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일지

마음

해질랑 2017. 11. 11. 12:49

마음?

소설의 제목이 '마음'이야?

마치 수필집 같은 제목에나 어울릴 법하다.

 

일본의 세익스피어라 불리우는 나쓰메 소세키.

이름이야 들어보았지만 그의 소설을 제대로 읽은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읽으면서 소설이 아니라 작가의 솔직한 자기 고백처럼 들렸다.

그만큼 읽는 내내 실감이 났기 때문이다.

 

이야기의 줄거리는 단조롭다.

소설에 걸맞은 이러저러한 큰 사건이 많이 벌어지지도 않는다.

외형적으로 그렇다는 이야기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글을 읽는 내내 긴장을 늦출 수가 없게 만든다.

글을 쓴 이 작가의 힘이 대단하다고 밖에 달리 표현할 수가 없다.

전쟁이나 엄청난 사건이 일어나지 않는다고 해서

우리 마음 속 에서도 항상 평안한 것은 아니다.

 

마음 속 에서는 외부의 평안함과는 달리 질풍노도가 휘몰아치고 광풍이 불고 천지가 개벽하기도 한다.

작가는 그런 마음을 아주 섬세하게 표현하고 있다.

 

글의 구성은 크게 세부분으로 나뉘어져 있다.

선생님과 나, 부모님과 나, 선생님과 유서

 

나는 우연한 기회에 선생님과 만나고 그와 대화를 나누면서 알 수 없는 이유로 끌리게 된다.

코드가 맞는다는 표현이 알맞은 그런 사이인 것이다.

하지만 선생님이 가지고 있는 염세적이고, 세상과 사람들을 냉소적으로 보는 선생님을 이해하기 어려웠다.

아버지의 병환으로 선생님과 떨어져 고향으로 오는데 선생님과 달리

부모님의 속물적인 생각과 사회에 발을 내 딛게 된, 자신의 미래에 대한 생각으로 마음이 복잡하다.

 

선생님이 세상과 사람들과 담을 쌓은 듯 지내게 된 배경에는 어떤 사연이 숨어 있을까?

그 궁금증은 고향에 배달되어 온 선생님의 편지에 나타나 있다.

 

인간의 이중성, 어쩌면 사람들은 모두 그런 양면성을 가지고 살지 않을까?

그럼에도 선생님과 선생님의 친구 K는 그런 이중성에 괴로워하다. 끝내 자살을 한다.

여린 마음을 가지고 있어 너무 유약하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지만,

자신이 스스로 지키고자 한 가치가 자신의 내면에서 충돌을 일으키면서 극복하지 못한다.

아마도 결벽증이 자살에 이르게 한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하루키의 소설 상실의 시대에서 자살이 떠올랐다.

 

선생님과 K의 한 여자를 둘러싼 삼각관계.

K가 그 여자에 관심이 있음을 선생님께 고백했을 당시에 선생님의 마음이 어떠했는지 들어보자.

 

그때는 두려움에 몸이 굳었다고 할까, 아니면 괴로움에 몸이 굳었다고 할까.

어쨌든 내 몸은 단단한 덩어리로 변해버렸지. 머리에서 발끝까지 순식간에 돌이나 쇠처럼 굳어버린 것이네.

숨쉬기조차 힘들 만큼 몸이 굳어버렸지. 다행히도 그런 상태는 오래가지 않았네. 나는 본래의 모습으로 되돌아왔네.

그리고 곧 뭔가 잘못됐다고 생각했네. 내가 한반 늦었다는 생각이 들었지.

하지만 앞으로 어떻게 해야겠다는 생각은 하지 못했네. 그럴만한 여유가 없었던 거겠지.

나는 겨드랑이 밑으로 흐르는 끈적한 땀이 셔츠에 스며들고 있어도 꾹 참고 움직이지않았네.

그러는 동안에도 K는 그 무거운 입으로 조금씩 자신의 마음을 털어놓고 있었지, 나는 괴로워서 견딜 수가 없었네.

아마도 그 괴로움은 대형 광고판에 새겨진 글자처럼 내 얼굴에 확연하게 드러났을 거라고 생각하네.

K도 충분히 눈치 챌 수 있었겠지만, 그는 자신의 고백에 집중하느라 내 표정을 살필 겨를이 없었을 걸세.

그는 처음부터 끝까지 똑같은 어조로 일관하고 있었네. 묵직하고 느릿느릿한 만큼 웬만해서는 흔들리지 않을 것 같은 느낌이었네.

나는 그의 고백을 들으면서도 한편으로 내가 내가 어떻게 해야 할지 정신없이 생각하느라 세세한 내용까지 귀담아 들을 수는 없었네.

 

선생님의 질투심으로 인해 K는 자살에 이른다.

천황의 장례식 때 자살한 육군 대장 노키 마레스키의 죽음과 선생님, 그리고 K의 죽음을 동일선상에 놓을 수는 없을 것 같다.

그러면서도

노키의 죽음처럼, K의 죽음에 이어 선생님의 죽음도 어쩌면 순사로 여길 수도 있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죽어서 K에게 사과하러 갔을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이 작가 100년 전 태어난 사람인데,

요즘 작가가 쓴 소설이라고 해도 전혀 어색하지 않다. 그만큼 잘 쓴 고전이라는 반증이다.

 

그런데 100년 전에도 한 고민을 요즘 사람들도 하고 있다는 사실에 생각이 미치자 엉뚱한 생각이 들었다.

과학 기술은 100년전보다 상상을 뛰어넘을 정도로 발달했는데

우리 <마음>을 다루는 인간의 능력은 여전히 답보 상태다.

인간이 어찌하지 못하는 그 마음에 담겨 있는 것들을 잘 표현한 소설이다.

 

 

 

-남자로서의 나는 언제나 이성에 대한 본능으로 여자를 동경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것은 봄날의 구름을 그리워하는 것 같은 막연한 상상에 불과했다.

 

-사모님은 처음에 선생님이 세상을 염세적으로 바라보기 때문에 자신까지 싫어하는 거라고 단언했다.

그렇게 단언하면서도 그것을 순순히 받아들이지는 않았다. 속내를 들어보니 오히려 그 반대로 생각하고 있었다.

선생님이 자신을 싫어하다가 결국은 세상까지 싫어하게 되었다고 추측하고 있었다.

 

-선생님은 왜 책에 흥미를 잃으신 겁니까?

딱히 이렇다 할 이유는 없는데, 말하자면 아무리 책을 읽어도 그만큼 훌륭해지는 건 아니라고 생각했기 때문이겠지.

그리고....다른 이유가 또 있습니까?

뭐 별건 아닌데, 전에는 사람들과 얘기하다가 뭔가 질문을 받았을 때 제대로 대답을 못하면 왠지 부끄럽고 창피했지.

근데 요즘에는 모른다는 게 그다지 창피하게 여겨지지 않더군.

그때문인지 억지로라도 책을 읽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지 않더라고. 쉽게 말하면 이제 늙었다는 거지.

 

-이 세상에 나쁜 부류의 인간이 따로 있다고 생각하나?

그렇게 처음부터 악인으로 정해진 사람은 아무도 없네.

평소에는 다들 착한 사람들이지. 적어도 다들 평범한 사람들이야.

그런데 그런 사람들이 막상 다급해지면 순식간에 악인으로 변하니까 무서운 거야.

그래서 방심할 수 없는 걸세

 

-편지를 쓸 때의 마음과 다 쓰고 난 뒤의 마음은 달랐다.

나는 기차 안에서 그런 모순에 대해 생각했다.

그러다 보니 나 자신이 쉽게 마음이 변하는 경박한 존재라는 생각이 들었다. 기분이 씁쓸했다.

 

-비통한 소식이 바람처럼 시골 구석까지 불어와, 잠든 것 같은 초목을 한창 흔들고 있을 즈음

뜻밖에도 선생님으로부터 한 통의 전보가 날아들었다.

양복을 입은 사람만 봐도 개가 짖어대는 시골에서는 한통의 전보도 큰 사건이었다.

 

-나는 돈 문제에 관해서는 사람을 믿지 못했지만, 사랑에 관해서는 아직 사람을 의심하지 않았네.

그러니까 남이 보기에도 이상하고 나 자신이 생각해봐도 모순된 것이 내 가슴속에서는 예사로이 양립하고 있었다네.

 

-산에서 붙잡힌 짐승이 우리 안에서 서로를 의지한 채 바깥을 경계하는 것처럼

우리 두 사람은 도쿄와 도쿄 사람들을 두려워했네.

 

-일반인들은 학생들의 생활이나 학교 규칙에 대해 놀라울 만큼 무지하다네.

우리에게는 당연한 일이 바깥에서는 전혀 통하지 않을 때도 있지.

또한 우리는 학교를 중심으로 생활하면서 교내에서 일어난 일은

전부 바깥 세상으로 전해 질 거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네.

 

-옛 고승이나 성인의 전기를 즐겨 있는 그는 정신과 육체를 분리해서 생각하곤 했네.

육체에 채찍질을 가하면 영혼은 더 빛날 거라고 생각했는지도 모르지.

 

-그런 상황에서 근사한 시나 노래를 읊어댈 수는 없지 않은가.

나는 그저 야만인처럼 소리만 질러댔지.

 

-이미 그 출발점부터 반항적이었기 때문에 나 자신을 반성할 여유가 없었지.

나는 내 주장을 굽히지 않았네.

 

-나는 지금도 결코 그때의 내 질투심을 부정할 생각은 없네.

여러 번 말했듯이 사랑의 이면에는 그런 감정이 존재한다는 것을 분명히 인식하고 있었으니까.

게다가 그런 감정은 남이 보기에 아주 사소한 일에까지 고개를 들곤 했으니까.

 

과묵한 그의 입에서 아가씨에 대한 애틋한 사랑 고백이 나왔을 때의 내 모습을 상상해보게.

그의 마법의 지팡이가 나를 단번에 돌덩어리로 만들어버린 것 같았네.

나는 입을 우물거리기도 어려울 정도였네.

 

-나는 당연히 K에게 내 마음을 밝혀야 한다고 생각했네.

하지만 그러기에는 이미 때가 늦었다는 생각도 들었네.

왜 아까 그의 말을 가로막고 내가 먼저 선수를 치지 못했는지 후회막급이었네.

그가 예기를 끝냈을 때라도 곧바로 내 마음을 밝혔더라면 좋았을 텐데. 하는 생각도 들었지.

그가 다 고백하고 난 마당에 내가 다시 똑같은 얘기를 꺼내는 것은 아무리 생각해도 이상한 일이었네.

나는 그 부자연스러운 상황을 극복할 자신이 없었지. 내 머리는 후회와 한탄으로 어지러이 흔들리고 있었네.

 

-나는 마치 무술 시합을 벌이는 사람처럼 그를 주의 깊게 살폈네.

나는 나의 눈, 나의 마음, 나의 몸과 같은 내 안의 모든 것에 한치의 빈틈도 보이지 않으며 그를 상대하고 있었네.

멋모르는 그는 빈틈투성이라기보다는 활짝 열어놓았다는 표현이 어울릴 정도로 무방비 상태였네.

나는 그가 간직하고 있던 요새의 지도를 넘겨 받아, 그의 앞에서 찬찬히 살펴볼 수 있게 되었지.

 

-결국 내 양심은 밖으로 나오지 못하고 내 안에서 머물고 말았지.

그리고 슬프게도 영원히 밖으로 나오지 못했네.

 

-나는 정직한 길을 걷는답시고 잘못된 길로 발을 내디딘 어리석은 인간이었네.

교활한 인간이라고도 할 수 있지. 그리고 지금까지 그런 사실을 아는 것은 오직 하늘과 나 자신뿐이었네.

어쨌든 나는 다시 정직한 길로 나아가려면 잘못된 길로 들어섰던 사실을

주변 사람들에게 알려야 하는 곤경에 빠진 걸세.

나는 어떻게든 내 잘못을 숨기고 싶었네.

그러면서도 어떻게든 앞으로 나아가야 했지. 나는 그사이에 끼어 옴짝달싹 못하고 있었네.

 

-숙부에게 속았을 당시 내 마음은 타인에 대한 불신으로 가득했네.

그러면서도 나 자신만은 정직하다는 생각을 갖고 있었지.

세상이야 어찌 되었든 나만은 훌륭한 인간이라는 믿음이 마음속 어딘가에 있었던 걸세.

그 믿음이 K의 일로 맥없이 무너져버리면서 나 역시 숙부와 똑같은 부류의 인간임을 깨닫고나니,

갑자기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네.

타인을 불신했던 나는 이제 자신까지 불신하게 되어 아무것도 할 수 없게 되었네.

 

-우여곡절도 없이 단조롭게 살아가는 것 같은 나의 내면에서는 항상 그런 고통스러운 싸움이 벌어지고 있었다는 것을 알아주게.

 

-나의 마음을 무섭게 옥죄어오는 그 불가사의 한 힘은

나의 모든 활동을 가로 막으면서도 죽음의 길만은 자유롭게 갈 수 있도록 터 놓았네.

 

 

마음 - 나쓰메 소세키   <마음 / 나쓰메 소세키/이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