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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여행

포루투칼 - 리스본 4일째

오늘 포루투칼 날씨는 14~21 분포에 맑음이다.(포루투칼 리스본 10월25일)

바깥 나들이 하기에 최적의 기온이다.

 

어제 대구처럼 보여서 산 생선은 대구가 맞았지만 파처럼 보여서 산 것은 파가 아닌 마늘대였다.

생선 찌게에 파를 생각하고 넣은 마늘대는 조금 뻣뻣하기는 했지만 찌게는 먹을 만했다.

 

아침 길을 나서면서 보니 초등학생들 등교하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등교하는 아이들을 보면 41년 교직 생활을 했으니 당연히 눈이 갈 수밖에 없고 이것저것 상상하게 된다.

저 아이는 학교 가기 싫은 거 억지로 가고 있는 표정이네.~~

대부분 엄마나 아빠, 할머니나 할아버지 등 어른의 손을 잡고 등교하고 있었고 간혹 상급생 누이와 함께 등교하는 동생도 보였다.

아빠와 헤어지기 싫은 아이는 한참을 아빠와 앉아 있었고 교문 앞에서는 선생님이 아이들을 맞이하고 있었다.

교문은 우리나라 학교의 교문같지가 않고 어느 큰 가정집 대문 같아서 학교라고 여겨지지 않았고 담장도 높아 안이 들여다 보이지도 않았다.

 

카페에서 에스프레소 에그타르트 를 먹었다.

리스본 온 이후 하루도 거르지 않은 기분좋은 일과가 되었다.

 

아줄레주 벽화 박물관에서 타일 벽화들을 보았다.

타일을 구운 다음 유약을 바른 다음 그림을 그린 것이란다.

도자기나 타일에 대해 아는게 없고 관심도 없었는데

타일을 그림처럼 전시하고 있어서 생각했던 것보다 타일에 흥미가 느껴졌다.

 

타일을 많이 보고 나와서 그런지 미색을 띤 사각형 돌을 깐 보도도 작품처럼 느껴졌다.

 

이어서 찾아간 마차 박물관에서는 마차 바퀴가 나무 바퀴에 철을 댄 것에서 점차 타이어로 바뀐 과정을 볼 수 있었다.

벽면에는 스크린으로 마차가 달리는 모습과 말발굽 소리등의 효과음을 들려주고 있었다.

지금 저걸 탄다면 엉덩이가 배기고 허리가 아프겠지만 당시엔 아랫사람들은 언감생심 쉽게 타지 못했을 것이다.

 

밖으로 나오니 햇살이 따스했다.

강변 벤치에서 해바라기 하자고 하니까, 이게 뜨거운 거지 따뜻한 햇볕이냐고 그늘로 가자고 우긴다.

조금 있으려니 나도 더워서 패딩도 벗고 점퍼도 벗었다. 그런 날보더니 거보라는 듯 비웃었다.

 

점심을 대구와 조개살이 드러간 음식을 먹었는데 종업원이 잔돈 10유로를 덜 주었다.

다시 계산하더니 얼굴일 벌개져서 10유로를 더 건네주는데 일부러 그런 것은 아닌것 같았다.

그의 어설픈 계산 방법을 보고 있자니 수학을 가르쳐주고 싶은 생각도 들었다.

 

강가에 있는 Maat(예술,건축,기술 박물관)에 들어갔다.

이 박물관은 내부 전시물보다 박물관의 외관이 주는 예술성에 더 높은 점수를 주어야 할 것 같았다.

건물과 주변이 아주 잘 어울리는 건물 자체가 예술품이었고, 멋진 전망대였고 날씨도 건물과 어울렸다.

 

차를 타고 고대 박물관으로 갔다.

1755년 11월 11일 갑자기 좋았던 모든 성인의 날에 리스본 전역이 흔들리고

세번에 걸쳐 9분동안 리스본 전역을 뒤흔든 지진이 일어난 당시 모습을 영상으로 재현해 보여주었다.

축일이라 모두 촛불을 켜놓은 날 일어나 화재도 발생하였다.

게다가 지진 이후 쓰나미까지 덮쳐서 아주 높은 곳을 제외하고 구조물의 80%가 쓸려나가고 인구의 30%가 숨졌다고 하였다.

그럼에도 발렘탑과 제로니모 수도원은 무너지지 않은 것이 신기한 일이라고 하였다.

 

당시 수상이었던 폰발 후작은 돈주앙 1세에게

신의 형벌이 아닌 자연현상이라고 하면서 사람들을 안심시키면서 재건의 책임을 맡게 되었다.

만일 자신의 욕심을 채우려는 목적으로 신의 형벌이라고 하면서 마녀사냥을 했다면, 얼마나 많은 희생이 따랐을 것인가.

국가와 국민을 생각한 폰발 후작이 높이 평가받는 건 당연한 일일 것이다.

폰발 후작은 리스본 재건의 아버지라 불리며 구조물을 새장처럼 만들면서 내진공법을 사용하였다.

 

우리 숙소가 한적하고 좁은 골목이지만 포루투칼 사람들이 친절하다고 해서

낯선 남자들도 마주치면 얼굴을 마주보곤 했는데 서양의 다른 나라 사람들과는 달리 수줍어하며 시선을 피하는 경우가 많았다.

다른 나라에서는 여행중 골목에서 낯선 남자들을 만나면 우리가 먼저 시선을 피했던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오늘은 박물관 산책의 날이 되었다.

 

 

 

<리스본 Maat 건물 옥상 전망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