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피는
하루 한잔을 꼭 마시는데 제가 좀 민감해서 그 이상은 안 마셔요.
저녁에는 차도 안 마시지요. 스님들도 해지면 차 안 마시거든요.
80년 대에는 하루 12시간씩 글을 썼는데 지금은 6시간이 고작이고, 최근에는 우울증까지 생겼다.
최근에 내가 게으르다는 걸 깨달았다.
희한한 궁상이다.
혼자 쓰는 집이 학교 교실만하고, 자연광선이 좋은 방이 두개나 있건만
오히려 가장 외진 방을 골라, 게다가 창문도 없이 제일 어두운 지점에 책상을 배치해 놓고
수도승처럼 면벽한 채, 큰 의자 위에서 한 다리 위에 다른 다리를 올려놓은
기이한 책상다리 자세로 글을 쓰는 것이다. <이문열의 방>
-.40년 전
주목받는 신세대 작가였던 최인훈은 소설에서 말했다.
“우리에게 가족은 없다. 이것이 우리의 근대선언이다.”
그러나 그 자신은 자녀를 두었다. 김영하는 이런 말을 한 것 같지 않으나 그렇게 하고 있다.
미래는 늘 예상하기 어려운 모습으로 다가오고, 그 낯선 풍경을 가장 먼저 날카롭게 응시하는 이가 작가일 것이다.
<김영하의 방>
-.공지영과 신경숙은 동갑이고
공지영이 닷새 먼저 태어났다. 둘 다 물병자리이다.
공지영은 소설을 쓰지 않던 1998년부터 2004년까지 6년 동안은 심리학책과 종교서적만 읽었다.
딸도 글 쓰는 걸 좋아해요. 상도 받고 그랬어요. 어제는 장편 소설 세 개를 생각했는데 그 중 하나가 ‘엄마’래요.
“야! 내 이야기 쓰지마.” 그랬어요. 그랬더니 자기는 엄마 이야기 꼭 쓸 거래요.
노동운동 세미나 할 때 틈틈이 토지를 읽으니까
한 선배가 “너, 문학 같은 것 좀 치울래?” 하고 비판을 했다.
그래서 자아비판을 했다. 문학을 영원히 포기하겠다고...
옛날에는 낙엽이 하나 떨어지면 생각이 열개쯤 났는데
그때는 낙엽이 하나 떨어져도 아무 생각도 나지 않았어요.
구류 열흘 살고 집에 돌아왔는데 노동운동 하기 싫더라구요.
너무너무 소설이 쓰고 싶었어요. 그래서 하루 자고 타이프 앞에 새벽부터 앉아 쓴 게 <동트는 새벽>이에요.
1987년 노동자 대투쟁 직후에 노동운동에 들어갔어요.
7.8개월 동안 합숙한 다음 치밀한 계획을 세워요.
시인 최영미씨등이 CA출신이고 나는 PD계열의 조직에 들어갔어요.<공지영의 방>
-.책을 통해 내면이 크고 풍요롭게 변해간
자신의 문학적 행로를 그는 한 산문에서 이렇게 회상하고 있다.
겨울 방학이 시작되고 나는 낮에는 동무들과 산에 나무 가고, 밤에는 도스토예프스키에 매달려 밤을 하얗게 지새우곤 했다.
그 해는 눈도 많이 왔다. 세상 가득 눈이 온날 아침, 나는 아무도 가지 않은 징검다리 위의 눈을 밟으며 강을 건너갔다 왔다.
겨울방학이 그렇게 끝나자 나는 전집 대 여섯 권을 거의 다 읽고 있었다. 학교로 가기 위해 차를 타러 마을로 나가는 길은 그러나 내게 전혀 새로운 길이었다. 산과 들고 나무와 길과 사람들이 사는 마을과 내 걸음 걸이가 방학 전의 것들이 아니었다. 뒷산에 있는 느티나무가 그렇게 큰 줄, 나는 그때야 알았다.
-.옛날에는 고향에 사는 게 즐겁고 재미있었는데 요즘에는 고통이여.
고향이 다 부서져 버리고 사람들도 다 가버렸어. 댐 만들어 보상받아서 다 나가버렸어.
수없이 해왔던 농업정책이 실패했기 때문에 기댈 데가 없어. 댐 만들어 보상받기를 원해.
내가 반대하니까 나를 싫어하는 거여.
저 자식, 저는 월급 받아 잘 사니까 댐을 못 막게 하지만 우리는 보상받아서 나가야 한다는 거여.
그런데 사실은 사람들이 보상 많이 받아 고향을 뜨면 금방 잘 살 거 같지만 서울 가 봐 그 돈 아무것도 아니여.<김용택의 방>
-.대학교 때는 밝은 게 싫어서
올케와 싸우면서까지 방을 어둡게 해놓고 오빠가 선물한 책을 읽었다.
김영하나 공지영의 서재도 그랬지만 진부한 그림들들 붙여 놓느니 포스터나 광고지,옛 성경 페이지가 더 좋은가 보다.
포스트 모더니즘적 감각과 상상력이 작가의 일상에도 깊이 스며들고 있는 듯하다.<신경숙의 방>
#나는 전망좋은 신경숙의 방이 가장 맘에 드는데
딸아이는 사다리를 타고 올라가서 책을 골라야 할 정도로 책이 많은 이문열의 방이 좋단다.