 일을 하며 자유롭게 사는 사람보다 사회가 정해놓은 틀에 갇혀 하고 싶지 않은 일과 관계 속에서 정신엇이 살아가는 사람이 더 많으니까요. 세상에서 가장 귀중한 존재인 자기 자신을 돌볼 틈도 없이 말입니다.

 

- 낭만주의는 18~19 세기 유럽을 휩쓴 예술운동입니다. 그때까지 유럽을 지배했던 건 논리와 이성, 균형을 추구한 엄격한 고전주의 사조였는데, 낭만주의는 이에 반발하면서 등장했습니다. 아름다움이 객관적인 이성과 균형이 아니라 주관적인 감성에 달려 있다고 여긴 거죠.

 

- 세상이 감옥 같다고 하더라도, 자신이 원하면 언제든 자유를 되찾을 수 있다는 감각, 그것이 바로 낭만인 것이죠. 낭만은 멀리 있는게 아닙니다. 개인이 자신만의 소소한 행복을 찾는 것, 작은 화분을 기르는 것, 잠들기 전 책을 읽는 것, 스스로 여유를 찾아내는 모든 것이 낭만입니다. 아무리 어려운 상황에서도 좌절하지 않고, 다른 사람의 평가가 아닌 오직 내 감정에 충실해 나만의 아름다움, 나만의 길을 뚜벅뚜벅 걸어가 행복을 찾는 것이 바로 낭만적인 사람이 지닌 놀라운 능력이죠.

인생이 지루하고 답답하다면, 내 삶의 작은 낭만을 찾아 보는 건 어떨까요? 지나간 과거나 먼 미래가 아니라, 바로 지금 오늘 우리 눈앞에 있는 낭만을 찾아 누리는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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