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래전 내가 출근을 해서 교무실에 들어서보니,
여자 교감 선생님께서 당번 아이들과 교무실 청소를 하고 계셨다.
출근부에 싸인을 하고 교무실을 나와 교실로 올라가는 중에 뒤에서 올라오는 선생님들 중에
한 여선생님의 작은 소리가 들렸다.
"나 저 교감 선생님 댁 가봤는데 별로 깨끗하지 않았어~ㅋㅋㅋ"
교실로 가면서 잠시 교감 선생님의 집이 지저분한 것과 교무실 청소하는 것과의 관계를 이리저리 생각해 보았다.
한가지 그 선생님이 교감 선생님을 별로 좋게 보지 않는 사실은 분명하다는 생각을 하였다.
# 더 오래 전에는 소피스트라는 궤변론자들이 있었다.
그들은 바늘 위에 천사가 몇 명이나 올라갈 수 있는지에 대해 열띤 토론을 벌였다.
결론은 당연히 없겠지만, 어떤 방법으로 상대방을 말로 제압하는 기술을 터득하는 데는 배울 점이 있었을 것이다.
# 어느 마을 어귀에 쓰레기가 한 무더기 놓여 있었다.
마을 사람들 중에는 그건 쓰레기가 아니라 설치 미술 작품 이라고 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치워야 할 쓰레기다, 아니다로 한 동안 논란이 있었지만, 쓰레기라고 하는 사람들이 조금 더 많았다.
한 남자가 나서서 빗자루를 들고 치우려고 하자, 쓰레기가 아니라고 한 사람들 중에 저 남자 집, 깨끗하지 않다고 소리를 질렀다. 그러자 사람들이 우루루 몰려가 그 남자의 집을 담 넘어 들여다보기 시작했다.
어떤 사람은 그 집 딸 아이 방이 특히 지저분하다는 이야기를 들었다고 하자.
그 집을 가정방문한 담임 선생님을 찾아가 실제 방이 어땠는지 물었다.
그 선생님은 처음엔 지저분하다고 했다가 나중에
다른 아이집 가정방문 갔을 때와 착각했다고 횡설수설 하는 바람에 사람들의 비난을 받았다.
어떤 사람들은 깨끗하다고 하자, 반대쪽에서 그건 엄마, 아빠가 대신 치워주었다고 입에 거품을 물기 시작해서
온 마을이 그남자의 집구석 때문에 시끄러웠다.
그 남자는 쓰레기(혹은 작품) 치우기를 포기하기에 이르렀다.
한 여자가 대신 나타났다.
이젠 마을 사람들은 마을 어귀의 쓰레기 더미, 혹은 예술작품에는 관심이 없어졌다.
온통 그 여자네 집이 얼마나 깨끗한지를 따지기 시작했고, 마침내 그 여자의 아들 방이 좀 더럽다는 걸 보았다는 사람을 인터뷰하는 방송이 있는가하면 그 여자의 아들 방이 깨끗한 걸 보았다는 사람을 인터뷰하는 방송이 갈렸다.
온 마을이 그여자의 집구석 이야기로 정신이 없었고, 마을 사람들은 마을 어귀를 지나면서 여전히 냄새가 난다며 코를 막고 가는 사람과 그게 홍어삭힌 냄새처럼 좋지 아니한가 하면서 형태뿐 아니라 냄새까지 예술로 승화시킨, 현대 예술작품을 못 알아본다고 핀잔을 하고 있었고, 논란 속에 여전히 그대로 있었다.
# 고백하자면, 실은 내가 그 마을 사람이고 홍어를 좋아하지 않지만 예술작품인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우리 마을 사람이라는 걸 밝히기는 쉽지가 않았음에도 용기를 내어 밝힌다.
우리 마을에선 내가 어느 쪽편에 서지 않고 어물쩍 중간에 서 있으면 양쪽으로 부터 회색분자라고 욕을 먹기 때문이다. 중간에서 어정쩡하게 서 있는 걸 그 마을 사람들은 용서하지 않는다. 빨리 어느 쪽으로 서라고 분명하게 밝히라고 하기 때문이다. 내가 그 마을 사람이란 걸 비밀로 해주었으면 좋겠다.
문제는 지금 우리 마을에 역병이 돌고, 홍수로 아직 복구가 안되어 걱정이 태산인 이재민들이 많은데도 사람들은 그 여자의 아들방에 뭐가 있었느니, 불시에 방문해서 아이의 청결상태를 봐야 하는데 엄마 찬스를 써서 담임 선생님의 방문을 미리 전화로 알려주었느니, 누가 알려주었는지 언제 전화했는지 통화기록을 조회해 봐야 한다며 아직도 시끌시끌하다.
덕분에 우리 마을엔 좋은 점도 생겼다.
각 집 어른들은 집에가서 아들, 딸들을 갈구고 다그치며
너희들 방 깨끗이 하라고 닥달하기 시작해 모든 집안이 말끔해졌다는 사실이다.
수신제가 치국 평천하를 새삼 강조하여, 자기 집이 깨끗하지 않으면 밖에서 빗자루를 못 든다고 가르치고 있고
그건 거역할 수 없는 절대 명제가 되어버린 듯하다.
# 그렇게 왈가왈부 떠드는 사람들 중에 목소리 큰 대부분의 사람들은 다 우리 마을 사람들이 십시일반 회비를 모아 마을 건설에 앞장 서라고 임금을 주는 사람들이다. 지난번에 광장에서 시끄럽고 자극적인 소리로 떠들던 사람들이 우수수~~ 떨어진 걸 보고도, 아직 정신을 못 차린 것 같다. 더욱 그런 사람들을 보고도 역병퇴치와 수해복구를 하라고 하거나, 일하지 않으면 임금을 삭감하겠다고 하기는 커녕 덩달아 같이 떠드는데 끼어드는 사람들을 보면 안타까울 따름이다.
이웃 마을에서 우리 마을 사람들이 그 남자의 집에서 그 여자의 집으로 우루루~~ 몰려 다니는 걸 보고는 마치 들쥐떼 같다고 약을 올리는 걸 듣고 나니 더 짜증이 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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