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조가 40세가 넘어 얻은 귀한 아들을
뒤주에 넣어 죽인 사건은 아무리 생각해도 이해가 되지 않는다.
왜 아들을 죽였을까?
영조 자신이 왕위에 대한 정통성에 대해 콤플렉스도 있어서였을까?
내 아들은 정말 제대로 된 왕을 만들어야겠다는 생각에 미리미리 가르치려들었을 것이다.
그러나 똑똑한 아들 사도세자에게는 그게 독이 된 게 아닐까?
사도세자는 당파싸움의 폐해를 극복하고자 노력하는 과정에서 노론의 미움을 사게 된다.
더구나 아버지인 영조의 완벽주의는 아들인 사도세자를 주눅들게 만들었다.
그리고 사도세자가 대리청정의 성격을 제대로 몰랐던 것도 화의 근본이었을 것이다.
마침내 영조와 세자와의 불화는 영조가 처소를 경희궁으로 옮기는 계기가 되고
몸이 멀어지니 마음도 멀어져서 일까? 오해는 점점 커져만 간다.
게다가 중간에 사도세자를 마뜩치 않게 생각하는 노론의 이간질도 작용했다.
무술을 좋아하는 세자의 취미는 궐 밖에서 군사를 모집하여 변란을 꾀한다는 누명을
자연스럽게 뒤집어쓰게 된다. 어쩌면 아들에 의해 자신의 지위가 위태롭다고까지 생각했을까?
이 사건을 생각하면서 북한에서 장성택을 처형한 김정은의 모습이 떠올랐다.
장성택은 어릴 적부터 보아온 조카 김정은을 어린 아이라 생각해서 가르치려 들었을것이다.
하지만 김정은 본인은 자신이 어리다는 생각을 하지 않았을테고, 그 사이에 이간질하는 무리들이 있었을 것이다.
이는 하늘에는 두 개의 태양이 존재할 수 없다는 걸 보여주는 듯하다.
정조가 순간적으로 욱하는 생각에 뒤주에 가둘 수는 있지만
며칠을 아무것도 못 먹게 하고 죽음에 이르게 한 것을 보면, 아마도 세자의 삶과 죽음보다는
300년 종사를 유지하는 것이 영조에게는 더 가치 있고 옳은 결정이라고 여긴게 아닐까?
백번 그리 생각해도 아들을 죽인 것은 이해가 되지 않는다.
사족처럼 드는 생각들은 그런 끔찍한 사도세자의 죽음을 목격한 혜경궁 홍씨는
어떻게 81세까지 장수 할 수 있었을까? 하는 생각과 내 어린 시절 기억 속의 창경궁의 모습이다.
일본이 창경궁을 창경원으로 격하 시키면서 동물원과 놀이시설을 들여놓아서
내 어린 시절의 창경궁은 단지 놀러온 사람들로 바글거리고, 동물의 냄새 가득하며, 놀이 시설을 타기 위해
길게 늘어선 인파와 벚꽃 놀이로 이름난 유원지로 밖에 몰랐다는 사실. 생각할수록 일본의 만행이 괘씸하다.
사도세자의 죽음에 대한 안타까움까지 더해서.....
창경궁을 막 들어서면 이렇게 명정전 들어가는 입구.... 몹시 추웠던 일요일
명정전에서 문정전 가는 곳
문정전 이 앞뜰에서 사도세자가 뒤주에 갇혀 죽은 장소라고 알려진 곳.
문정전 뒤에서 바라본 문정전 앞 뜰.....저기 어드메쯤에 사도세자의 한이 서려 있을 것이다.
사도세자가 태어난 곳
혜경궁 홍씨의 거처가 있었던 곳으로 사도세자의 묘를 바라보는 위치에 있었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