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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여행

파리 여행 13일째 - 에펠탑, 파리자유의 여신상,몽마르뜨언덕,샤클레쾨르성당

에펠탑을 오르기 위해 일찍 나섰는데도

우리 보다 먼저 온 20여명이 줄서서 기다고 있다.

이렇게 줄을 서 있게 하지 말고 번호표라도 나줘주지...

하지만 그런 친절을 베풀지 않아도 언제나 사람은 넘쳐 나는데 그런 과외의 일을 뭐하러 하겠는가?

 

에펠탑에 오르니 그 높이를 실감 할 수 있는 것이

개선문이나 노트르담 성당 위에서 본 광경하고는 차이가 엄청난데다가

개선문과 노트르담성당이 아주 낮게 보이고 파리에서 가장 높다는 몽마르뜨 언덕도 한참을 찾아야 보일정도다.

한 할머니가 고소공포증이나 어지럼증이 있는지 눈물을 흘리며 오르기를 포기하고 내려온다.

파리를 어느 정도 둘러보고 오르니 어디가 어딘지 대강 알 수가 있어서 여행 후반부에 오르기를 잘 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려다보는데 세느강 가운데 섬처럼 길게 뻗은 길 끝에 미국에 있는 것과 똑같은 모양의 자유의 여신상이 자그마하게 보였다.

저 여신상 가는 길을 걸어보아야 파리를 다녀왔다고 한다던데?

에펠탑을 내려와 그 길을 찾아갔다. 길 입구 찾기가 만만치 않고 접근성이 떨어져서 일지 한산해서 산책길로는 그만이다.

 

길을 가는 도중에 맞은편에서 동양인 남자가 한 아이는 안고 한 아이는 걸리면서 걸어오고 있었다.

그런데 내 앞 10여 미터 쯤에 왔을 때 여자 아이가 아빠~”하고 부른다.

우리 언제가? 왜 아무 말도 안 해?  아빠 피곤해?” 연이은 아이의 우리나라 말을 듣는 순간,

내가 남자를 쳐다보았고 남자도 날 쳐다보았다.

남자의 얼굴이 고단하고 서글프게 느껴졌다. 그리고 서로 지나쳐 갔다.

 

엄마는 어디가고 두아이와 저렇게 걷고 있는 걸까?

여행자인 나의 눈에 보이는 멋진 풍광과 달리 그는 왜 쓸쓸한 걸까?

머릿속으로 잠깐 나만의 상상 속으로 빠져들었다.

가끔 현실은 상상을 뛰어넘는 경우가 얼마나 많은가.

무슨 사연이 있을까? 단순히 피곤하기만 한 것일까?

파리에서 망명생활을 했던 홍세화가 자의반타의반 택시 운전을 할 때 표정도 저랬겠지?

 

그곳을 돌아 나오면서 뮤지엄 패스 사용 기간이 다 지났으니

오늘은 우선, 분실물 센터를 찾아가 보기로 하였다. 혹시나 카메라가 있으려나?

분실물 센터는 전철에서 내려서 멀지 않은 곳에 있었다.

 

그곳에서도 어김없이 가방검색을 한다

휴대폰을 포함해서 주머니에 있는 모든 것을 꺼내 가방에 넣고 검색대를 통과하니

지켜보던 경찰이 엄지를 치켜세운다. 여기 근무하는 경찰들은 지난 번에 만난 경찰들 보다 친절했다.

 

지난 번 경찰서에서 작성한 서류를 내 보이니 프랑스 말을 아느냐고 묻는다.

못 한다고 하니 영어를 할 줄 아는 직원이 있는 곳을 가리킨다.

컴퓨터 앞에 앉아 있던 그 직원은 우리서류를 보더니 잃어버린 날짜와 장소를 클릭한다.

컴퓨터 화면을 보니 온갖 물건들이 장소별 날짜별로 정말 많이도 보관되어 있었다.

 

그러더니 가방에 카메라이외에 다른 물건이 있느냐고 묻는다.

선그라스가 있다고 하니까. 안됐다는 표정으로 그런 가방은 없다고 한다.

 

당연히 그럴 줄 알았지만 막상 확인을 하니 잃어버렸을 때의 안타까움이 다시 생겨나 씁쓸했다.

 

씁쓸한 마음을 가지고 몽마르트를 찾아갔다.

도중에 온갖 나라의 말로 사랑해라는 말이 씌여져있는 벽이 있었다. 한국말로도 세 군데나 적혀있었다.

무엇이든 사람의 관심을 끌만한 것들은 잘도 만들어낸다는 생각이 들었다.

 

몽마르트 정상에 있는 샤크레쾨르 성당 내부는 다른 성당과 달리 사진 찍는 것을 금지하고 있었다.

생드니 주교가 순교한 곳으로 천장과 벽에는 세계 제일 크다는 예수 그림과 스테인드 글래스로 장식되어 있었다.

 

몽마르트언덕을 아주 한적하고 낭만적인 장소로 생각했는데

아주 작은 공간에 그림 그려주는 사람들과 관광객들로 바글거리고 있었다.

그림을 그리는 사람들마다 다 그리는 방식이 달라서 보는 재미가 있었지만 사람들이 바글바글.

 

우린 복잡한 그곳을 벗어나서 고흐가 살던 54번지를 찾아보기로 하였다.

그런데 54번지를 어디가서 찾는담. 비탈진 돌길을 건물 번호만 보고 오르락 내리락 찾으려니 여간 힘든 게 아니었다.

더구나 순서대로 건물 번호가 매겨진 것이 아니어서 53번 건물은 찾았는데 다음에 우리가 찾는 54번은 없었다. 그 옆이 아니었다.

그냥 포기하고 내려오는데 사람들이 몇 명 모여 있는 곳이 보였다. 그곳이 54번이었다. 오호~

그런데 아쉽게도 고흐가 살았던 집이라는 표시만 벽에 있을 뿐 개방은 하지 않고 있었다.

겉모습은 멀쩡하지만 당시 이 건물 속 어딘가 창고처럼 작은 방에서 2년간 살았다고 한다. 몹시 궁핍하게....

 

경사진 돌바닥 길을 오르내리면서 걸었더니 더욱 피곤했다.

근처 찻집에서 차를 한잔 하면서 한참을 쉬다가 몽마르트르묘지를 갔다.

묘지를 대하는 이 사람들의 태도는 우리와는 많이 달랐다.

우리나라도 공원묘지라고 묘지에 공원이라는 이름을 붙여 놓았지만, 실상은 공원처럼 이용하지도 않고

주택가에서 접근성도 떨어지는 곳이 대부분인데 이들은 주택가와 그리 멀지 않았고 진짜 공원처럼 생각을 하고 있는 듯 했다.

 

묘지 위에 반쯤 기대고 누워서 해바라기 하면서 책을 읽고 있는 사람도 있었다.

우리가 생각 하는 묘지와 이들 의식 속의 묘지는 미술관, 박물관과 같은 개념으로 생각하는 듯 했다.

 

해가 어느 정도 넘어가자, 두부 장수 종을 치듯 안내원이 딸랑 딸랑 종을 흔들면서 문 닫을 시간이니 나가라는 손짓을 한다.

그 모습이 참 우스꽝스럽게 보였다. 죽은 사람도 쉴 시간이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것 같이 느껴졌다.

살아있는 우리도 발바닥이 아프도록 돌길을 걸었으니 이제 돌아가 쉴 시간이다.

 

 

 

파리에도 자유의 여신상이....

 

 

 

세느강 가운데 긴 섬하나 저 끝에 자유의 여신상이.

 

우리보다 먼저 줄을 서고 있는 사람들.....부지런도하다.

물랭루즈.

몽마르트 언덕 꼭데기 올라가는 차

 

천정을 보면 오래된 집이란 걸 알 수 있다. 찻집안 풍경

자유의 여신상 찾아가는 길...양 쪽으로 세느강이 흐르고....

 

분실물 센터....... 잃어버린 열쇠만으로도 엄청나다.

각국의 언어로 사랑해라고 쓴 벽.

 

마침내 찾은 54번지...고흐가 2년간 살던 집.

1886-1888년까지 고흐가 살았던 집

 

비운의 샹송가수 달리다의 묘

 

 

이름을 보면서 찾아갈 수 있도록 비닐에 넣은  종이를 입구에서 얻을 수 있다.

 

 

에밀졸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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