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을 믿지않고 남으로부터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철저히 자기를 단속하는 것을 곳곳에서 볼 수 있었다.
그런데 의외였던 것은 그렇게 자기를 단속하는 사람들이 어딘가에는 늘 접속해 있다는 점이다.
SNS니 취향의 공동체니 하는 곳에는 모두들 중독자처럼 접속해 있었다.
-지난 2012년 대선에서 어느 예비후보가 내건 저녁이 있는 삶이라는 구호에 많은 사람들이 무릎을 쳤다.
우리들의 삶에 저녁이 없다는 것을 탄식하며 모두들 저녁이 정말 필요하다고 이야기했다. 그런데 과연
그 저녁이 돌아오면 우리는 그 시간을 감당해낼 수 있을까?
어느 활동가는 만약 저녁이 돌아오면 그 많은 시간을 견디지 못하고 다들 자기계발을 해보려고 여기저기 어학학원이나 헬스장 등을 바쁘게 오가지 않겠냐고 되물었다.
(물론 이때 또다른 활동가는 저녁이라는 의제설정 자체가 이미 취업한 사람들을 위주로 하는, 아직 취업하지 못한 사람들을 배제하는 말이라고 성토했다.)
또한 어느 여성학자는 만약 그 저녁이 가족을 위한 가족의 저녁이라면 한국의 이혼율이 급증할 수 있다고 농담 아닌 농담을 했다.
-바퀴벌레 가족 : 저녁에 자식들이 거실에 모여있다가 부모가 현관문을 열고 들어오는 소리가 나면 일제히 자기방으로 사라지는 모습을 풍자한 것
-소통을 이처럼 강조함에도 왜 민주화 이후에 소통이 어려워지고 도리어 소통이 단절되고 불통사회라는 말까지 나오게 되었을까.
여기에는 오랜 권위주의 시절을 거치면서 우리가 경험해 온 소통의 배신의 역사가 자리한다.
승자가 모든 것을 독식해왔으므르 그들 스스로 소통을 불필요하고 거추장스러운 것으로 여겨왔다.
정치인들은 선거 때처럼 필요할 때엔 소통을 강조하면서 그때가 지나면 소통을 귀찮아한다는 것을 체득한 사람들이다.
-이전에는 권력자들이 우리로 하여금 말을 못하게 했다면 이제는 그들이 우리의 말을 못들은 척하고 묵살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지금 사회 일각에서는 좌파와 우파를 가리지 않고 청년들에게 권장하고 있는 창업이나 창업가 정신에 대한 강조는 이런 점에서 기만적이다.
한마디로 말해, 방구석에 쳐박혀 있지만 말고 오디세우스처럼 다시 모험정신을 품고 세상에 나와 타자와 만나고 부딪히며 성장하라는 메시지다.
창업을 통해 돈을 번 사람들은 놀라울 만큼 재빨리 책을 내고 강의를 하며 멘토로 등극한다.
그가 겪은 경험이 무엇이든지 간에 자신을 어떤 가능성의 모델로 내세운다.
그렇게 멘토가 되어 자신의 성공을 근거로 ‘하면된다’를 외치며 모든 문제가 다 ‘너 안에 있다’라며 윽박지른다.
그런데 좀 우습지 않은가? 그렇게 모두가 자기를 따라한다면 성공할 수 있다고 주장하면서
왜 정작 그들 모두는 해 오던 일은 제쳐놓고 책을 내고 강의하면서 돈을 벌까?
그것은 흔히 그들이 말하는 ‘블루오션’이 이미 자신들이 성공한 그곳에 있는 것이 아니라
아직 그 시장에 들어서지 못했거나 탈락한, 그래서 그 시장에 들어가는 것 자체가 소원인 광범위한 ‘예비군 - 잉여’속에 있기 때문이다.
엄기호 지음/창비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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