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를 떠난 지 한 달이 지나간다.
이런 저런 컴퓨터 안에 보관되어 있던 교사용 자료들은 삭제되어 휴지통 속으로 들어갔다.
오랫동안 사용했던 문서틀....PPT, 학습지 틀등 잠시동안 망설이다가 삭제한다.
어떤 것들은 추억의 문서들이 될까해서 외장하드에 담아두고....
매주 만들었던 학급 신문과 주간학습 안내도 다 버릴까 하다가 하나만 살렸다.
퇴직하고 나니 어떠냐는 친구의 말에
"아직 잘 모르겠어. 한 두어달 지내봐야 할 것 같아." 그랬더니,
"그래? 그럼 너 학교 다시 가~~ㅎㅎ"
아마도 퇴직하고 나니 너~~무 좋다는 말이 즉각 나올 것으로 생각했었나보다.
친구는 덧붙여 말하기를 나는 삼일절이 너무 싫었다고 하는 것이었다.
아니? 우리가 독립을 외쳤던 그, 삼일절이 싫었다니? 친일이야?
삼일절 다음 날이면 새 학년이 시작되는 날이라 스트레스가 이만저만이 아니었다고 하니
옆에 있는 다른 친구도 맞장구를 쳤다.
아침에 종종 걸음치며 출근하는 사람들, 등교하는 아이들, 주차장을 빠르게 빠져나가는 차 등... 아침 풍경들을 보고 있으려니,
다들 바쁜 출근시간이라는 사실을, 새삼스럽게 깨닫고는 그동안 꼬박꼬박 어떻게 출근했나 싶은 생각이 들었다.
퇴직으로 얻은 자유로움이 좋았지만, 삼일절이 싫을만큼 출근에 크게 스트레스를 받지는 않았고 그럭저럭 지내 왔다는 생각이 들었다.
3월 한 달동안,
때로 그동안 보지도 않던 드라마를 한꺼번에 몰아서 보면서 이 드라마 재미있네 하기도 하고
때로 밤에 잠이 오지 않을 때는 전 같으면 내일 출근을 위해 억지 잠을 청했을텐데, 이젠 분연히 일어났다.
때로 욕심스럽게 도서관에서 빌려온 책들을 옆에 쌓아두고 뒤적이기도 하고
때로 화단에 나가서 청소 정리를 하면서 매년 봄이면 돋아나는 새싹들을 처음보는 것인양 감탄을 하기도 하고
때로 자전거를 타고 목적지 없이 마냥 타고 달리기도 했다.
때로 아들의 전화를 받고 '어? 아빠가 전화 받으시네~~'하는 소리를 듣기도 하고
때로 동네에서 만난 학생으로 부터 어느 학교로 전근 가셨어요?
'응 선생님은 이제 그만 두었어'' 아하 은퇴하셨구나~' 하는 소리를 듣기도 하고
때로 내 교실을 사용하는 선생님은 어떤 분일까? 생각하기도 하고
함께 근무했던 선생님들은 원하는 학년에 배정되었을까? 궁금해 하기도 했다.
학생으로서, 바로 바뀌어 교사로서 학교에 다닌 시간이 55년 동안이니
시종 시간에 적응되어 내 생체 리듬은 의식하든 안하든 학교 시간표에 맞춰져 있을 것이다.
이제 나만의 새로운 시간의 마디를 정해야 할 것이다.
딱딱했던 시간이 물렁물렁해졌음을, 알람을 해제하면서 느끼기도 하는 요즈음이다.
아무튼 시간은 변기물 빠져나가듯 잘도 사라져 가고 있는 중이다.
<강원도 인제 용대리 매바위 인공폭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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