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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여행

스페인에서 포루투칼 리스본으로

5박 6일 동안의 스페인 바르셀로나 일정을 끝내고 포루투칼 리스본으로 가는 날이다.

바르셀로나에서 2박을 하고 밀라노로 떠날 예정 이라는 중년 부부와 함께 아침 식사를 하였다.

민박을 하다보니 낯설지만 해외에서 만난 한국인이라는 점 때문에 금세 대화가 이루어진다.

 

우리가 댕댕거리는 바람에

서둘러 에두가 캐리어를 버스 정류장까지 가져다 주었다. 서비스업에 아주 잘 어울리는사람이다.

스페인광장에서 공항버스를 타고 공항에 도착하였다.

 

짐 부치는것이 자동화되어 있어 신기했다. 수속을 마치고 나니 피곤이 몰려왔다.

시위대가 공항 점거 소식도 있던터라 출발 하기전까지 마음이 놓이지 않았다.

에두에게 덕분에 잘 지내고 간다고 문자를 보냈다.

안전이 100% 보장되지 않으니 바르셀로나를 떠날 때까지 불안함은 쉽게 가시지 않고 찜찜하게 했다.

 

안전이 대한 욕구가 인간의 아주 기본중의 기본임을 새삼 깨달았다.

줄을 서서 기다리며 확실하고 안전하게 떠날 수 있다면 한 두시간 서서 기다리는 것 쯤이야 감수 할 수 있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공항에는 패딩을 입고 있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반 팔을 입고 있는 사람도 있었다.

사람은 겉모습만 다른게 아니라 속마음은 더더욱 다르다.

그 다르다는 걸 인정하는 것이 함께 살 자격이 있는 사람에게 반드시 필요한 조건이 아닐까?

이렇게 말하는 나도 때론 나와 다른 생각의 사람을 적대시하곤 하는 마음이 일곤 한다.

 

날씨를 알려주는 지역도 리스본으로 바꿨다. 이제 바르셀로나 를 떠난다.

내 자리에 잘못 앉은 손님은 내 티켓을 보자 서둘러 자기 짐을 챙겨 자기자리를 찾아 갔다.

티켓에 적힌 작은 숫자는 내 자리를 확보하게 할 큰 힘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1시 정확한 시간에 이륙하자 단체로 온 중 고등학생으로 보이는 아이들이 와~~함성을 질렀다.

소리를 지르지 않았지만 나도 속으로 환호성을 질렀다. 아주 조금 남아 있던 불안감조차 완전히 사라졌다.

그동안 네가 걱정하는 대부분의 일이 일어나지 않았던 것처럼 공항 시위도 일어나지 않았다.

하지만 바르셀로나를 탈출하는 기분이 들었다.

 

만에 하나 그런 일이 생기면 마드리드를 지나 리스본 쪽으로 가는 기차를 이용하는 길을 택할 수밖에 없을 거같다고 엊그제 말했었다

 

1시간 30여분의 비행 끝에 리스본에 도착하였다.

4개의 택시 승강장에 빈차들이 들어서면 차례대로 사람들이 승차하였다.

택시는 낚아채듯 손님을 싣고 빠르게 빠져 나갔다.

택시도 줄지어 와서 긴 줄이 순식간에 줄어들고 우리 차례가 되었다.

머리를 빡빡 민 중년의 택시기사는 오른쪽 눈밑에 칼자욱처럼 상처가 나 있었고

운전도 다소 거칠었지만 해가 쨍한 대낮이고 포루투칼 사람들은 다 순박하다고 해서 보이기만 거칠게 보일 거라고 생각하였다.

 

예약한 아파트 문앞에서 5분 여 기다렸다가 문자를 받고 오는 주인을 만났다.

완쪽 길에는 아프리카 사람들이 많고 술, 담배하는 사람들이 모여있으니 가능한 오른쪽 길로 다니란다.

1층이라 지나가는 사람들 소리가 다 들렸다.

 

세탁기돌리고 늦은 점심을 먹었다.

점심을 먹고나서 첫외출을 했다. 걸어서 바닷가 쪽으로 가 보기로 했다.

 

평지가 드물다더니만 바닷가로 가는 곧바른 길들을 제외하고는 양 옆으로 가파른 언덕길이다.

언덕길을 걷다가 안내해준 시장에 들러서 간단히 장을 보았다.

 

길을 내려가다가 수저받침이 예쁘다며 하나 사서 쓰고 가져가자고 한다.

수저받침 4.5유로짜리를 깎아달라고 하니 몇 개 살거냐고 묻는다.

달랑 한 개 살거라고 하는데도 순박한 웃음을 짓더니 깍아준다. 민망한 기분이 들었다.

 

과일 가게에서 사과를 달랑 2개만 들고 계산하려 할 때도 겨우 고것만? 하는듯 한 표정 이었지만.....

짜증이나 힐난의 표정은 아니었다 . 우리가 잃어버린 정이 묻어나는 얼굴들이었다.

포루투칼 인상이 어떠냐고 물었다.

아직은 잘 모르겠다. 시위중인 바르셀로나를 무사히 빠져 나온 것만으로도 그냥 맘이 편했다.

 

 

<포루투칼 리스본의 트렘과 툭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