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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지 5 - 유비와 제갈량의 만남

 삼국지 5권에서는 유비와 제갈공명의 만남이 그려져 있다.

이 권에서의 압권은 조자룡이 가슴에 유비의 어린 아들을 품에 안은채 싸운 장면과

제갈량과 주유의 신경전....주유가 유비를 없애려고 벌이는 술책과 모면등이 박진감있게 그려져 있다.

 

- 벌써 이곳 형주로 내몰린 지도 너덧 해가 되는구나. 내 나이 이미 마흔 일곱, 아직도 남의 식객 노릇이나 하고 있으니 아아, 장차 남은 날이 어찌 되려는가....유비의 탄식

 

- 형주에서 유비의 세력이 지나치게 커지는 게 마땅치 않은 채모는 누이인 유표의 처 채부인에게 유표에게 이야기하라고 하고, 채부인은 전처가 낳은 장남을 제치고 자신이 낳은 아들에게 형주를 넘겨주게 하기 위해 밤낮으로 유료를 졸라대는 중이었다.

 

- 건안 12년 유비의 나이 50을 바라보는 나이에 첫아들 유선을 감부인이 낳은 것이다.

 

- 평소부터 유비를 의심해오던 채부인은 유표와 유비의 이야기를 병풍 뒤에서 엿듣고 있다가 유비에게 깊은 원한을 품게 되었다.

 

- 복룡, 봉추 두 사람중 하나만 얻어도 가히 천하를 평안케 할 수 있을 것이오. 복룡 봉추는 누구입니까? 귀가 번쩍 뜨인 유비가 거듭 물었다. 그러나 왠지 수경선생(사마휘)은 답해주지 않았다.

 

- 유비와 조인(조조의 아우)의 이 번성 싸움에는 한 가지 특기할 게 있다. 그것은 연의 전편을 통해 처음으로 진법 싸움이 선보이고 있는 점이다. 진법이란 한 마디로 군사의 배치라 할 수 있다.

 

- 제갈공명은 원래 낭야군 양도 사람으로 한 사예교위를 지냈던 제갈풍의 후손이 됩니다. 그 아버지의 이름은 규요, 자는 자공인데 일찍 태산군의 승을 지냈으나 젊어서 죽고 그는 숙부인 현에게서 자랐지요. 그런데 제갈현은 유표와 예부터 아는 사이라 의지하여 살러 오다 보니 가솔들을 이끌고 양양으로 옮겨 앉아 살게 된 것입니다. 와룡선생이라고 칭하기도 합니다.

 

- 전에 수경 선생께서 이 비에게 말씀하시기를 복룔과 봉추 둥 중에 하나만 얻어도 천하를 평안케 할 수 있다 하였습니다. 혹 지금 선생께서 말씀하신 사람은 그 복룡과 봉추 가운데 하나가 아니십니까?

 

- 봉추는 양양의 방통을 말합니다. 그리고 복룡은 바로 방금 말한 제갈공명 그 사람입니다.

 

- 공명이 아직 세상에 나가지 않은 것은 선뜻 주인을 정하기에 몇 가지 어려운 점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가 섬길 만한 사람으로 생각할 수 있는 것은 유표였다. 유표는 저 당고 사건의 생존자로서 학식도 깊고 덕망도 두터웠다. 그러나 그는 이미 한 세대 전의 사람이었으며 이제는 몸마저 늙어 천하를 다투기보다는 가진 것을 지키는 데만 마음을 쓰고 있었다.

 

- 다음으로 생각할 수 있는 것은 조조였다. 조조가 스물일곱 때 태어난 제갈공명은 조조와 한 세대의 차이가 있었다. 따라서 제갈공명이 세상에 뜻을 둘 나이가 되었을 때는 조조가 이미 천하의 제1인자로서 마지막으로 원소의 잔당들을 토벌하고 있을 때였다. 다시말해 조조는 벌써 천하 제패의 가반을 거의 닦아 놓았늘 뿐 아니라 기라성 같은 제사와 무장의 장막에 둘어싸여 있었던 것이다. 젊은 제갈공명이 그를 찾아가 본댔자 마음대로 뜻을 펼치기에는 늦은 셈이었다. 거기다가 조조는 아직도 여전히 속마음을 숨긴 채 천자를 앞세우고 있었으나 공명의 날카로운 눈길은 그의 원대한 야심을 꿰뚫어 보고 있었다. 언젠가는 한실을 폐하고 들어앉을 사람 - 그런 조조는 대의 명분과 한실 부흥의 이상에 몰두해 있는 제갈공명이 찾아갈 사람은 못되었다.

 

- 유비가 결국 천하에 베풀려고 하는 것은 이미 무너져내린 한의 재건이며 그 제도와 질서의 회복이었다. 그도 자주 백성을 내세우고 그들의 고통스러운 삶을 함께 아파하였으나, 그것은 어디까지나 민중의 힘에 대한 존중보다는 치자의 자비와 관대함에서였을 뿐이었다. 아마도 뒷말의 혁명론자들이 유비에게보다는 오히려 조조에게 더 호감을 느끼게 되는 것은 유비의 그 같은 복고적 또는 반동적 성향에 대한 거부감 때문이리라.

 

- 저는 와룡의 아우되는 제갈균입니다. 저희는 본시 3형제로 맏형 제갈근은 지금 강동 손권의 막빈이 되어 있고, 찾고 계시는 와룡은 제 둘째형이 됩니다.

 

- 조조가 정확한 상벌과 능력에 따른 훈작에 의해 부리는 사람들로부터 존경과 두려움을 아울러 느끼게 했던 것에 비해 유비는 끈끈한 인정과 몽롱한 충의에 호소하여 아랫사람들로부터 혈연에 버금가는 애정과 오랜 벗 같은 믿음을 획득하고 있는 것이다.

 

- 공명이 말하길 "이것은 서천 54주의 지도올시다. 장군께서 패업을 이루고자 하신다면 북쪽은 조조가 하늘이 준 때를 누리게 놓아두시고 남쪽은 손권이 땅의 이를 차지하게 버려 두십시오. 장군의 몫은 사람의 화합입니다. 먼저 형주를 손에 넣으시어 집으로 삼고 그 뒤 서천을 얻어 대업의 바탕을 삼으신다면 솥발이 셋으로 나뉘어 솥을 떠받들 듯 조조 손권과 더불어 천하의 셋 중 하나를 차지하게 되는 것입니다. 중원을 엿보는 일은 그런 다음에라야 이루어질 수 있습니다."

 

- 그 무렵 공명과 더불어 신야로 돌아온 유비는 공명을 대하기를 스승처럼 했다. 겨우 스물 일곱의 청년에게 오십줄에 접어든 유비가 바치는 정성이니 설령 공명이 철석같은 심장을 가졌다고 해도 감동되지 않을 수 없었다.

 

- 유표가 문득 처연한 얼굴로 말했다. "나는 이제 늙고 병이 잦아 형주 다스리는 일은 제대로 해낼 수가 네. 강동을 치는 일이야 어쨌건 아우는 이곳으로 옮겨와 나를 좀 도와주게. 내가 죽은 뒤에는 아우가 이땅의 주인이 되어 줘야겠네"

그러자 유비가 펄쩍 뛰며 사양했다. "형님께서는 어찌 그런 말씀을 하십니까? 저 같은 게 어찌 감히 그같이 큰 일을 맡아 할 수 있겠습니까?" 그때 공명이 눈짓으로 현덕을 말렸다. 힘으로라도 빼앗고 싶은 판에 스스로 넘겨주겠다는 데도 마다고 하는 유비가 안타까웠던 것이다.

 

- 사실 제갈공명이 나타나기 전만 해도 관우와 장비는 유비만 빼면 자기들의 무리에서 으뜸가는 권위를 행사할 수 있었다. 그런데 난데없이 새파란 애송이가 끼어들어 자기들 위에 서려하니 유비와 사이가 멀어지는 듯한 섭섭함 이상으로 못견딜 일이었다.

 

- 이런 불만을 들은 유비는 두 아우에게 "내가 공명을 얻은 것은 마치 고기가 물을 얻은 것과 같네 두 아우는 두 번 다시 그런 말을 하지 않도록 하게" 이른바 수어지교란 말이 생겨난 연원이다.

 

- 유표가 끝내 후사 문제를 밝히지 못하고 숨져 버리자 채부인은 처음부터 마음 속에 품고 있던 계책을 실행에 옮겼다. 채모, 장윤에게 거짓으로 유촉을 쓰게 하여 자신이 낳은 유종을 형주의 주인으로 세운 되에야 발상을 한 것이다.

 

- " 조조가 죽이고자 하는 것은 이 유비지 저들이 아니다. 나 한사람으로 백성들이 이토록 큰 어려움에 빠지게 되었으니 무슨 낯으로 살아가겠는가." 입으로만 하는 말이 아니었다. 유비는 말을 마침과 함께 시퍼런 강물로 뛰어내리려 했다. 곁에 있던 사람들이 놀라 옷깃을 잡고 말려 아무일 없었으나, 그걸 전해들은 사람치고 울지 않는 사람이 없었다.

 

- 제갈공명을 얻었을 때는 새로운 희망과 야심으로 불타오로기도 했다. 하지만 아무래도 그들의 만남은 너무 늦어 보였고 일치하는 이상도 실현을 희망하기에는 너무 낡아 보였다.

 

- 유비가 이미 가도 멀리 갔으리라 여겼던 조조는 한편 반가우면서도 한편으로는 새삼 유비가 두렵게 여겨졌다.

( 나는 가는 곳마다 백성들을 위해 제도를 고치고 세금을 덜었다. 무언가를 베풀려고 애쓰고 도움되기를 바랐다. 그러나 백성들은 고마워할지언정 나를 좋아하고 따르지는 않았다. 나는 그럼으로써 그들의 마음을 사려했기 때문이다. 백성들은 오랜 경험으로 결국 그러한 사고 팔기에서 보다 큰 이득을 보는 것은 사려고 애쓰는 쪽이라는 걸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유비는 다르다. 나는 한 번도 그가 적극적으로 무언가를 백성들에게 베풀었다는 말을 듣지 못했다. 아니 어쩌면 그는 제도를 고쳐 백성들을 편하게 할 만한 안목도, 세금을 줄여 그들의 짐을 덜어 줄 만한 재력도 없었다. 그가 한 것이 있다면 그것은 기껏 원래보다 더 나쁘게만들지 않았다는 것 정도이다. 오히려 부양을 받고 도움을 입는 것은 언제가 그쪽이었다. 그러면서도 백성들은 그를 좋아하고 따른다. 그는 민심을 사는게 아니라 얻고 있다.

나는 처음 그것이 그의 오랜 곤궁과 불운에 대한 백성들의 단순한 동정이거나 그가 의지하고 있는 한실의 낡은 권위가 발하는 후광때문인 줄 알았다. 그러나 이제 알겠다. 사고 팔았던 사람들의 사이는 거래가 끝나면 모든 것이 끝난다. 그러나 주고 받았던 사람들의 사이는 거래가 끝나도 이어지는 그 무엇이 있다. 나는 어떤 이득을 위해 백성들의 마음을 사려 했기 때문에 더 큰 이득에 내몰리면 그들을 팔아버릴 수도 있다. 하지만 그는 애초에 이득을 사지 않았기에 이득으로 팔아버릴 수가 없다.)

 

- "미부인께서는 몸에 무거운 상처를 입으신 채 제가 권해도 끝내 말에 오르지 않고 우물로 뛰어들어 돌아가셨습니다. 저는 흙담을 무너뜨려 우물을 봉한 뒤 겨우 공자만 구해 품에 품고 에움을 뚫었습니다. 주공의 홍복에 힘입어 다행히 적진은 빠져나왔으나, 이제는 공자까지 무사하지 못한 것 같아 두렵기 짝이 없습니다. 조금 전만 해도 품속에서 울던 공자께서 지금은 아무런 소리도 없고 움직이지도 않으십니다. " 조운은 그 말과 함께 급히 갑옷끈을 풀었다. 갑옷 아래 품고 있던 아두를 꺼내 놓고 보니 한참 달게 자는 중이었다. 그 사이 아무 소리도 움직임도 없었던 것을 조운은 죽은 걸로 지레 짐작 한 것이었다. "다행히 공자께서는 아무 탈 없으십니다.~" 조운은 기쁜 얼굴로 그렇게 소리치며 잠든 아두를 유비에게 두 손으로 받쳐올렸다. 그러나 유비는 아두를 받자마자 땅에 내던지며 소리쳤다. " 이 보잘것 없는 것아~너 때문에 하마터면 훌륭한 장수 하나를 잃을 뻔 하였구나"

 

- 네(손권) 어머님께서 돌아가실 적에 나라 안의 일은 장소에세 물어서 하고 바깥일은 주유에게 물어서 하란 말을 남기셨다.

 

- 조조의 간사한 꾀는 이 제갈양이 이미 다 알고 있습니다. 다만 한스러운 일은 우리 힘이 그에게 미치지 못해 그때그때 피하기만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 "겨우 수천의 의로운 군사로 우리 유예주께서 어떻게 조조의 거칠고 모진 백만 대군에 맞서실 수 있었겠소? 하지만 여러분은 어떠하오? 이곳 강동은 군사가 날래고 양식이 넉넉한 데다 험한 장강까지 끼고 있지 않소? 그런데도 그 주인으로 하여금 역적 앞에 무릎을 꿇고 항복하기를 권하고 있으니 이는 실로 천하의 비웃음조차 돌아볼 줄 모른다 할 수 있소이다. 거기에 비하면 우리 유예주야말로 참으로 조조를 두려워하지 않는 분이라 할 수 있소!" 제갈양이 이렇게 말하자 기세좋던 우번 또한 머쓱해서 물러났다. 항복이란 말 속에 감추어진 치욕을 끄집어낸 반격이라 대꾸하기 어려웠던 것이다.

 

- '공명은 가만히 앉아서도 우리 주공의 마음을 꿰뚫어 보았다. 실로 놀라운 안목이요, 나를 한 수 앞지르는 재주다. 그러나 그는 결국 유비의 사람, 오래잖아 반드시 우리 강동의 걱정거리가 될 것이니 우리 속네 들어와 있을 때에 죽여 버리는 게 낫겠다.' 주유의 생각은 이윽고 그렇게 돌아갔다.

 

- 주유 : 서른도 안 된 어린 손권의 책사.....

 

- 정사의 기록은 주유를 좌도둑, 정보를 우도둑으로 삼았다고 되어 있다. 좌우 도둑 사이라면 구태여 위아래를 따질 필요가 없고 따라서 앞서와  같은 일도 없었을 성싶지만 반드시 그렇지는 않다. 경우에 따라서는 주유와 어깨를 나란히 하게 되었다는 것만으로도 정보 같은 원로에게는 불쾌할 수 있기 때문이다. 중요한 것은 싸움과 항복을 두고 문관과 무장의 주장이 엇갈렸던 것처럼 지휘권에 있어서 노장층과 소장층의 알력이 있었던 것을 동오가 스스로의 조정 능력으로 해결했다는 점이리라.

 

<이문열 삼국지 5권 - 세 번 천하를 돌아봄이여 / 이문열 평역 / 민음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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