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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방원

조선 최초의 왕비지만 홀대 받은 이방원(태종)은 신덕왕후를 왕비로 인정하지 않았다. 자신의 어머니가 계신데 아버지 이성계가 당시의 풍습이지만, 일종의 현지처인 신덕왕후를 아내로 들이고 신덕왕후는 자신이 낳은 방석(의안대군)을 왕세자로 책봉했으니 말이다. 졸지에 계모의 아들인 방석에게 세자 자리를 빼앗긴 이방원은 제1차 왕자의 난 때 신덕왕후의 아들인 이복 동생 방번과 방석을 죽이고, 동복형인 방간이 자신을 치려고 하자 제2차 왕자의 난을 일으켜 결국 왕위에 오른 과격한 이방원의 성정은 신덕왕후를 사후에도 곱게 보지 않았으니..... 2009년 약수터 근처에서 소전대가 발견되어 원래의 자리인 정자각 좌측으로 옮겼다. 소전대는 조선 초기의 능인 건원릉과 태종의 헌릉, 정릉에만 있었으며 축문을 태우던 곳인데, 정조 때 작성한 『춘관통고1) .. 더보기
재활용을 해야 했던 왕릉 서초구 헌인릉길에 자리 잡은 헌인릉은 제3대 태종과 원경왕후의 능인 헌릉과 제23대 순조와 순원왕후의 인릉을 합쳐 이름 붙인 곳이다. 제3대 태종과 원경왕후의 능 태종은 이성계의 아들인 이방원으로 워낙 유명하여 말이 필요없는 인물이다. 세종에게 왕위를 물려주고 4년뒤 56세로 세상을 떠났다. 제23대 순조와 순원왕후의 능 순조의 능에 사용된 석물들은 대부분 근처 땅에 묻혀있던 세종의 옛 영릉과 장경왕후의 옛 희릉 석물을 다시 꺼내 다듬어 사용한 것이다. 나라가 어려웠던 시대라서 인지 재활용한 것일텐데, 재위시절 수렴청정에 휘둘린 허수아비 임금이어서 더욱 맘이 짠하다. 태종 때는 유달리 천재지변이 많았다. 태종이 사망하기 하루 전 지진이 일어났고, 홍수에 마소가 떠내려갔고, 태종이 만년에 애용한 정자 기둥..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