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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

거제 - 매미성 아침에 일어나보니 점점 비구름이 두꺼워지고 일기예보는 강한 비를 예고 하고 있었다. 아침식사로 샌드위치와 음료가 사각형 바구니에 담겨 배달이 되었다. 체크아웃을 하며 매미성이 어떠냐고 물었더니, 거긴 꼭 가보셔야 된다고 하였다. 우린 비도 오고 해서 빨리 거제를 떠나려고 했는데 난 보지 못했는데 말하는 아가씨의 눈빛이 진심을 담아 반짝거렸다며 안가면 후회할 것 같다고 하였다. 처음 매미성 이야기를 들었을땐, 곤충 매미인줄 알았다. 그랬더니 '매미'라는 이름이 붙은 태풍이 불어왔을 때 우리나라에 많은 피해를 주었는데 이곳 거제에도 피해가 컸다고 한다. 그래서 매미를 이기고 극복하겠다는 뜻에서 한 사람이 이렇게 성을 쌓기 시작했고 지금도 여전히 한쪽에선 성을 쌓고 있는 진행형 성이다. 스페인 바르셀로나에 있.. 더보기
거제 - 바람의 언덕 리조트에 짐을 풀고 비가 쏟아지기 전에 가까운 바람의 언덕을 갔다오기로...... 오래전 아이들이 학교 다닐 때 함께 온 기억이 났고 남해까지 왔으니 가자고 한 것이다. 풍차의 날개가 돌아갔었나? 궁금했는데 돌아가고 있었고, 전과 다름없는 모습이 좋았다. 주변에 이런저런 인공시설이 많을까봐 걱정을 했는데..... 남해안 쪽이 여러모로 좋기는 한데, 길이 꼬불꼬불 오르락내리락 하는게 맘에 안든단다. 풍차옆에 앉더니만 혼자 내려갔다 오란다. 신선대도 혼자 내려갔다 올라왔다. 더보기
남해에서 거제로(고성송학동고분) 거제로 가는 중에 고성의 고분군이 있다고 해서 찾아갔다. 고분의 사잇길을 걸으면 온라인으로는 느낄 수 없는 이런 공간감이 참 좋다. 누워계시는 어떤 오래전 우리 조상에 대한 생각보다 우선하는 것이다. "계속 올라갈거면 난 차에 있을게~" 그러면서 내려갔고 난 모든 길을 다 걸었다. 천천히...... 서울에서 출발할 때 하동과 남해 숙박을 예약만 하고 그 다음은 지내면서 결정하기로 했다. 남해에서 오래전에 아이들과 함께 왔던 거제의 바람의 언덕을 가보자고 해서 숙박지를 보니 이 리조트에는 딱 방 하나만이 남아 있고 그것도 하루뿐이란다. 더보기
남해 - 해오름 예술촌 폐교를 이용해서 만든 해오름 예술촌은 바다가 보이는 언덕 위에 자리잡고 있었다. 아이들의 정서상 아주 좋은 곳이라 생각되는데 학생들이 없으니 어쩌랴. 실내외에 많은 미술품, 골동품들이 있었고 실내의 오래된 물건들은 마치 유럽의 세컨샵 물건들을 보는 듯했다. 입장료를 내고 들어서니 관리하는 분이 부랴부랴 전등을 밝히셨다. 해오름 예술촌 입장료는 5000원 더보기
남해 - 독일 마을 박정희 대통령 시절 독일에 광부나 간호사들이 간 것이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우리나라 경제에 큰 기여를 했다는 걸 알게 되었다. 당시 미국 케네디 대통령은 우리의 차관 요청을 거부했는데, 독일에서 광부와 간호사 인력을 파견한다는 조건으로 차관을 제공했다고 한다. 그 차관과 광부와 간호사가 벌어들인 외화는 우리 경제발전에 큰 밑거름이 되었다고 한다. 마치 기력을 거의 잃어가는 사람에게 링거를 맞은 것에 비할 수 있으려나? 서독으로 간 광부들은 500명이었는데 월급은 600마르크로 우리나라 직장인 월급의 10배 가량 되는 것이었다고 한다. 독일마을을 나와서 남해에 와서는 멸치쌈밥을 먹어봐야 한다고 해서 먹으러 갔다. 유명 맛집이라서 그런지 사람들이 줄을 서서 기다리고 있었고, 들어가니 빈자리 없이 꽉 들.. 더보기
남해 - 원예 예술촌 독일 마을 앞에 있는 원예예술촌. 원예 전문가 20명이 개별로 가꾼 정원을 살면서 가꾼 곳으로 직접 사는 사람도 있을 것이고 세컨 하우스격으로 사용하고 있는 사람도 있을 것 같다. 각자 좋아하는 정원 가꾸는 일을 하면서 수익도 얻는 방법이라 생각되었다. 손바닥 정원 연구회 라는 것도 있네~~ㅎ 더보기
남해 - 바람흔적 미술관 카페 옥상 위로 올라가니 주변 풍광이 한 눈에 들어왔다. 말 그대로 바람도 불지 않고 바람흔적만이 남아 있는 듯 고요하고 교교하다. 서울 근교 어디쯤 위치하고 있었다면 이 카페에도 꽤 많은 사람들이 삼삼오오 모여있을텐데....... 바람마저 떠나가 버렸다. 더보기
남해 - 폐교에서 우연히 폐교가 눈에 띄어 들어갔다. 충효, 노력, 독서는 마음의 양식..... 등의 글들에서 오래전 학교에 많이 걸려 있곤 하던 단어들이다. 더구나 충효라고 씌어 있는 곳에는 세운 연도가 표시되어 있었는데 1978년이었다. "여기 좀 봐~~1978년이야~" 1978년은 내가 교편을 잡은 첫해여서 연도를 보자마자 기억이 소환되었다.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