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카테고리 없음

마흔에 관하여

60이 넘었는데 마흔에 관하여를 읽었다.

나이가 무슨 상관이랴. 그저 사람마다 깨달음의 시기는 다를테니 하면서,

또, 나의 40대와 견주어 보기도 하면서 읽었다.

 

책 제목을 보고 30대를 훌쩍 넘은 큰 아이에게 읽어보라고 권해야지.

더구나 작가와 이름도 같으니 말이다.

하지만 아이에게 이 이야기를 하자. "아빠 아직 40되려면 멀었어요."

 

아이에게 더이상 적극적으로 권하지 않기로 한 것은 그 말 때문이 아니라.

내가 그동안 읽었던 작가의 글과는 사뭇 달랐다 

비로소 가능한 그 모든 시작들이란 부제가 붙어 있듯 작가가 40이 되어서 비로소 굴레에서 벗어난 자유로움이 느껴진다.

40 이전엔 주위 사람들이 나를 어떻게 생각하는지에 대한 눈치를 보느라 내가 하고 싶은 말,

하고 싶었던 행동을 스스로 억제해 왔는데, 그런 것에서 부터 자유로워진 자신에 대한 이야기이다.

 

- “ 그거 알아? 언니 성격이 지금은 완전 된거야 옛날엔 좀 재수가 없었어.

맨날 우리한테 조용히 해달라 글고, 혼자 공부만 하고, 우리랑 놀아주지도 않고, 완전 짜증나는 언니였어.

온몸이 가시가 덮여 있는 사람 같았다니까. 맨날 날카롭고 예민해가지고.”

작가의 동생이 작가에게 던진 말 속에 어떻게 어린 시절을 보내왔을지 짐작이 갔다.

 

그동안  작가가 남의 눈치를 보고 타인의 시선을 의식하느라 꼭꼭 숨겨 오기만 했던 열정의 마그마를 폭발시키는 것이다.

마흔을 넘으면서 여성 호르몬이 줄어든다는 사실도 영향을 끼친 것이란 생각도 들었다.

정여울의 글이 잘 들어왔던 것은 이 작가의 결이 나와 결이 같은 느낌이 그동안 들었었다.

조직생활은 싫어했지만, 함께 어울리는 삶은 그 무엇보다도 사랑했다라는 대목에서는

 

그래 맞아~ 나도 이럴 때 이랬는데.....하고 나도 동의를 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이 책을 보면서 얼굴에 콘크리이트를 깔았다는 40대의 어느 시인의 이야기가 떠올랐다.

그동안 정여울 특유의 감수성 있는 글들을 읽어오다가 갑자기 여전사로서 창과 칼을 들고 나온 작가를 보는 듯 했다.

그 시인은 이런 이야기도 했지? 아마? 우리 얼굴에 철판 깔았네~~만세 만세 만만세~~

 

작가에겐 미안한 몇가지 비유를 해보자면,

청순 가련형의 이미지만을 보여주었던 배우가 어느날 성인 멜로물에 등장하는 것처럼

전혀 다른 성향의 배역을 맡은 배우를 만난 것 같은 당황스러움 같은 느낌도 조금은 있었고,

또 얼굴없는 가수가 어느날 얼굴을 드러내었을때의 노래와는 전혀 다른 가수의 얼굴을 보았을 때의 당혹감.

글 속에서, 또는 노래속에서 '이 사람은 이럴거야' 라고 내 나름대로 미화해서 상상하던 것들이 박살나는 느낌도 있었다.

 

40이 넘으면서 작가 정여울 안의 아마조네스가 작동한 때문이겠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난 여전히 정여울의 책을 찾아 읽고 정여울의 오디오 클립도 찾아 듣게 될 것이다.

 

 

  ##################################################################################################

 

- 나는 지금이 가장 행복하다. 절대로 20대나 30대로 돌아가고 싶지않다. 그때는 영혼의 허기가 너무 심각했기 때문이다.

항상 사랑에 굶주렸고, 타인의 관심에 일희일비했고, ‘나는 재능있는 사람인가에 대한 물음이 지나쳐 스스로를 학대했다.

돌이켜보니 젊음이란 본래 그런 것이다. 마흔은 내가 처음으로 있는 그대로의 나를 사랑하기 시작한 나이다.

30대까지만 해도 나 자신을 있는 그래도 사랑해야 한다는 강박만 있었지 진심으로 꾸밈없이 나를 보듬지 못했다.

마흔 이후 나는 내 그림자를 완전히 받아들이기 시작했다. 내게는 결코 벗어날 수 없는 콤플렉스와 트라우마가 있음을,

하지만 그 그림자조차 나의 어엿한 일부이며 사랑하고 돌봐야 할 나 자신임을 알게 되었다.

그렇게 나의 마흔은 내 그림자와의 행복한 동거로 힘차게 시작되었다.

중년은 결코 새로운 것을 시작하기에 너무 늦은 시간이 아니다.

우리가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를 비로소 나 혼자만의 힘으로 결정할 수 있는 시기,

 

지혜와 용기를 갖되 저 멀리 타인의 참고문헌에서 꺼내오지 않고 나 자신에게서 바로 참고할 수 있는 시기,

그리하여 내 안에 깃든 밝음과 향기만으로도 능히 내세상을 지탱할 수 있는 뱃심이 두둑해지는 시기,

그것이 바로 찬란한 마흔이라는 시간이다.

 

- 배움의 깊이가 더해질수록, 무언가를 단지 읽어서 아는 것과 속속들이 이해하고 받아들여 깨닫는 것의 차이를 알게 된다.

 

-한번은 공식적인 회의를 앞두고 50대 중반의 k변호사가 말했다.

내 주면에는 문재인 후보 찍겠다는 사람이 한 명도 없어요. 도대체 이 높은 지지율이 어디서 나오는지 모르겠다니까요. ”

나는 어딘가 거들먹거리는 그분의 태도에 심히 충격을 받았다. 너무 큰 충격을 받은 나머지, 겁도없이 이렇게 말해버리고 말았다.

제 주변 분들은 거의 다 문재인 후보를 찍겠다고 하시던데요. 아니면 심상정 후보 찍겠다는 분들도 꽤 많고요."

 분위기는 술렁거렸다. 지금까지 한 번도 내가 그런 이야기를 꺼낸 적이 없어서였을 것이다. 나는 그 자리에서 막내였다.

   

- 그동안 진심이 아니면서도 네 알겠습니다. 고치겠습니다.”라고 대답하며

수없이 많은 반론과 질책들을 그냥 받아들이기만 했던 나 자신의 과거가 거대한 부메랑이 되어 내 얼굴을 내려 치는 것 같았다.

 

-예전에는 거절의 기준점이 나의 바깥, 즉 타인의 인정이나 외부의 시선에 있었다면, 이제는 내 안에 있다.

내가 내 삶의 운전대를 잡고 있다는 사실을 잊어버리지 않으려 애쓴다.

 

- 상대방에 대한 기대를 줄이고 관찰을 늘리자 마음의 평온이 찾아오기 시작했다.

 

-나는 수업에만 집중할 수 있는 환경을 원했지만,

학교는 나에게 학교 홍보에 적극적으로 참여해주기를 바랐고 수업 이외의 다양한 업무를 요구했다.

나는 학교를 더 나은 교육의 장으로 생각하고 싶었지만, 학교 측에서는 나를 조직생활에 적합하지 않은 사람으로 보고 있는 것 같아서 마음이 아팠다.

 1년후 재계약이 되지 않자 내 마음의 상처는 컸다.

 

- 40대가 되면 사람들은 자신의 일에서 어느 정도 자리를 잡아가고,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가에 대한 커다란 그림이 보이기시작하고, 비로소 그동안 잘못 살아온 시간들의 그림자가 보이기 시작한다.

마흔 즈음은 저마다가 지닌 성격적인 결함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조금씩 나아지기 위해 노력하는 평생의 습관을 기를 수 있는 최고의 시간이다.

 

- 마흔, ‘익숙한 나 자신과의 거리두기를 포기하지 않아야만, 또 다른 나, 새로운 나,

어쩌면 내가 오래전에 잃어버렸기에 반드시 찾아야만 하는 진정한 나 자신과 만날 수 있다.

 

-이제는 알 것 같다. 두려움을 버리고 가는 게 아니라 두려움을 안고 가는 것이 삶임을...

 

- 나는 북유럽 여행을 하면서 내가 살아온 한국 사회가 탁월함에 중독된 사회임을 아프게 깨달았다.

어렸을 때부터 우리는 어떻게든 특별해지기 위하여 기를 쓰며 살아오지 않았던가.

사람들은 겉으로는 평범한 것이 행복한 것이라고 말하면서도 마음 속으로는 나는 왜 특별하지 못한 것일까,

나는 왜 뛰어난 재능을 타고나지 못했을까 스스로에게 질문하며 멀정한 자신의 삶을 평가절하 한다.

나 또한 꼭 무언가 중요한 존재가 되어야 한다라는 강박관념을 심어주는 한국 교육이 싫었지만,

그 집단 최면에서 완전히 자유롭지 못했다.

 

- 우리 사회는 남들처럼 살아야한다는 사회화의 열망을 가르치느라 나의 내면을 돌보고 가꾸는 삶, 개성화의 중요성을 가르치지 않는다.

나는 이제 그만 사회화되고 싶다. 이제 남은 시간을 온전히 나 자신이 되는 일, 즉 개성화에 쏟아도 시간이 절대적으로 부족하기 때문이다.

 

- ‘ 한번도 쉬어본 적이 없다는 것, 그게 너의 가장 큰 문제점이야.

넌 그래서 행복해질 수가 없는 거야.’심지어 휴식의 중요성에 대한 글을 쓸 때 조차도, 나는 너무 열심히 일을 하는 기분이었다.

휴식의 의미를 생각하느라 휴식 자체를 즐길 여유가 없었던 것이다.

 

- 피타고라스는 이렇게 말한 적이 있다.

인생은 축제와 같다. 어떤 이는 축제에 참여하기 위해 오고, 어떤이는 장사를 하러 오지만, 최상의 사람들은 관객으로 온다.”

 

- 간절하게 퇴사를 원하는 사람에게 월급이 나오니 무조건 일자리를 지키라고 조언하는 사람은

어쩌면 그토록 타인의 고통에 무심한 것인지, 나는 그녀에게 아닌 건 아니라고 말하는 요기가 절실히 필요한 순긴이 있다고 이야기 했다.

“J씨가 뭐가 모자란 게 있어요? 싫으면 싫다고 이야기하고, 아니면 아니라고 이야기하고 아무리 생각해도 영 아니다 싶을 때 는 확 들이받아버려요~!”

조금씩 연습 중이에요. 어제는 다른 부서에서 저에게 옮겨 오라고 제안을 했는데, 곧 퇴사할 거라고 했더니 다들 어안이 벙벙한 표정이더라고요.

그런데 이상하게 짜릿했어요 제가 이 회사에 전혀 미련이 없다는 걸 그순간 알았거든요.

퇴사 뒤에 아무런 대책이 없는데도, 이상하게 행복해요. 지금이라도 그만둘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진짜 살 것 같아요.”

 

-조금 더 원색적으로 글을 써봐. 회색이나 아이보리색, 이런 희미한 빛깔 말고,

날것의 원색 그대로 너의 감정과 사건의 본래 질감 그대로를 써봐. 새빨갛게,새파랗게, 샛노랗게, 그렇게 글을 써봐

 

-자꾸만 잊는다. 욕망의 대체제란 없다는 것을, 그 사람을 보고 싶은 마음을 억누르고 다른 그 무엇으로 그리움을 보상받으려 하면

오히려 그리움은 더 거대한 눈사태가 되어 뒤총수를 친다는 것을.

 

- 하지만 내가 소심한 관찰자에서 점점 겁 없는 전사로 변해하고 있는 이유는

수많은 실패를 딛고도 오히려 더욱 진짜 나 자신에 가까이 다다가고 있기 때문이다.

 

- 캐나다의 한 연구에서는 불면증을 앓는 대학생들에게 일주일 동안 날마다 감사일기를 쓰도록 했는데,

이 단순한 실험만으로도 학생들의 수면 질이 개선되고 신체적 고통도 줄어들었으며, 만성적인 불안과 우울감이 개선되었다고 한다.

 

- 불완전한 삶 자체에 감사하는 애틋한 마음. 가난한 생각의 창문,

 

-몸을 쉬는 것은 물론 마음을 쉬는 것은 더더욱 불가능했던 시절,

반드시 의미있는 삶을 살아야한다는 생각 떼믄에 쉼없이 스스로를 풀가동하는 시간의 연속이었다.

 

- 마흔은 스물처럼 찬란하지는 않지만,

곰삭은 된장국처럼 구수하게 봄날의 냉이나물 무침처럼 아릿하게

우리 안에 아직 남은 순수를 끌어올리고 우리 안에 가득 차오른 행복에 대한 갈망을 부추긴다.

 

- 아리스토텔레스는 식물이 동물보다 훨씬 오래사는 이유를 늘 자신을 새롭게 함으로써 오랫동안 살아남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1새로움의 시간

2부 나다울 시간

3부 화해의 시간

4부 깊이에 눈뜨는 시간

5부 실현의 시간

 

< 마흔에 관하여 / 정여울 / 한겨레 출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