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이 선생이다.>
-불의를 불의라고 말하는 것이 금지된 시대에 사람들은 분노를 내장에 쌓아두고 살았다.
전두환의 시대가 혹독했다 하나 사람들을 한데 묶는 의기가 벌써 솟아오르고 있었다.
유신시대의 젊은이들은 자기 안의 무력한 분노 때문에 더욱 불행했다.
그래서 나는 요즘 박정희를 가장 훌륭한 대통령으로 존경한다는 말을 들으면 저 우체국 창구를 뛰어넘을 때와 같은 충동을 다시 느낀다. 학생들의 입장에서라면 한때의 압제와 불의는 세월의 강 저 편으로 물러나 더 이상 두려울 것이 없으니, 그렇게 이루어졌다는 경제적 성과를 두 손으로 거머쥐기만 하면 그만일 것이다. 과거는 바로 그렇게 착취당한다.
어떤 사람에게는 눈앞의 보자기만한 시간이 현재이지만, 어떤 사람에게는 조선시대에 노비들이 당했던 고통도 현재다. 미학적이건 정치적이건 한 사람이 지닌 감수성의 질은 그 사람의 현재가 얼마나 두터우냐에 따라 가름될 것만 같다.
-몽유도원도를 보기 위해 줄을 서서 기다리던 두 시간 내지 여섯 시간과 그림 앞에서 보낸 2분을 견주며 후회하는 사람도 없었다. 통로를 빠져나와 다른 전시품 앞으로 걸어가는 관람객들의 말을 엿들어보면 낡은 그림 한 점을 보기 위해 줄을 서서 기다렸던 그 긴 시간을 스스로 대견하게들 여기고 있었다.
그래서 몽유도원도의 관람은 일종의 순례 행렬이 되었다.
사람들은 반드시 몽유도원도가 아니라 해도 위대한 어떤 것에 존경을 바치려 했으며, 이 삶보다 더 나은 삶이 있다고 믿고 싶어했다. 저마다 자기들이 서 있는 자리보다 조금 앞선 자리에 특별하게 가치 있는 어떤 것이 있기를 바랐고, 자신의 끈기로 그것을 증명했다.
특별한 것은 사실 그 끈기의 시간이었다. 그 시간은 두텁고 불투명한 일상과 비루한 삶의 시간을 헤치고 저마다의 믿음으로 만들어낸 일종의 전리품이었기 때문이다. 아흐레 동안 국립중앙박물관의 광장에 구절양장을 그린 긴 행렬은 이 삶을 다른 삶과 연결시키려는 사람들의 끈질긴 시위였다.
-용산 참사를 해결할 수 있고, 해야 할 사람들은 지금 무엇을 기대하고 있을까.
이 참사가 잊히기를 기대하는 것일까. 주검이 땅에 묻히고, 애통해하는 사람들이 제풀에 지치고, 릴레이를 하는 사람들의 힘이 바닥나고, 그래서 갑자기 국가의 품격이 높아지기를 기대하는 것일까. 살라는 대로 살지 않고 옳고 그름을 따져봤자. 결국은 ‘저만 손해’라는 것을 만천하에 똑똑히 보여주려는 것일까.
그러나 정작 비극은 그 다음에 올 것이다. “마치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죽음도 시신도 슬픔도 전혀 없었던 것처럼 완벽하게 청소되어, 다른 비슷한 사연을 지닌 동네와 거리들이 예전에 그랬던 것처럼, 죽음도 시신도 슬픔도 전혀 없었던 것처럼 완벽하게 청소되어, 다른 비슷한 사연을 지닌 동네와 거리들이 예전에 그랬던 것처럼 세련된 빌딩과 고층 아파트들의 아무것도 모른다는 듯 그 번들거리고 말쑥한 표정으로 치장”(진은영 시인 용산 멜랑콜리아)될 때 올 것이다.
그때부터 사람들은 부끄러움이 무엇인지 모를 것이다.
사람이 억울한 일을 당하면, 사람이 어이없이 죽으면, 사람들은 자기가 그 사람이 아닌 것을 다행으로만 여길 것이다.
그러고는 내일이라도 자신이 그 사람이 될까봐 저마다 몸서리치며 잠자리에 누울 것이다.
그것을 정의라고, 평화라고 부르는 세상이 올 것이다.
그 세상의 이름이 무엇인지는 독실한 기독교 신자이기도 한 이명박 대통령이 누구보다도 잘 알 것이다.
-과거를 영예롭게도 비열하게도 만드는 것은 언제나 현재다.
-까라면 까는 것과 복종은 다르다.
나는 하라는 대로 열심히 했지만 마음 깊이 복종한 적은 한 번도 없었다.
군인 정신 같은 것은 없었다.
전역 후 나는 내가 얼마나 비굴한 인간이 되었는지 알아차릴 수 없을 정도로 비굴한 인간이 되어 있었다.
-역사는 과거와 나누는 대화
<밤이 선생이다. /황현산 /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