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밑줄긋기

삼국지3

3권 헝클어진 천하


- 낙양으로 돌아온 헌제는 연호를 흥평에서 건안으로 고쳤다.

나라를 새로이 일으켜 보려는 의지의 표현이었다. 하지만 그해 따라 흉년이 겹치니 그같이 정한 헌제의 뜻도 소용이 없었다.


- 천자며 대소 관원인들 먹을 게 넉넉할 리 없었다.

거기다가 백성들까지 낙양을 버리고 떠나 버리니 제실은 한층 외로웠다. 보다못한 태위 양표가 헌제에게 아뢰었다.

"전에 폐하께서 조서를 내리셨으나 이각과 곽사의 난리를 겪는 통에 띄우지 못한 게 있습니다. 

다름이 아니라 산동에 있는 조조를 불러들이는 일입니다.

그의 군사는 강하고 장수들은 용맹스러우니 그를 조정으로 불러들여 제실을 보필케 하십시오.


- 헌제의 부르심이 있기전에 몸이 달아, 원소, 원술, 공손찬 보다 먼저 입경하여 헌제를 끼고 돌까 걱정하던 조조는 눈물까지 흘린다.


- 조조의 낙양입성은 천하대세에 영향을 주는 큰 사건이었지만 뜻밖에도 드러나게 반발하는 제후는 없었다. 

처음부터 천하제패 같은 큰 야심이 없었을 뿐만 아니라 성공에 조금씩 안주해 가는 공손찬은 여전히 자기의 근거지 확보에만 몰두해 있었고, 

야심만큼 정치적인 안목이 없는 원술은 조조의 낙양성이 가지는 의미를 제대로 알지 못했다. 원소도 마찬가지였다. 


- 유비도 조조가 낙양으로 들어가 대권을 잡고 도읍을 허도로 옮긴 일을 들어 알고 있었다. 

유비는 그 일이 가진 심각한 의미를 피부로 느꼈다. 그것은 이제 곧 조조의 시대가 열리리란 예고인 동시에 자신의 오랜 후원자요, 

의지였던 공손찬과 그 동맹군 원술의 몰락을 예고하는 것이기도 했다.


- 유비와 여포 사이를 갈라놓으려는 조조의 계략에 장비는 여포를 죽이려하고 유비는 말린다.

결국 유비의 솔직함과 넓은 도량에 감복한 여포. 하지만 유비가 술먹지 말고 신신당부를 했건만 장비는 술에 취하고

사이가 좋지않은 여포가 장비를 쫓아내고 서주를 빼앗자 원술은 여포를 꼬드겨 함께 유비를 치자고 한다.

생각없는 여포는 이리저리 붙는 인물로 묘사됨.


- 손책의 남다른 팔 힘에 우미가 끼인채 질식한 것이다.

한번 나가 장수 하나는 겨드랑이로 눌러 죽이고 하나는 고함 한 번으로 놀라죽게 만드니 

이로 인해 사람들은 모두 손책을 소패왕이라 불렀다. 

힘은 산을 뽑고 기세는 세상을 덮는다던 패왕 항우에 비견할 만한 용력이었다.


- 어디를 가더라도 손책의 군사들은 한 사람도 노략질하는 법이 없을 뿐 아니라

닭과 개조차 놀라게 하지 않으매 백성들은 한결같이 기쁨으로 맞아들였다.


- 왜 꼭 조조인가? 손책이 주유에게 물었다.

물론 힘있는 제후는 여럿있습니다만 조조만이 우리가 필요한 것을 줄 수 있기 때문입니다. 

공손찬은 너무 멀고 대국을 살필 안목과 포부가 모자랍니다. 

원소또한 공손찬과 크게 나을것 없는데다가 지금 조조와 손잡고 있으니 구태여 가까운 조조를 두고 그와 화친할 까닭이 없습니다.

거기다가 조조는 천자를 끼고 있어 형님에게 당장 필요한 명분과 조정의 승인을 마음대로 하고 있지 않습니까?


- 결국 원술은 유비를 치기 위한 군사를 일으킴으로써 눈앞의 작은 이익과 조급으로 사방을 모두 적으로만 남겨 두게 된 셈이었다. 

그리고 그것은 동시에 그의 그늘에서 자란 손책의 기업을 더욱 다져 주는 셈이기도 했다. 

그가 중원에서 한 방파제 마냥 좌충우돌하는 동안 강동의 손가는 뒷날 천하를 삼분할 기틀을 갖추게 되기 때문이었다.


- 순욱이 내게 유현덕을 죽이라 하는데 그대의 뜻은 어떤가?

조조가 곽가에게 물었다.

아니 됩니다. 주공께서는 지금 의병을 일으키시어 천하백성들을 위해 포악한 무리를 없애고자 하십니다.

그렇게 하시려면 믿음과 의리를 짚어 천하의 뛰어난 인물들을 모아들이셔야 하는데, 

만약 의심과 두려움이 일면 그들은 즐겨 주공께로 모여들지 않을 것입니다. 

비록 유현덕이 영웅의 이름을 얻고 있으나 지금은 곤궁하여 주공께 의지하러 온 것입니다. 

만약 그를 죽이면 이는 어진 일을 해친 것이 되고 맙니다. 

천하의 지모있는 선비들이 그 소식을 들으면 주공께 모여들지 않을 것입니다.



- 맏아들 조앙을 대신 죽게 한 것이나 다름없는 조조의 처사에 대한 해석은 비정함과 이기에 있다. 

실제로도 조조의 전처 송씨는 그 일을 들어 평생 조조를 보지 않고 의절했다는 기록이 있다.

하지만 그 일의 해석은 비정과 이기에서만 구하고 있는 것은 아무래도 일세의 영웅 조조를 지나치게 비하시킨 감이 있다. 


- 조조가 살아가면 원수라도 갚을 수 있지만 조앙이 살아가면 원수는 커녕 제 한 몸도 보존하기 어렵다.

(하지만, 이런 다급한 상황에 이런걸 생각할 겨를이 어디 있을까? 부모자식간엔 생각없이 몸이 먼저 움직이게 마련아닌가? 

자식의 일에는 말이다. 아니면 첩의 자식까지 여기저기 주렁주렁 달아놓아서 자식 한 명에 대해 그리 애닯을 것 없다고 여긴거 아닐런지.....)


- 여포의 사자로 와서 이런 말씀을 드리기에는 쑥스럽습니다만 여포는 이리나 늑대같은 무리입니다. 

용맹은 있으나 지모가 없고, 또 거취를 정하는데 가벼워 믿을 수가 없습니다. 

승상께서는 일찍 그를 도모하는게 좋을 것입니다. 조조와 담소를 나누던 중에 진등이 가만히 권했다.


- 원술은 자기의 딸을 여포에게 시집보내서 여포를 제 손아귀에 넣으려고 했는데 

혼담도 깨지고 자기가 보낸 사자를 함부로 죽인 것도 화가 나고, 더구나 자신의 적인 조조에게 붙었다는 것에 견딜수가 없었다.


- 비록 여포에게 한차례 낭패를 당하기는 했지만, 아직도 허황된 천자의 꿈에서 헤어나지 못한 원술에게는그럴 법도 한 일이었다. 

자신의 옛 장수 손견의 아들이요. 더구나 갈데가 없이 떠도는 걸 몇 년이나 자식처럼 거두어두었던 손책이었다. 

그런 손책에게 군사를 빌려달라고 했는데 거절당함.


- 원술의 실수란 비슷한 시기에 너무도 많은 적을 만든 일이었다.

충분히 자기 사람으로 잡아 둘 수 있던 손책을 잃은 것으로부터 원래 공손찬과 함께 자기편이었던 유비를 적으로 삼은데다 

다시 여포와 원수가 되고 이번에는 조조까지 건드려 버린 것이었다.


- 일반으로 조조의 간교함과 표독스러움을 말할 때 먼저 손꼽는게 전에 여백사의 가족을 몰살한 일과 왕후를 죽인 일을 든다.


- 굳이 조조를 비난하려 든다면 그 같은 방도 외에 다른 방도가 또 있었을 때에 한해서이다.

대저 영웅이란 간교함과 흉포함과 꾀많음과 표독스러움을 다 품어야 한다던가.


- 조조에게 잡힌 여포

부드러움과 너그러움과 의의 사람으로 불리어지는 유비에게는 조조에게 여포를 죽이도록 충동한 것이 어울리지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옛사람들이 오히려 유비를 두둔하고 있는 것은 아마도 여포의 반복무쌍함과 표리부동 때문이리라. 

하지만 어떤 때는 음험하다고 느껴질 만큼 깊은 유비의 심지를 감안할 때 반드시 그것이 천하 사람과 함께하는 공분 때문은 아니었던 것 같다. 

어쩌면 유비가 두려웠던 것은 여포의 사람됨이 아니라 조조의 사람됨일 수도 있다. 

다시 말해, 여포가 살아나 조조를 배신하고 자립함으로써 자신의 앞길을 가로막는게 두려운 일이 아니라 

끝내 치밀한 조조의 손아귀를 벗어나지 못함으로써 그 용맹으로 조조의 무서운 어금니나 발톱 노릇을 하는게 두려웠는지도 모를 일이었다.


- 헌제가 세보로 가만히 헤아려 보니 유비가 자신에게 아재비 뻘이었다. 

반가운 마음을 이기지 못해 편전으로 불러들인뒤 숙질간이 보는 예를 펼치게 했다. 

촌수는 수십촌이 되고, 천한과 후한의 혈통이 바로 이어진 것도 아니어서 남과 다름없는 사이였으나 헌제가 유비를 반긴데는 까닭이 있었다.

 (조조가 대권을 농단하여 나라일이 하나도 짐을 위주로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비록 촌수는 멀다하나 이제 이런 영웅의 기상이 있는 아재비를 얻었느니 뒷날 반드시 도움을 받을 수 있으리라)뒷날까지 유비를 따라다닌 호칭 가운데 황숙(황재와 숙질간)이란 그렇게 해서 생겨난 말이었다.


- 지금 천하의 영웅이라면 오직 현덕과 여기 이 조조가 있을 뿐이오

그 말을 듣는 순간 유비는 눈앞이 아뜩했다. 

무지렁뱅이 농군 흉내를 내가면서까지 자신을 감추려 애썼건만 날카로운 조조의 눈은 어느새 그를 꿰뚫어보고 있었던 것이다.


- 원술에 대해 정사 삼국지의 저자인 진수는 이런 평을 하고 있다.

<원술은 사치하고 음란하며 방탕하여 그 끝이 좋지 못했으니 그는 모두 스스로가 불러들인 화이다.>

거기 비해 주를 단 배송지의 평은 훨씬 심하다.

<사치하고 음란하여 그 끝이 좋지 못했다.는 것만으로는 원술의 큰 악을 보여주기에 넉넉하지 못하다>


-조조는 평생 싸움터를 누볐으나 한번 창을 기대놓고 붓을 잡으면 호연한 기백과 높은 품격의 시들을 쏟아냈던 것이다. 


- 좋게 해석하자면 예형의 죽음은 지성인의 결백이 빚어 낸 비극이었다. 

그때까지 학문과 이상의 고고한 세계에 있다가 갑작스레 정치 무대로 끌려나온 그에게는 

조조를 비롯한 당시의 관료 사회가 보인 적의와 냉대가 결딜 수 없이 치욕적으로 보인 것이고 

그들에 의해 주도되는 세상도 절망적으로 비쳤을 것이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 보면 거의 정신적인 파탄이라고 할 만큼 외곬으로 죽음을 향해 달려간 그의 행위는 나약한 지성의 한계일 수도 있다.


<삼국지3권 / 이문열 / 민음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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