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밑줄긋기

삼국지 1,2

날카로운 송곳은 주머니에 넣어도 끝이 비어져 나오고

사향은 싸고 싸도 향내가 새듯 아무리 환관들이 가로막아도 한 또한 조조란 인재가 필요했던 것이다.

 

- 사실 낙양에서 당대의 명사들만을 사귀어 온 원소에게는 유비가 특별한 인물로 보일 리가 없었다

기껏해야 탁군 같은 궁벽한 곳에서 우물 안 개구리처럼 우쭐거리다가 숭어가 뛰니 망둥이도 뛴다는 식으로 나라가 어지럽자 

섣부른 공명심으로 잡병 약간을 모아나선 시골뜨기로 밖에는 보여지지 않았다

유비의 기이한 체모는 사사로이 지은 전포에 가리워 드러나지 않았고크고 환한 정신도 아직은 접할 겨를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고보니 눈부시던 원소의 용모도 새롭게 비쳤다

이목구비 어느것하나 나무랄 데 없었지만 어딘가 풀어지고 흩어져 결단성과 의지를 보여 주고 있지 못했다

처음 그가 나타났을 때 어떤 무형의 힘처럼 유비를 억누르던 눈부신 빛 같은 것도 명문 이라는 배경과 오랜 배움과 

몸에 베인 예절이 어우러져 내는 무력한 후광일 뿐이었다

분명 거목이기는 하지만 모든 것이 갖추어진 시대에나 천하를 위한 재목을 이룰 수 있는 거목이었다.

 

- 황건의 난은 부패한 한 제실에 대한 하늘의 경고였다

그러나 그 끔찍한 경고를 받고도 영제는 여전히 암우와 혼탁에서 깨어나지 못했다

그 한 예가 황건의 난에 공을 세운 이를 가리고 그에 따라 상을 베푸는 일에서 보여준 공정치 못한 처사였다

다시 환관들에게 기울어져 그들의 말을 따른 탓이다.

 

간신히 옳은 말을 하는 장균을 끌어내어 당장의 화를 면했지만각기 한짓이 있는 터라 십상시들도 마음이 편치 못했다

저희들끼리 가만히 모여 의논을 맞추어 새삼 논공행상을 추가해 불평이 있음직한 이들에게 작은 벼슬을 내리게 했다

덕분에 유비에게도 중산부 한희현의 현위 자리가 돌아왔다.

 

본래의 품성이 그러한지 정치적인 훈련 덕택인지는 알 수 없지만남자는 권력의 단맛과 아울러 그 두려움도 안다

그러나 여자는 한번 권력의 단맛을 보면 그 두려움은 곧 잊어버린다

그것이 어쩌다 권력 핵심에 접근하게 된 남자보다는 여자 쪽이 더욱 쉽게 걷잡을 수 없는 도취에 젖고 

종종 처참한 파멸로까지 가게 되는 까닭일 것이다.

 

동탁은 드디어 자신의 죽음으로 끝맺게 될 찬역의 첫발을 공공연히 내디딘 셈이다.

무릇 무란 문의 배후에서 그 성취를 옹호하고 지켜 나가는 한 위엄이요영광이요미덕이기까지 하다

그러나 문의 전면에 나서서 그 성취의 과일을 독점하고 정신의 질서를 힘의 질서로 대치시키려들면 흔히 비열이요오욕이요악이 되고 만다

동탁의 경우도 반드시는 아니지만 그 비슷한 예가 될 것이다그가 변방에서 오랑캐를 막아낼 때는 훌륭한 장수요떳떳한 신하였다

그러나 그 힘을 들어 대권을 노리자 이내 오욕과 저주의 표적이 되고 말았다

무의 힘으로 문의 성취까지를 독점하려 한 탓이며 주인을 지키기 위해 받은 칼로 그 주인의 목을 겨눈 탓이었다.

 

조조가 마지막으로 의지한 것은 의 크고 작음고 목적의 정당함이었다

천하를 위한 대의 앞에서는 사사로운 은의는 희생될 수도 있고만백성을 학정에서 구하기 위해서는 어떤 수단도 용납되어야 한다는 논리였다.

조조의 그 같은 결정은 곧 그의 정신이 전통적인 유가의 가르침과 결별하는 걸 뜻하기도 했다

그때껏 그가 힘들여 걸어온 것은 충,,,의의 길이었다하지만 그것은 태평스런 시대의 원리였고돌이킬 수 없는 혼란의 시대에는 맞지 않았다.

 

-조조가 능력만 있으면 출신이나 경력이나 세상의 평판 따위는 무시하고 사람을 쓴 것에 비해 원소는 그렇지가 못했다

원소는 언제나 인간 그 자체보다도 가문이나 직위,경력 따위등 그에게 부가된 사회적 제도적 인정을 중시했다.

 

-제후들 사이는 이내 서로 의심하고 경계하는 것으로 변하고 말았다

거기다가 차차 대의보다는 실리가 앞서게 되고명분보다는 타산이 앞서게 되니 의맹인들 제대로 유지될 리가 없었다.


-정통성과 권위를 확보하지 못한 권력의 승계자가 그걸 메우기 위해 즐겨 이용하는 방법의 하나는 앞사람의 정통성과 권위에 의지하는 방법이다.

거기서 죽은 전임자를 위해서가 아니라 산 후임자를 위해 전임자의 신화가 조작되고 업적의 과장이 일어난다.

그렇게 함으로써 그를 이은 후임자도 정통성과 권위를 획득할 수 있기 때문이다.


- 생각하면 공손찬은 유비란 용이 자란 연못이었다.

그러나 이제 그 연못은 다 커버린 유비에게는 너무 좁았다. 

그가 구만리 창천으로 솟구치기 위해서는 몸과 뜻을 더 키울 보다 깊고 넓은 바다가 필요했다. 

그걸 위해 유비는 공손찬이란 연못을 빠져나온 것이었다. 

소패는 물론 서주조차 그같은 바다일 수는 없겠지만 적어도 그곳이 그 바다로 가는 한 물줄기임에는 틀림이 없었다.


- 영웅이란 인격의 이름인가 행위의 이름인가. 

또 영웅은 시대의 산물인가, 아니면 시대가 영웅의 산물인가, 

아니면 단순한 선구자에 불과하거나 다수나 동시대인의 업적을 한 개인의 이름 아래 묶은 관념의 덩어리인가. 

이같은 논의는 오랫동안 되풀이되어 왔고, 아직도 그 결론은 보는 이의 입장에 따라 각기 다른 바 있다. 

하지만 역사를 거슬러보면 어떤 특정한 시기에 비상한 능력을 가지고 태어나서 

또한 비상한 노력으로 그 시대의 난점을 해결해 나가는 인간의 존재를 자주 발견할 수 있다. 

시대의 산물이나 단순히 동시대인의 업적을 결합한 추상적인 실체 이상의 생동하는 초인적 능력을 가진 인간을 볼 수 있게 되는 것이다.


- 여포와 마주치자 조조는 손으로 얼굴을 가리고 말에 채찍을 가해 급하게 여포를 스쳐갔다.

그런 여포는 무슨 생각이 났던지 곧 조조를 쫓아와 화극으로 조조의 투구를 치며 물었다.

"어이 조조는 어디 있는가?"

아마도 조조를 자기편 졸개로 안 모양이었다. 조조는 가슴이 철렁하는 가운데도 정신을 가다듬어 자기가 가는 반대쪽을 가리키며 대답했다.

"저 앞에 누런 말을 타고 있는 자가 그놈입니다."

조조의 천연덕스런 말에 속은 여포는 곧 조조가 가리킨 쪽으로 말을 몰아갔다.


-조조는 힘들이지 않고 복양마저 다시 되찾게 되었다.

그리고 그 일에 전씨의 공이 크다 하여 지난번 자기를 속인 죄를 깨끗이 용서했다.

북구덩이 속에서 죽을 뻔한 것을 생각하면 아직도 이가 갈릴 지경이었지만, 그것이 여포의 강압에 못 이겨 한 일이라는 점과

 뒷사람을 위한 본보기로 전씨를 살려준 것이었다.(후일을 위해 더 큰 그림을 그리고 있는 조조를 알 수 있음)


- 방금도 조조는 여러 장수와 모사들이 보고 있는 앞이라 성난 기색으로만 유비를 욕하고 있었지만, 속으로 하는 말은 달랐다.

(유비, 그대는 짐작대로 공손찬의 연못을 빠져 나왔다. 

다른 사람은 몰라도 나는 그대라 마음대로 사해를 누리게 된다면 마침내 한마리 용이 되어 구만리 창천으로 치솟을 것임을 알 고 있다. 

그래서는 안된다. 그렇게 되면 이 조조가 휘젖고 날 하늘이 없어진다. 

나는 그대를 일찌감치 없애거나 아니면 공손찬보다는 몇 배 넓은 내 호수에 가두어 둬야겠다. 

결코 마음대로 사해를 누비며 커다란 교룡으로 자라게 하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조조에게도 아직 유비를 가둬놓을만한 호수가 마련되어 있지 않았다.

간신히 마련한 한 조각 호수마저 여포란 괴물에 기습을 받아 태반이 휩쓸린 처지였다.


- 속이 풀리지 않는 장비를 유비가 부드럽게 타일렀다.

"사냥꾼도 궁하여 품안으로 날아드는 새는 잡지 않는 법이다. 

비록 여포가 시랑이같은 무리라 하나 궁하여 찾아온 걸 어찌 그냥 내 쫓을 수 있겠느냐?"

한편 서주로 쫓겨간 여포가 유비에게 받아들여져 소패에 자리잡게 되었다는 소문은 산동의 조조에게도 들어갔다.

조조는 놀랐다. 자신에게 쫓겨난 여포가 하필 유비에게로 간 것도 그랬지만 그 여포를 두말없이 받아들인 유비가 더욱 그랬다. 


<삼국지 나관중 이문열 평역 민음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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