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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여행

오키나와 13일차 (일몰)

나고시청

 

 창문을 열어보니 길에 비가 많이 내린 흔적이 있고 여전히 빗방울이 떨어지고 있었다.

오늘은 전부터 예고된 호텔 엘리베이터 점검하는 날이라 오전 9시부터 오후 4시까지는 엘리베이터를 사용할 수 없다.

가장 높은 7층에 자리한 우린 7층에서부터 오르내려야 한다.

가능한 오르내릴 일을 만들지 말자고 이야기 했는데 비가 내리는 것이다.

종일 비가 온다면 종일 뒹굴거리며 게으름을 떨기로 했는데

11경 비가 개어 우린 우산과 도시락을 싸들고 계단을 내려가 바다로 나갔다.

엘리베이터 점검이 끝나는 오후 4시까지 바닷가에서 놀기로 했다.

점심도 먹고 앉아서 바다를 보며 노닥거리다가 일어났는데 뭔가 느낌이 이상했다.

바지가 젖어 있었던 것이다. 내 뒷모습을 보더니 킬킬 거리며 웃는다.

완전 오줌 싼 것 같다며 사진을 찍어보여주는데 어린 아이가 바지에 실례한 것과 같은 모양으로 젖어 있었다.

적당히 손수건으로 물기를 찍어내고 걷다보니 찝찝함이 사라졌다.

 

가는 길에 시청 옥상에 올라갔다.

올라가는 길에 휴식을 취하는 시청 직원에게 시청 건물이 왜 이런 모양으로 생겼는지 궁금하다고 물었다.

3~4명의 직원은 잠시 기다리라하고는 안에 들어가 한 사람을 모시고 나왔다.

열어놓은 파파고 앱에 일본어로 열심히 설명을 해주었다. 공모에 당선된 작품이라고 하였다.

지금은 흐려서 볼 수 없지만 햇빛이 받는 방향과 그림자가 생기는 모양등을 고려하여 지어졌단다.

 

돌아오니 엘리베이터는 운행을 하고 있었다. 휴대폰을 열고 이런저런 알림을 확인 하였다.

가스 검침을 해서 알려달라는 연락이 온 것은 국내에 있어도 오는 연락이니 그러려니 했다.

아파트 관리 사무소에서도 전화가 왔다.

지난번 영국 여행 때는 우리집에서 누수가 된 거 같다는 전화가 왔었는데 이번에도 또 전화가 왔다.

이렇게 멀리 왔을때 오는 연락은 별로 좋은 소식이 아닐 경우가 많다. 지인을 통해 알아보기로 했다.

아내의 친구 어머니가 돌아가셨다는 연락도 있었고, 반면에 반가운 소식도 있었다.

작년에 딸에게 주었던 세뱃돈을 잃어버렸다고 생각했는데 무려 일년도 더 지나서 찾았단다.

서랍 뒤로 넘어간 세뱃돈 봉투 사진을 신난다며 찍어 보냈다.

좋건 싫건 멀리 있어도 길고 긴 끈이 연결되어 있어 떠나온 곳의 소식을 전해준다.

 

 

 

 

소라게

 

 

 

나도 저 사람처럼 가서 서 있을테니까 사진 찍어줘~

 

 

아침에는 비가 내렸고 내내 구름이 많았지만 일몰시각이 되자 서편 하늘에 아주 조금 구름이 문을 열어주었다.

구름에서 해가 빠져 나오자마자 바다가 날름 삼켜 버렸다. 그리곤 아무일도 없었다는 듯 하늘과 바다는 조용하다.

하늘과 바다가 무언의 약속을 했음에 틀림없다. 우리가 모르는 모종의 거래가 있었을 것이다. 음흉한 거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